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아홉 작가정신 소설락 小說樂 2
김도연 지음 / 작가정신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 이은 김도연의 두 번째 장편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길'에 대한 사유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이번 여정은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흔아홉'은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그만큼 많은 굽이를 숨기고 있어서 넘기가 힘들고 고된 고개를 가리키지요. 흔히 고비라고도 하지요. 정상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지난한 과정.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어느 한 고비를 넘고 있는 '바람'. "설명할 길이 없는" 고독과 고통을 지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행을 하는 바람이 아닐까요.

 

     멀리, 낯선 땅으로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여기, 가장 익숙한 시공간에서도 우리의 여행은 끝이 없지요. <아흔아홉>은 가장 가깝고 익숙한 장소에서 길을 잃고 맴도는 주인공의 궤적을 따라갑니다. 작품의 주무대는 대관령. 주인공 사내의 고향이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그, 사내는 고향, 그것도 집을 가까이 두고 맴돌고 있어요. 길을 잃은, 혹은 잊은 자에게 길은 전혀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지요. 풍경 얘기를 하기 앞서 그의 여정이 시작된 지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흔아홉>의 여정이 시작된 지점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아저씨? 아저씨 와이프 사라진 거 알아요?

    ......집사람이 왜 사라져?

    그건 저도 모르죠.

    근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36쪽)

 

     눈발이 퍼부어대는 어느 겨울, 아내가 사라집니다. 말 그대로 사라져요. 그 어떤 메시지나 흔적도 없이. 그 자신도 미처 몰랐던 사실을 전해주는 건 숲의 고라니입니다. 그래요. 이번 작품에도 여지없이 말하는 짐승이 등장합니다. 꿈과 환상,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이 작품에서 말하는 고라니는 정답고 유쾌한 환상성을 선사하지요. 말하는 짐승 얘기를 좀 더 이어보기로 하죠. 김도연은 강원도 산골에서 소와 돼지, 닭, 개들과 더불어 사는데요. 실제로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가 봐요. 잘 자는 개를 깨워 밤새 자신의 소설을 읽어주었다는 이야기를 어느 산문에선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 다음부터 개가 자신만 보면 슬금슬금 피하더라는 이야기. 우스운 일화로만 치부할 수 없는 길고 깊은 고독의 정서를 느꼈었죠. 그의 고독은 유하고 순하고 정답기까지 합니다. 이 특별한 고독의 정서가 그의 문장 곳곳에 스며 있는 것을 봅니다.

 

    이, 바람을, 보여주려고, 여기 온 거야? (94쪽)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아내의 부재와 동시에 그의 현실감각이 무너집니다. 본디 현실적인 인물도 못되지만요.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부풀려지거나 오그라드는 '바람자루' 같다고 할까요. "평생을 한자리에 서서 자라는 나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설명할 길이 없는" 고독 속에서 이리저리 뒤흔들리고 있지요. 고향도 집도 아내도 애인도 그의 바람을 잠재우지는 못합니다. 그래요. 그에게는 애인이 있습니다. 대관령을 사이에 두고 만남을 이어가지요. 아내도 애인의 존재를 알고 있고요. 그러면 아내는 남편의 연인을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간 것일까요. 아내는, 집사람은, 왜, 무엇 때문에, 집을 나갔을까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고라니도 모릅니다. 끝내 아내의 가출 의도는 드러나지 않는데요. 중요한 것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이기 때문이지요.

 

     아내의 부재는 '아흔아홉' 굽이를 넘어가는 중요한 동력원으로 작용합니다. 아내의 부재와 침묵 속에서 그와 그의 애인은 갈 길을 몰라 헤매입니다. 아내의 부재가 오히려 아내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지요. 동시에 그들 관계에 대한 혼란을 안겨줍니다. 이야기를 굽이길에 비유해 보자면, 이 작품에는 크게 세 굽이가 있는데요. 아내가 사라지고 그와 애인 Y가 강릉을 맴도는 여정이 한 굽이에 해당합니다. 그들의 여정을 한 단어로 축약해 보면, '축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바탕 신명나게 벌어지는 '굿판'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요. 실제로 그들은 강릉단오제를 구경합니다. 김도연 특유의 환상성이 잘 발휘된 대목이기도 한데요. 소매각시와 양반광대의 가면극이나 산신성황제에 대한 묘사는 소설적 재미를 더하는 한편 두 연인을 향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내의 부재가 그들 관계의 부재, 공허를 일깨운 셈이지요.

 

     대관령을 내려온 성황은 어디에 있을까? 선글라스를 벗은 Y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잘 보이지 않는지 Y는 다시 선글라스를 쓰고 계단에서 일어났다. 당신 와이프는? 그는 Y가 남긴 맥주를 모두 비웠다. 나는? 무당이 여러 신들을 부르듯 Y의 중얼거림은 끝나지 않았다. 당신은? (81쪽)

 

     삼 년 동안의 긴 침묵 끝에 아내가 돌아옵니다. 정확히 말해 집에 들어온 거죠. 들어오긴 했지만 쉽게 돌아올 의향은 없어 보이는 아내와 그가 마주한 밤. 돌배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이어가는데요. 툭툭 끊기는 단순하고 유치한 대화에서 화해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도 안한 분이 어떻게 그리 실감나는 부부의 대화를 연출했을까. 어쨌든 그 밤, 두 사람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소나무가 부러지는 소리를 듣지요.

 

근데 왜 하필 힘들게 대관령을 오르자는 거야?
......집에서 가까우니까. (154쪽)


 

    마지막 한 굽이가 남았죠. 이번 고개는 '소풍'입니다. 참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소풍이에요. 아내와 애인, 두 여자의 남편이자 연인인 그. 이 세 사람이 동행입니다. 이번에도 이들의 소풍을 이끈 것은 아내입니다. 남편의 연인을 초대한 아내나 그 초대를 받아들인 여자나 쉽게 이해하기 힘듭니다. 대체 왜. 그러나 왜,가 아니라 어떻게. 두 여자는 머리끄덩이도 잡지 않고 울지도 않고 웃으면서 대관령 굽이굽이를 넘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면서, 봄눈이 녹고 꽃이 피어나는 모양을 눈여겨보면서 자기 자리를 확인하는 과정이지요.

 

     아직 가지 않은 길도 눈을 부릅뜬 채 노려보았다. 양지바른 산자락 여기저기 튀밥이 터지듯 피어 있는 꽃나무들도 살폈지만 눈물은 고이지 않았다. 심지어 눈물 없는 울음소리도 내놓을 수 없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영영 고개를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소풍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179쪽)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마지막 한 굽이라고 했는데, 실은 끝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길은 끝이 없고 바람은 끝없이 불어오니까요. '아흔아홉'은 절묘한 숫자란 생각이 들어요. 굽이굽이 힘겹게 돌고 넘는 우리에게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잖아요. 백, 완성을 위해, 정상을 오르기 위해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는 아흔아홉 굽이. 한 고비 넘기면 또 한 고비가 닥쳐오는 것이 삶이라고 하죠. 의뭉스럽고 위태롭고 이해하기 힘든 이 끝없는 소풍. 눈을 이고 뚝뚝, 소나무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밤. 간혹 그런 순간들이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가 아니고 어떻게. <아흔아홉>은 그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