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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여행자 - 북위 66.5도에서 시작된 십 년간의 여행
최명애 글.사진 / 작가정신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여름 내내 곁에 두었던 책입니다. 그러면서도 읽는 속도는 더뎠습니다. 띄엄띄엄 행간을 걸었습니다. 걷다가 걷다가 서늘하게 펼쳐진 풍경에 오래 눈길도 주면서. 그렇게 한 철을 지나왔던 것 같아요.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눈은 지치지도 않고 내렸다. (본문 중에서)
저에게 북극은 미지의 땅이었습니다. 북극. 얼마나 망연한 이름입니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계절. 얼어붙은 풍경. 얼음 조각을 붙들고 떠다니는 짐승의 고독. 북극,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었는데요. 처음에는 억울한 생각도 들었어요. 고향을 잃어버린 심정이라 할까요. 아주 현실적인, 실재하는 북극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행기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눠볼 수 있지요. 안과 밖. 내면의 지도를 따르는 여행과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시간, 혹은 시각을 그대로 반영하는 여행기. 그러니까 이 책은 후자의 경향이 크다고 할 수 있어요. 기자 출신답게 사실적인 서술이 돋보입니다. 담백합니다. 지나치게 감성에 호소하는 여행기에 질린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포인트호프 교회 세 곳도 매주 일요일 예배를 보는데, 출석 인원은 좀처럼 열 명을 넘기기 어렵다. 유난히 독실한 에바에게 나는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정말로 북극에서는 지옥이 불지옥이 아니라 얼음 지옥으로 묘사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예전에 무슨 신화 책 같은 데서 읽었다. 초기 선교사들이 에스키모에게 회개를 촉구하면서 "죄를 지으면 뜨거운 불지옥에 빠질 것이오!"라고 경고하자., 에스키모들이 잠시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다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지옥에 가면 더 이상 이런 매서운 추위는 없겠구나! 만세다! 그래서 북극에서만은 죄를 지으면 불지옥이 아니라 지독하게 추운 얼음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으로 설교 레퍼토리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에바는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아니야, 여기도 불지옥이야!" (본문 중에서)
사실적이라고 해서 재미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북극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아내는 정다운 시선이 북극의 황량함을 상쇄합니다. 책 제목만 봤을 때는 <북극의 눈물> 같은 다큐 프로그램에서 봤음직한 황홀하고 광활한 북극의 대자연을 떠올렸습니다. 환한 여름밤, 신비한 오로라, 조각난 얼음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북극곰 같은 것들요. 오로라도 있고 북극곰도 출연하기는 하지만, 부분적이라 할 수 있고요. 북극 사람들이 지닌 역사나 환경, 소소한 일상 같은 데 시선이 향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캐나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스발바르제도, 알래스카. 그런데 어디부터 북극일까요. 북위 66.5도, 이 선 너머가 북극이라고 합니다. 각 도시마다 북극선이 표시되어 있는데요. 저자 최명애는 남편 '북극곰(애칭)'과 함께 북극선을 따라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 책의 시작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리고 2011년 1월부터 7월까지 <주간경향>에 '최명애의 북위 66.5도'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을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북극곰은 아마도 지구 상에서 가장 고독한 동물일 것이다. 이 거대하고 하얀 동물은 무리를 짓지 않는다. 혼자 산다. 북극곰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는 대개 한 마리의 북극곰이 할 일 없이 얼음 위를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 북극곰은 북극해와 툰드라를 왔다 갔다 하며 평생을 보내는데, 길게는 한 해에 6203킬로미터를 이동했다는 기록도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카까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총 연장이 9288킬로미터다. 시베리아의 3분의 2가 넘는 거리를 혼자 다녔을 북극곰의 고독을 생각하면 아득한 기분이 든다. 밤만 계속되는 가운데 얼어붙은 북극해를 건너가면서 북극곰은 무슨 생각을 할까. (본문 중에서)
신문사에서 여행 분야를 담당해 온 최명애는 에코 트래블, 즉 생태 관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야생동물과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훼손하고 상품화시키는 "파괴적이고 소비적인 여행"에서 방향을 돌려 "환경과 여행의 행복한 공존을 도모하"자는 것이지요. 책 전반에서 에코 트래블의 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동물과 인간에 대한 배려, 그리고 삶을 대하는 넉넉한 여유 같은 것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어요. 북극 사람들의 다소 경직되고 거친 정서를 녹여내는 유연한 시선이 좋습니다.
다시 육천만 년이 흐른 뒤에도 이 인류의 모자이크는 그대로 여기, 살아 남아 있을까. 나 같은 누군가가 쪼그리고 앉아 빙퇴석 더미를 뒤지며 까마득한 시절의 흔적을 뒤적이게 될까. 그때의 후손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두 팔과 두 눈을 가졌을까. 아니면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눈과 머리만 커다랗게 진화했을까. 시간을 거꾸로 돌려 육천만 년 전의 인류는, 이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지금처럼 눈과 얼음의 땅이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헤아릴 수 없이 까마득한 시간대를 머릿속으로 여행하는데, 이탈리아 꼬마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은행잎이 선명하게 새겨진 화석이었다. "예쁘구나." (본문 중에서)
말괄량이 삐삐와 닐스, 자일리톨과 바이킹. 김대중 전 대통령의 흔적 등 우리에게 친숙한 것들도 북극에 속해 있었습니다. 반갑고 즐겁습니다. 춥고 황량하기만 한 나의 북극에도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나의 북극은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이 책 덕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