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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
쉘 실버스타인 지음 / 살림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술래잡기 하는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고무줄놀이를 기억하는 저는 아주 먼 과거의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입니다. 얼마 전에 조카들이 놀러왔습니다. 이모 이모 하면서 제 방에 들어온 아이들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컴퓨터였습니다. 네 살 난 어린 조카는 제 노트북 전원을 켜고 인터넷 접속을 하더니 네이버 주니어에 로그인을 하고 게임을 하더군요. 겨우 걸음마를 뗀 이 아이의 모습에 저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어른의 문화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키가 자라는 동안 황량한 운동장에는 잡초가 무성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아이들이 자취를 감추어버린 것입니다. 어른의 말과 생각, 어른의 사랑, 어른의 노랫말을 흉내내는 아이들과 어른만 있습니다. 아이들이 없는 이 세계는 움직임이 없고, 소리가 없고, 냄새도 없고, 달콤함도 없습니다. 아무렇지 않은가요.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저는 참 이상합니다.
아이들이 사라진 세계, 이 정지된 세계에서 하품을 하고 두리번거리다 제가 만난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
요즘 아이들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한 번 읽으면 평생 가슴에 새겨지는 이야기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단한 일이죠. 지금 소개하는 책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지은이 셸 실버스타인의 미발표작을 모은 마지막 책입니다. 셸 실버스타인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외에도 많은 시와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주로 아이의 관점에서 씌어진 이야기들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사랑 받고 있습니다. 아이의 세계가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희망 하나가 떠오르는군요. 아이의 마음, 아이의 세계를 동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니까요.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 역시 아이의 마음으로 씌어진 책입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말하고 들은 모든 말은 놔두고" 망설일 것도 없이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를 베어먹기만 하면 됩니다.
손들의 나라
모래땅에서 손가락들이 자라는
손들의 나라로 갈래?
그동안 말하고 들은 모든 말은 놔두고
손짓을 따라갈 수 있겠니?
아이답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순수하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순수한 것처럼 잔혹한 것도 없습니다. 책에는 바로 그 순수함을 담고 있습니다. 깨고 부수고 짓밟고 더럽히고 소리지르고 터뜨리고 먹고 먹히고 거짓말하는 아이들의 세계가 생동감 있게 그려집니다. 이상하고 불길하지만 무섭지는 않은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말하는 식인 화초와 춤추는 신발들, 다양한 표정의 얼굴을 파는 프레드 머리가게가 있는 세계. 머리통이 다 닳도록 지껄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울고 발이 떨어져 나갈 듯이 걷고 심장이 터질 듯이 노래할 수 있는 세계에서는 어른의 일 같은 것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어른 흉내도 내지 마세요. 그러면 그 꿈 같은 세계에서 튕겨져 나올지도 모르니까요.
구름 타고 걷기
구름을 타고 걸을 때는 조심해.
구름을 타고 걸을 때는 주의해.
저 아래 뭐가 있는지 보려고
발밑을 내려다보면 절대로 안 돼.
셸 실버스타인은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만들었습니다. 이 책에도 그의 그림이 등장합니다. 매우 장난스럽고 특히 표정이 살아 있습니다. 셸 실버스타인의 책에서 그림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어떤 그림은 글 이상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웃음을 두 배로 부풀려 주기도 하고요.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트램펄린
트램펄린에서 퉁퉁 튀어서
내 머리가 닿는 데까지
높이높이 올라가면
여자애가 내려가는 게 보였지
머리에 데이지 꽃을 꽂고
비단 치마를 입었지.
하지만 그 여자애가 높이 올라가면
이번엔 내가 내려갔지.
"안녕, 좋은 날이야." 내가 인사하려 하면
여자애는 웃으며 빙그르르 돌았지.
나는 내려가고 있는데
"너도 나랑 같이 올라 와." 소리쳤지.
여태껏 우리는 만난 적이 없지.
슬프게 한 아이가 올라가는 동안
한 아이는 내려가는 걸
알게 되었거든.
표제작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핫도그를 주문하면서 "모두 넣어 주세요" 했는데, 앵무새와 밧줄 구멍이 뚫려 있는 돛대, 손목시계, 멍키 스패너, 금붕어, 깃발, 바이올린, 그네, 쥐 가면 같은 것들이, 그러니까 세상 모든 것이 담긴 핫도그가 나온 것입니다. 이런 걸 어떻게 먹겠느냐고 하실 건가요.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를 베어먹을 용기가 없다면 이 책에 펼쳐진 세계에서 즐겁게 뛰어놀기는 어려울 거예요. 돛대는 돛대가 아니고 손목시계는 손목시계가 아니며 금붕어도 우리가 알던 금붕어는 아니니까요.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사라진 운동장에는 식인 화초가 자라고 있고요. 아이들을 자꾸 집어삼키기 전에, 얼른 핫도그를 베어물어요. 그리고 이 따분한 세계를 구해낼 궁리를 해봐요.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