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아홉 작가정신 소설락 小說樂 2
김도연 지음 / 작가정신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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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 이은 김도연의 두 번째 장편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길'에 대한 사유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이번 여정은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흔아홉'은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그만큼 많은 굽이를 숨기고 있어서 넘기가 힘들고 고된 고개를 가리키지요. 흔히 고비라고도 하지요. 정상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지난한 과정.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어느 한 고비를 넘고 있는 '바람'. "설명할 길이 없는" 고독과 고통을 지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행을 하는 바람이 아닐까요.

 

     멀리, 낯선 땅으로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여기, 가장 익숙한 시공간에서도 우리의 여행은 끝이 없지요. <아흔아홉>은 가장 가깝고 익숙한 장소에서 길을 잃고 맴도는 주인공의 궤적을 따라갑니다. 작품의 주무대는 대관령. 주인공 사내의 고향이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그, 사내는 고향, 그것도 집을 가까이 두고 맴돌고 있어요. 길을 잃은, 혹은 잊은 자에게 길은 전혀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지요. 풍경 얘기를 하기 앞서 그의 여정이 시작된 지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흔아홉>의 여정이 시작된 지점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아저씨? 아저씨 와이프 사라진 거 알아요?

    ......집사람이 왜 사라져?

    그건 저도 모르죠.

    근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36쪽)

 

     눈발이 퍼부어대는 어느 겨울, 아내가 사라집니다. 말 그대로 사라져요. 그 어떤 메시지나 흔적도 없이. 그 자신도 미처 몰랐던 사실을 전해주는 건 숲의 고라니입니다. 그래요. 이번 작품에도 여지없이 말하는 짐승이 등장합니다. 꿈과 환상,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이 작품에서 말하는 고라니는 정답고 유쾌한 환상성을 선사하지요. 말하는 짐승 얘기를 좀 더 이어보기로 하죠. 김도연은 강원도 산골에서 소와 돼지, 닭, 개들과 더불어 사는데요. 실제로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가 봐요. 잘 자는 개를 깨워 밤새 자신의 소설을 읽어주었다는 이야기를 어느 산문에선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 다음부터 개가 자신만 보면 슬금슬금 피하더라는 이야기. 우스운 일화로만 치부할 수 없는 길고 깊은 고독의 정서를 느꼈었죠. 그의 고독은 유하고 순하고 정답기까지 합니다. 이 특별한 고독의 정서가 그의 문장 곳곳에 스며 있는 것을 봅니다.

 

    이, 바람을, 보여주려고, 여기 온 거야? (94쪽)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아내의 부재와 동시에 그의 현실감각이 무너집니다. 본디 현실적인 인물도 못되지만요.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부풀려지거나 오그라드는 '바람자루' 같다고 할까요. "평생을 한자리에 서서 자라는 나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설명할 길이 없는" 고독 속에서 이리저리 뒤흔들리고 있지요. 고향도 집도 아내도 애인도 그의 바람을 잠재우지는 못합니다. 그래요. 그에게는 애인이 있습니다. 대관령을 사이에 두고 만남을 이어가지요. 아내도 애인의 존재를 알고 있고요. 그러면 아내는 남편의 연인을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간 것일까요. 아내는, 집사람은, 왜, 무엇 때문에, 집을 나갔을까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고라니도 모릅니다. 끝내 아내의 가출 의도는 드러나지 않는데요. 중요한 것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이기 때문이지요.

 

     아내의 부재는 '아흔아홉' 굽이를 넘어가는 중요한 동력원으로 작용합니다. 아내의 부재와 침묵 속에서 그와 그의 애인은 갈 길을 몰라 헤매입니다. 아내의 부재가 오히려 아내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지요. 동시에 그들 관계에 대한 혼란을 안겨줍니다. 이야기를 굽이길에 비유해 보자면, 이 작품에는 크게 세 굽이가 있는데요. 아내가 사라지고 그와 애인 Y가 강릉을 맴도는 여정이 한 굽이에 해당합니다. 그들의 여정을 한 단어로 축약해 보면, '축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바탕 신명나게 벌어지는 '굿판'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요. 실제로 그들은 강릉단오제를 구경합니다. 김도연 특유의 환상성이 잘 발휘된 대목이기도 한데요. 소매각시와 양반광대의 가면극이나 산신성황제에 대한 묘사는 소설적 재미를 더하는 한편 두 연인을 향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내의 부재가 그들 관계의 부재, 공허를 일깨운 셈이지요.

 

     대관령을 내려온 성황은 어디에 있을까? 선글라스를 벗은 Y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잘 보이지 않는지 Y는 다시 선글라스를 쓰고 계단에서 일어났다. 당신 와이프는? 그는 Y가 남긴 맥주를 모두 비웠다. 나는? 무당이 여러 신들을 부르듯 Y의 중얼거림은 끝나지 않았다. 당신은? (81쪽)

 

     삼 년 동안의 긴 침묵 끝에 아내가 돌아옵니다. 정확히 말해 집에 들어온 거죠. 들어오긴 했지만 쉽게 돌아올 의향은 없어 보이는 아내와 그가 마주한 밤. 돌배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이어가는데요. 툭툭 끊기는 단순하고 유치한 대화에서 화해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도 안한 분이 어떻게 그리 실감나는 부부의 대화를 연출했을까. 어쨌든 그 밤, 두 사람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소나무가 부러지는 소리를 듣지요.

 

근데 왜 하필 힘들게 대관령을 오르자는 거야?
......집에서 가까우니까. (154쪽)


 

    마지막 한 굽이가 남았죠. 이번 고개는 '소풍'입니다. 참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소풍이에요. 아내와 애인, 두 여자의 남편이자 연인인 그. 이 세 사람이 동행입니다. 이번에도 이들의 소풍을 이끈 것은 아내입니다. 남편의 연인을 초대한 아내나 그 초대를 받아들인 여자나 쉽게 이해하기 힘듭니다. 대체 왜. 그러나 왜,가 아니라 어떻게. 두 여자는 머리끄덩이도 잡지 않고 울지도 않고 웃으면서 대관령 굽이굽이를 넘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면서, 봄눈이 녹고 꽃이 피어나는 모양을 눈여겨보면서 자기 자리를 확인하는 과정이지요.

 

     아직 가지 않은 길도 눈을 부릅뜬 채 노려보았다. 양지바른 산자락 여기저기 튀밥이 터지듯 피어 있는 꽃나무들도 살폈지만 눈물은 고이지 않았다. 심지어 눈물 없는 울음소리도 내놓을 수 없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영영 고개를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소풍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179쪽)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마지막 한 굽이라고 했는데, 실은 끝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길은 끝이 없고 바람은 끝없이 불어오니까요. '아흔아홉'은 절묘한 숫자란 생각이 들어요. 굽이굽이 힘겹게 돌고 넘는 우리에게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잖아요. 백, 완성을 위해, 정상을 오르기 위해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는 아흔아홉 굽이. 한 고비 넘기면 또 한 고비가 닥쳐오는 것이 삶이라고 하죠. 의뭉스럽고 위태롭고 이해하기 힘든 이 끝없는 소풍. 눈을 이고 뚝뚝, 소나무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밤. 간혹 그런 순간들이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가 아니고 어떻게. <아흔아홉>은 그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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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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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 .

                                                                                        -    ( 22장 20절 )

 

 

 
      먼저 그 방대함에 압도됩니다. 천 페이지를 넘기는 분량인데요. 베개로 쓰기 좋은 두께입니다. 무거운 머리를 누이고 잠을 청해 보세요. 핏빛 꿈에 사로잡히게 될 테니까요. 캄캄한 공포와 절망 속에서 무릎을 꺾고 신에게 절규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

 

      성경 시편에 등장하는 '개의 힘'은 사악한 인간 본성 또는 헤어날 수 없는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지금 소개하는 책의 제목이기도 하지요. 미국과 멕시코의 마약 전쟁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음모와 복수, 매춘과 살인 등 인간 본성의 사악함을 생생하게 구현하고 있습니다. 느와르 영화를 방불케 하는 피 튀기는 총격전이나 잔인한 고문 장면, 아기를 품에 안은 어미의 시신 같은 것을 지켜보며 숨 죽이게 됩니다. 그 모든 참극을 부른 인간의 어두운 욕망, 개의 힘을 실감하게 된다고 할까요. 결코 유쾌한 경험은 못되지요. 
   
                              "영혼을 걸고 맹세합니다."
                              "자네 영혼은 지옥보다 어둡지." (본문 중에서)

 

     어떻게 이 책을 베개로 삼겠어요. 일단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하면 마력과도 같은 힘에 이끌리게 됩니다. 멈출 수가 없지요. 다시 그 방대함에 압도되는 것입니다. 1975년부터 2003년에 이르는 30년 간의 세월을 관통하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만 일백 명에 달합니다. 미겔 앙헬 바레라, 돈 페드로 아빌레스, 가르시아 아브레고, 길베르토 오레후엘라 등 아무리 해도 입에 붙지 않는 중남미 인명(人名)들도 대거 등장하는데요. 읽는 흐름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고요. 주요 인물과 단체 목록이 첨부되어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 독자의 주의를 사로잡는 것은 실존 인물과 역사적인 사건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현실감에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묘사된 역사적 사건들 - 북중미자유무역협정이나 멕시코 대지진 같은 - 이 멕시코 마약 전쟁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건 사랑뿐이다. 사랑만이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ㅡ    에우리피데스, 「오레스테스」
 

     CIA출신 마약 수사 전담반 요원 아트와 마약 조직 보스 아단, 고급 매춘부 노라, 킬러 칼란. 네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욕망과 복수의 암투극은 저항할 수 없는 악의 본성, 즉 '개의 힘'을 일깨우고 있는데요. 이에 대립하는 인물이 후안 신부입니다. 돈과 권력만을 좇는 경찰 공무원과 정치인들, 부정부패를 모른 척하는 성직자 등 인간의 어두운 욕망이 불러온 참극, 그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쟁의 광란을 일시 잠재우는 역할을 하지요. "당신들을 용서하겠소." 총 맞은 신부가 죽어가면서 남긴 한마디에 팽팽한 악의 구도가 느슨하게 풀어집니다. 1993년 공항에서 마약 조직의 싸움에 희생된 실존 인물 후안 헤수스 포사다스 오캄포 전 추기경을 모델로 하고 있는 후안 파라다 신부의 죽음이 일깨운 것은 사랑과 용서였습니다. 


    무려 5년여 동안 중남미 마약 관련 사건에 대한 취재를 거친 이후 완성된 이 소설은 멕시코 마약 세계를 농밀하게 녹여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수십만 부가 팔렸고, 미스터리 베스트 2위에 오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입체적인 인물 묘사와 "중독성 강한 전개", 그리고 30년 마약 전쟁의 역사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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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2회째를 맞는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입니다. 올해 수

상작은 김태용의 '머리 없이 허리 없이'이군요. 고난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그들의 삶을 해학적이고 실험적인 방식으

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지요. 수상작과 함께 '이달의 소설'에 선정되

어 후보에 오른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엮었는데요. 안보윤, 김사과,

손보미, 박솔뫼 등..등단 7년차 이하 신예 작가들의 젊은 소설을 만나

볼 수 있겠습니다.

 

 

 

 

 

 

 

 

 

 

 

    헤르만 코흐.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 작가는 네덜란드의 국민작가라고 합니다. 지금 소개하는 작품은 그의 대표작인데요. 네덜란드에서는 물론이고, 전 유럽에서도 가장 많이 팔린 책 10위 안에 들었던 전적이 있군요. 치밀한 구성과 재기 넘치는 언어로 이어지는 이 작품은 노숙자를 구타해 죽인 열다섯 살 아들과 그를 감싸는 부모의 태도를 통해 사랑과 도덕적 양심의 가치를 묻고 있다고 하는데요. 작품을 읽기도 전에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군요.

 

 

 

 

 

 

 

 

 

 

 

    빅또르 뻴레빈. 발음하기조차 어려운 이름. 역시 생소한 작가인데요. 러시아 문단의 총아라고 불리우는 빅또르는 "새로운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그것이 문학적 사건이 되고, 작품 자체가 그 시대의 상징이 되는 작가"라고 해요. 작가에게는 대단한 찬사라고 생각하는데요. 지금 소개하는 이 작품 <오몬 라>는 그의 첫 장편입니다. 표면적으로 이 작품은 우주 비행사의 꿈을 가진 주인공 오몬의 역경과 시련을 다룬 성장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요. 소박한 소년의 꿈을 일그러뜨리는 시대적 배경(1969년대 쏘련)과 국가 이데올로기의 위력을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카프카와 헤밍웨이, 불가꼬프에 비견되고 있는 그의 작품, 기대가 큽니다!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매우 담담하고 솔직한 문장으로 쓴 작품 <남

 

자의 자리>로 수많은 독자의 가슴을 뒤흔들었던 아니 에르노가 이번

 

작품 <한 여자>에서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사회

 

적이고 객관적인 문장을 고집하는 아니 에르노가 '한 여자'로서의 어

 

머니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았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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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끌림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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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핑거스미스(Fingersmith,2005)》'의 원작자 '세라 워터스'의 작품입니다. 데뷔작 《벨벳 애무하기》(1998)에 이어 발표한 이 작품은 《핑거스미스》(2002)를 포함해 <빅토리아 3부작>이라고 불립니다. 세 작품 모두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거든요. 지금 소개하는 작품 《끌림》은 1870년대를 배경으로 여성 죄수와 상류층 여인의 은밀한 관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데뷔작, 후속작과 마찬가지로 여성 동성애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요. 《벨벳 애무하기》는 읽지 않아서 모르겠고요. 《핑거스미스》의 '수'와 '모드'처럼 《끌림》의 주인공들도 매우 다른 환경과 신분차를 보입니다. 사기와 폭력 혐의로 교도소(밀뱅크)에 수감 중인 '셀리나'는 영매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밀뱅크를 방문한 '마거릿'은 그 신비한 여인에게 이끌리는데요, 《핑거스미스》의 모드처럼 부유한 상속녀입니다. 그러나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진무구한 모드와 달리 마거릿은 독립적이고 자유분방한 정신의 소유자입니다. 병적일 정도로 자의식이 강하고요. 이 소설은 시종 마거릿과 셀리나의 일기가 교차하며 진행되는데요. 셀리나의 일기가 사건 중심적이라면 마거릿의 일기는 다분히 내면적어서 그녀 특유의 성격과 욕구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헬런과의 좌절된 사랑과 지적 동지이기도 했던 아버지의 죽음. 잇따른 불행을 겪고 삶의 의욕을 잃은 마거릿과 사악한 마법에 걸려 성에 갇힌 것처럼 고립된 셀리나. 표면적으로 전혀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여인을 이어주는 것은 자유를 향한 갈망입니다. 셀리나는 물론 육체적인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지요. 반면 마거릿의 욕구는 복합적이고 불안정합니다. 완강하고 융통성없는 어머니의 감시와 통제, 자신의 성체성에 대한 양가감정, 그에 따른 사회적 괴리감, 자살 충동. 지성과 부를 갖춘, 소위 '숙녀' 신분의 마거릿 역시 교도소 수감자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이탈자였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삶'이 절박하지요. 죄인과 이탈자들을 받아들일 또 다른 세계. 여기 아닌 어딘가. 여기와 저기. 이승과 저승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셀리나는 마거릿에게 '새로운 삶'을 제시합니다. 더는 잃을 것도 없는 이 불안정한 처녀에게 무슨 선택권이 있겠어요. 마거릿은 점점 셀리나에게, 그녀의 기묘한 세계에 매혹됩니다. 셀리나의 세계는 치유력을 가지고 있어요.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아 주고 욕망하는 것을 이뤄주지요. 말없는 위로. 말없는 소통이 가능합니다. 말하지 않고 듣지 않고 보지 않고도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지요. 이 꿈 같은 세계를 매개로 셀리나와 마거릿의 유대는 더욱 끈끈해집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암울한 교도소와 신비로운 영매의 세계가 두 여인의 자유를 향한 갈망과 맞물려서 사정없이 독자를 끌어당깁니다.

 

    태양에 더 가까이 가려,

    사람들이 더 편히 잘 수 있는 곳으로 가려 서두르네.  (본문 중에서)

 

      《핑거스미스》에서 다소 파격적이었던 동성애적 묘사에 대해 혐오감을 내비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남아 있지요. 원하든 원치 않든 그들은 사회적 이탈자로 존재합니다. 사회에서 공감도 이해도 얻을 수 없는 그들의 사랑과 자유는 언제나 '반쪽'짜리에 불과합니다. 차갑고 단단한 편견의 벽에 갇힌 그들을 풀어줄 '열쇠'는 무엇일까요. 비단 성소수자에 한하는 문제는 아니겠지요. 이 작품 《끌림》을 포함한 <빅토리아 3부작>에는 "레즈비언 역사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있군요. 많은 사람들이 '레즈비언'이라는 자극적인 단어에 주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작품에는 노골적인 성적 묘사가 등장하지 않아요. 가벼운 키스조차도. '레즈비언'이라는 단어가 성적인 호기심을 충돌질하는 홍보성 문구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레즈비언. 세라 워터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동성애'는 사회로부터 고립된 이탈자들을 포괄하는 동시에 포용합니다. 셀리나를 풀어준 '열쇠'를 눈앞에 흔들어 보이면서, 그들의 사랑과 욕망과 절망의 내용은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킵니다. 소름 끼치도록 암울하게, 그러나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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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남자의 문제
하워드 제이콥슨 지음, 윤정숙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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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남자의 문제,라니.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이죠? 상상해 볼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거나 이하일 거예요.  은퇴한 연예부 기자 '리보르'와 대중적인 철학자 '샘 핑클러', 닮은 꼴 배우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줄리언 트레스러브'.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이들, 세 명의 영국 남자는 모두 '문제'를 떠안고 있습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리보르'는 아내와 사별 후 심각한 '상실감'에 비틀거리고요. 부와 명예와 아름다운 아내와, 모든 것을 가진 '샘 핑클러'는 '끝없는 욕망'을 좇느라 늘 허기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줄리언 트레스러브'. 그의 문제는 보다 관념적이고,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공고합니다.

 

     그의 삶은 소극(笑劇)이었다. 우스꽝스러운 것투성이였다. 그래, 사실이었다. 자신에게는 비극이나 장려함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의 비극과 장려함 속으로 전진해 들어가려고 했었다. (본문 중에서)

 

    닮은 꼴 배우라는 줄리언의 직업은 그의 '문제'의 핵심을 집어주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없었던 줄리언은 항상 다른 이의 삶을 꿈꿉니다. 다른 이의 얼굴을 넘보고, 생각을 흉내내고, 말을 따라하면서요. '닮은 꼴 배우'는 직업을 넘어서서 그 자신의 존재 방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줄리언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되어야 하지요. 그 자신 이외 무엇이든.

 

     줄리언에게 자신만의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있었지요. 어쩌면 최초이자 마지막이었을 줄리언의 순수한 희망은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박살나고 말아요.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곳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음울하고 고독한 시가 판매상"이었던 아버지는 줄리언이 보다 또렷하게 살아가기를, 그러니까 현실적인 삶에 뛰어들기를 바랐지요. 그러나 삶은 얼마나 얄궂은가요. 우리가 끝내 알 수 없을 이상한 규칙들을 숨기고 있지요. 우리가 그 이상한 힘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운명에 휩쓸려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줄리언의 '문제', '운명'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그 일은 최초이자 마지막이었을 그의 희망, 꿈의 좌절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지요. 어느 밤, 줄리언은 바이올린 가게를 들여다 보다 노상 강도를 당합니다. 습격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군요. 지갑과 금품을 노린 범죄는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갑과 금품을 갈취하는 형식 이면에 진짜 의도를 숨기고 있는 관념적인 습격이라고 할까요. 물론 이러한 추론은 관념적인 사내, 우리의 줄리언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바이올린'의 꿈이 좌절된 데에는 모두 다 그만한 뜻이 있어서였을까요. 어쨌든 바이올린 가게 습격 사건의 충격은 그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전환점으로 작용합니다. 한밤의 습격자가 남긴 한마디. 줄리언이 기억 속에서 되살려낸 그 한마디 때문이지요. "당신 주(You Jew)".

 

    "네가 꾸며낸 거야."

     "내가 왜 꾸며내?"

     "너는 꼬이고 뒤틀린 사람이니까." (본문 중에서)

 

     자신을 '주(Jew)', 즉 '유대인'으로 착각한 반유대주의자의 공격이었을 것이라는 줄리언의 믿음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어쩌면 자신이 '유대인'일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확신에 이르게 되지요. 이상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삶의 규칙은 매우 정밀하지요. 들여다 봐야 해요, 침착하게. 줄리언에게는 오래된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이미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그의 특성. 바로 흐릿한 존재감이지요. 그의 열등감은 학교 동기이기도 한 샘 핑클러에 대한 시기와 부러움으로 투영됩니다. 샘은 모든 면에서 그를 앞지릅니다. 부와 명예, 아름답고 지적인 아내와 영리한 아이들, 매력적인 정부(情婦)들. 그에 비하면 줄리언의 삶은 찌끄레기에 불과합니다. 사소한 좌절과 이별로 점철된 그의 삶에는 정작 자기 자신이 빠져 있으니, 말 다한 거죠. 그가 우러러보면서도 증오하는 샘 핑클러는 '주(Jew)', 즉 유대인이기도 합니다. 경계인이면서도 대중을 좌지우지하는 성공한 핑클러, 그의 특별한 능력에서 줄리언은 세상 모든 유대인들의 특별한 능력, 신성을 봅니다. 급기야 세상 모든 유대인과 유대적인 것, 특히 성공한 유대인들을 핑클러(들)라 통칭합니다. 그때부터 그의 세계는 핑클러(들)과 자기 자신. 둘로 나뉘게 됩니다. 끝없이 핑클러(들)의 삶을 동경하고 흉내내고 침범하면서 거듭 실망과 좌절에 부딪히는 그에게 핑클러(들)은 벽인 동시에 문이기도 하지요.

 

      그는 핑클러의 둥지를 더럽혔고, 헤프지바를 통해 리보르의 둥지도 더럽혔다. 이 뻐꾸기 같은 이교도는 그들에게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자신의 삶이 소극(笑劇)이기 때문에 그들의 비극을 빨아먹고 싶었을까. (본문 중에서)  

 

      줄리언은 자기 앞에 놓인 모든 문들을 열어젖히기 시작합니다. 핑클러(들)의 세계로 통하는 그 문에 들어서면 자신 역시 그들의 특별함을 - 그것이 어떤 것이든 - 부여받을 수 있다는 비이성적인 확신에 차서요. 핑클러의 아내와 잠자리를 갖고, 이상형과는 거리가 먼 유대인 여성 헤프지바와의 동거 역시 이 열망과 확신에서 비롯됩니다. 존재하고픈 허기증. 무엇이라도 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핑클러(들)의 세계, 그 문을 끝없이 두드리던, 부서져라 두드리던 줄리언의 환상도 결국 부서지는 순간이 오지요. 그는 자신이 그토록 열망하던 '신성한' 세계에도 나름의 '문제'와 '모순'이 있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습니다. 환상이 깨어진 거기, 줄리언이 오래 외면했던 진정한 '삶'이 얼굴을 드러냅니다. 비극적이지도 희극적이지도 않은.

 

      그 안에 수치가 있었다. 그는 누구의 수치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아마도 자연의 일부. 엄청난 세월이 지났어도 밀물처럼 밀려드는 피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 아니면 수치는 이 도시일까? 이 도시가 나타내는 문명화의 환상? 교훈을 얻지 못한 아이의 공허하고 고집스러운 완고함과도 같은 그 얼굴 없는 불굴성? (...) 그렇지 않으면 수치는, 모든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누구도 아닌 줄리언 트레스러브, 그 자신이었다. 그는 혀를 데어가며 차를 홀짝였다. 그가 구하던 특별함은 - 그만큼이나 규정할 수 없는 누군가를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면 - 불필요했다. 수치는 일반적이었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되는 것은 수치가 되는 것이었다. (본문 중에서)

 

      리보르와 샘 핑클러, 그리고 줄리언 트레스러브의 '문제(들)'를 통해 "사랑과 상실" 그리고 "경계인"의 삶을 통찰하는 이 작품은 2010년 영국 부커상 수상작입니다. "부커상 최초 유머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서점 진열대에 누워 독자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부커상이니 유머소설이니 하는 광고성 문구에 집착하는 분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이 소설 별로 웃기지는 않습니다. 유대적인 문제에 관한 철학적이고 냉소적인, 다소 토론 조로 흐르는 대화가 주를 이루는데요. 즉흥적이고 단순하게 터져나오는 웃음을 기대하는 분이라면 실망하기 십상입니다. 이 작품에서 하워드 제이콥슨이 구사하는 유머는 매우 지적이고, 오히려 비극성마저 느껴지지요. 이 비극성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어떤 감정, 바로 인간적인 '수치'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바이올린 가게를 들여다 보다 불시의 습격을 당한 줄리언처럼 우리는 두리번거리게 되지요. 너무 멀리 왔다는 것을 의식하고 허둥대는 우리에게 이 작품은 절박한 한마디를 남깁니다. "집으로 돌아가. 자네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 뭐라고요? 당신에게는 "You Jew?"로 들렸다고요? 틀림없이 You Jew였다고요?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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