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의 심리학 - 당신의 감정, 판단, 행동을 지배하는
데이비드 맥레이니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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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 are not so smart. 우리 삶의 크고 작은 결정과 판단, 행동을 좌우하는 것이 다름 아닌 '착각'이라고 주장하는 이 책의 원제입니다. 삶의 결정권이 온전히 자신에게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인정할 수 있는 문장은 아닐 텐데요. 이같은 자존감마저도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요? 

 

      1990년대, 실패와 성공이라는 문제에 관한 한 사람들이 얼마나 착각에 빠져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연구 결과 사람들은 성공할 때는 칭찬을 받아들이지만 실패할 때는 불운, 불공정한 규칙, 까다로운 교사, 못된 상사, 사기꾼 등을 탓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을 잘하고 있을 때는 자신에게 비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이 잘 돌아가지 않을 때는 세상이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문 중에서)

 

 

     기본적으로 낮은 인간의 자존감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문제들, 열등감, 자학 등과 같은 수많은 자기혐오 노이로제는 심리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존감 형성을 돕는 다양한 심리학적 시스템도 속속 등장하고 있고요. 그런데 지난 50여 년 동안 이루어진 연구 결과는 전혀 상반된 진실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침체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스스로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인데요. 심리학 용어로 자기 위주 편향(self-serving bias)이라 부릅니다. 자기 위주 편향은 우리가 생각보다 똑똑하지도 착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하고 있음을 일깨웁니다. 스스로를 실제 이상 잘났다고 인식하는 자기기만은 우리 자존감을 유지해주고 삶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주지만, 우리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해악 역시 피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똑똑하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우리 기분 따위 아랑곳없이 이 책은 우리 삶 곳곳에 뿌리 박힌 착각의 메커니즘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지금 볼 영화와 나중에 볼 영화를 선택하는 것은 막대사탕과 당근의 대결과 같은 것이다. 계획을 세울 때는 착한 천사가 영양가 있는 음식을 가리키지만 막상 그 순간이 되면 맛이 좋은 음식을 선택한다. 이러한 경향을 현재 편향(present bias)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쉽게 말해 지금 원하는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다는 점과 지금 원하는 것이 나중에 원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주제에 따라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인지적 편견', '발견적 학습', '논리적 오류'에서 출발하는 서른아홉 가지 착각 기제들을 실제 사례와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여행을 가서 사진만 찍어대고, 거대한 재앙을 앞에 두고도 태연한 사람들의 태도. 당장 읽지도 않을 책들을 쌓아두는 심리 등.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상식과 관습을 보기좋게 뒤엎고 있는 이 책을 읽다 보면 원제(You are not so smart)를 대할 때 들었던 반발심이 공감으로 전환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 나는 생각만큼 똑똑하지 않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지요.

 

      기억은 너무나 쉽게 오염되고 어떤 생각이 몇 번만 되풀이되어도 인생 전체가 다시 쓰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기억이 바뀔수록 바뀐 기억에 대한 당신의 확신은 점점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친구, 가족 그리고 온갖 미디어가 당신의 생각과 감정에 가차 없이 쏟아붓는 공격을 고려할 때, 당신의 기억 중에서 정확한 것은 얼마나 되는가? (...) 오정보 효과를 고려한다는 것은 목격자의 증언과 자신의 과거를 늘 의심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누군가 확실하다고 말했던 이야기가 나중에 알고 보니 재미있으라고 덧붙인 이야기이거나 심지어 전혀 사실이 아닌 이야기였을 때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본문 중에서)

 

 

     감정과 판단, 행동에 숨은 오류를 집어내는 착각 기제들은 우리 인간의 불완전함을 일깨웁니다. 우리의 생존 전략이 때때로 우리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일러주지요.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나면 보다 관대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이 책의 중요한 가치는 여기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책에서 제시하는 착각 기제들을 잘 활용하면 우리는 보다 관대하고 똑똑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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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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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굿바이 동물원>은 정리해고를 당한 서른 여섯 가장 영수의 처절한 생존기를 발랄한 필치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실직자가 된 영수가 각종 부업을 거친 끝에 동물원에 취직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이 동물원, 뭔가 수상합니다. 진짜 동물은 없고 동물의 탈을 쓴 인간들이 연기를 하고 있어요. 서너 마리씩 무리를 지은 동물인간들은 관람객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동물의 습성과 무관한 연기도 서슴지 않습니다.
 
    어차피 동물원이라는 데가 서비스업체다. 그리고 거기에서 근무하는 고릴라는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근로자다. 고객 만족이라는 대의 아래 물심양면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돌멩이나 쓰레기 따위, 무서워하면 자격 미달이다. 막대기로 쿡쿡 찌르는 것쯤, 웃어넘길 줄 아는 소양을 갖춰야 한다. (본문 중에서)
 
 
     동물의 탈을 쓴 인간들의 동물원을 통해 강태식은 자본주의 경쟁 사회의 냉혹한 생존을 재현하고 있는데요. 마운틴고릴라로 취직한 영수와 그 무리, 조풍년과 앤, 대장 만딩고의 사연은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약자의 상처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오물처리반에서 일하던 조풍년과 취업준비생 앤, 남파 간첩 만딩고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은 경쟁 사회의 법칙, 약육강식의 무자비함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동무는 나를 이길 수 없소. 왠 줄 아시오?" 
    만딩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연락책이 씨익, 소름 끼치게 웃으며 다음 말을 이었다. 
    "바로 이 회칼 때문이오."
    연락책이 회칼을 잡아당겼다. 오른쪽 어깨가 앞으로 쏠렸다. 연락책의 뼈가 갈리면서 다시 서걱, 소리를 냈다. 
    "회칼은 무섭지 않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뭔 줄 아시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에 대해 만딩고는 잠깐 생각했다. 회칼보다 무섭고, 어쩌면 죽음보다 무서운 것. 연락책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것...... 
    "돈이오. 나는 돈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소."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 1억 원'의 포상금. 연락책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돈을 벌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동물의 탈을 피신처 삼아 숨어들었지만 인간적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동물(인간)들은 하나 둘 콩고의 야생으로 떠나기 시작합니다. 동물원 원장과 사육사들을 엿먹이는 동물들의 일탈 행위에서 일말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저만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사회적 억압과 모욕과 수치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우리의 상처를 위로 받는 기분이랄까요. 그러나 그것도 순간. 미지의 야생은 아득히 멀고, 우리는 이미 동물원의 삶에 길들여졌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습니다. 동물원에 남은 영수는 그런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나도 안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또 안다, 내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인간이라는 것도. (본문 중에서)
 
 
     우리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동물원에 비유하고 있는 이 소설은 시종 능청스러운 유머를 구사하고 있는데요. 다소 지나치다는 감도 없지 않습니다. 이를 테면 초반부에 등장하는 부업 장면에서 본드로 인한 환각 장면이 그렇습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해요. 작가의 유머가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약육강식, 돈의 노예 등 직접적인 표현 역시 소설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포스트모던 리얼리즘'이라는 고급스러운 해석을 덧붙이고 있지만, 달리 표현하면 통속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전반적인 이야기 구조부터 특색없는 문체까지 아쉬움이 크게 남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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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여행자 - 북위 66.5도에서 시작된 십 년간의 여행
최명애 글.사진 / 작가정신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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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내내 곁에 두었던 책입니다. 그러면서도 읽는 속도는 더뎠습니다. 띄엄띄엄 행간을 걸었습니다. 걷다가 걷다가 서늘하게 펼쳐진 풍경에 오래 눈길도 주면서. 그렇게 한 철을 지나왔던 것 같아요.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눈은 지치지도 않고 내렸다. (본문 중에서)

 

      저에게 북극은 미지의 땅이었습니다. 북극. 얼마나 망연한 이름입니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계절. 얼어붙은 풍경. 얼음 조각을 붙들고 떠다니는 짐승의 고독. 북극,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었는데요. 처음에는 억울한 생각도 들었어요. 고향을 잃어버린 심정이라 할까요. 아주 현실적인, 실재하는 북극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행기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눠볼 수 있지요. 안과 밖. 내면의 지도를 따르는 여행과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시간, 혹은 시각을 그대로 반영하는 여행기. 그러니까 이 책은 후자의 경향이 크다고 할 수 있어요. 기자 출신답게 사실적인 서술이 돋보입니다. 담백합니다. 지나치게 감성에 호소하는 여행기에 질린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포인트호프 교회 세 곳도 매주 일요일 예배를 보는데, 출석 인원은 좀처럼 열 명을 넘기기 어렵다. 유난히 독실한 에바에게 나는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정말로 북극에서는 지옥이 불지옥이 아니라 얼음 지옥으로 묘사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예전에 무슨 신화 책 같은 데서 읽었다. 초기 선교사들이 에스키모에게 회개를 촉구하면서 "죄를 지으면 뜨거운 불지옥에 빠질 것이오!"라고 경고하자., 에스키모들이 잠시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다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지옥에 가면 더 이상 이런 매서운 추위는 없겠구나! 만세다! 그래서 북극에서만은 죄를 지으면 불지옥이 아니라 지독하게 추운 얼음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으로 설교 레퍼토리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에바는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아니야, 여기도 불지옥이야!" (본문 중에서)

 

        사실적이라고 해서 재미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북극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아내는 정다운 시선이 북극의 황량함을 상쇄합니다. 책 제목만 봤을 때는 <북극의 눈물> 같은 다큐 프로그램에서 봤음직한 황홀하고 광활한 북극의 대자연을 떠올렸습니다. 환한 여름밤, 신비한 오로라, 조각난 얼음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북극곰 같은 것들요. 오로라도 있고 북극곰도 출연하기는 하지만, 부분적이라 할 수 있고요. 북극 사람들이 지닌 역사나 환경, 소소한 일상 같은 데 시선이 향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캐나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스발바르제도, 알래스카. 그런데 어디부터 북극일까요. 북위 66.5도, 이 선 너머가 북극이라고 합니다. 각 도시마다 북극선이 표시되어 있는데요. 저자 최명애는 남편 '북극곰(애칭)'과 함께 북극선을 따라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 책의 시작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리고 2011년 1월부터 7월까지 <주간경향>에 '최명애의 북위 66.5도'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을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북극곰은 아마도 지구 상에서 가장 고독한 동물일 것이다. 이 거대하고 하얀 동물은 무리를 짓지 않는다. 혼자 산다. 북극곰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는 대개 한 마리의 북극곰이 할 일 없이 얼음 위를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 북극곰은 북극해와 툰드라를 왔다 갔다 하며 평생을 보내는데, 길게는 한 해에 6203킬로미터를 이동했다는 기록도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카까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총 연장이 9288킬로미터다. 시베리아의 3분의 2가 넘는 거리를 혼자 다녔을 북극곰의 고독을 생각하면 아득한 기분이 든다. 밤만 계속되는 가운데 얼어붙은 북극해를 건너가면서 북극곰은 무슨 생각을 할까. (본문 중에서)

 

     신문사에서 여행 분야를 담당해 온 최명애는 에코 트래블, 즉 생태 관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야생동물과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훼손하고 상품화시키는 "파괴적이고 소비적인 여행"에서 방향을 돌려 "환경과 여행의 행복한 공존을 도모하"자는 것이지요. 책 전반에서 에코 트래블의 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동물과 인간에 대한 배려, 그리고 삶을 대하는 넉넉한 여유 같은 것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어요. 북극 사람들의 다소 경직되고 거친 정서를 녹여내는 유연한 시선이 좋습니다.

 

     다시 육천만 년이 흐른 뒤에도 이 인류의 모자이크는 그대로 여기, 살아 남아 있을까. 나 같은 누군가가 쪼그리고 앉아 빙퇴석 더미를 뒤지며 까마득한 시절의 흔적을 뒤적이게 될까. 그때의 후손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두 팔과 두 눈을 가졌을까. 아니면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눈과 머리만 커다랗게 진화했을까. 시간을 거꾸로 돌려 육천만 년 전의 인류는, 이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지금처럼 눈과 얼음의 땅이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헤아릴 수 없이 까마득한 시간대를 머릿속으로 여행하는데, 이탈리아 꼬마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은행잎이 선명하게 새겨진 화석이었다. "예쁘구나." (본문 중에서)

 

 

     말괄량이 삐삐와 닐스, 자일리톨과 바이킹. 김대중 전 대통령의 흔적 등 우리에게 친숙한 것들도 북극에 속해 있었습니다. 반갑고 즐겁습니다. 춥고 황량하기만 한 나의 북극에도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나의 북극은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이 책 덕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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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마음이 궁금해 - 한국 최초 애니멀커뮤니케이터에게 배우는 동물 교감법
박민철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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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인가요. 'TV 동물농장'에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는 미국인 '하이디(Heidi Wright)'가 등장해 화제를 낳았던 적 있었죠. '동물 심리 분석가'라고도 하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는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동물의 마음을 읽고 사람들에게 대신 전달해 주는 일을 합니다. 방송 당시 하이디는 직접 동물과 교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동물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사연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지요. 하이디의 등장으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습니다.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를 꿈꾸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개와 함께 살고 있는 저 역시 마찬가지였죠. 3년 정도 몸을 부비며 살다 보니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웬만한 단어와 짧은 문장도 다 알아듣고요. 때때로 이 녀석이 개라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입니다. 우리는 아주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 친구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하이디가 개들과 교감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내 친구의 마음이 궁금해졌습니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건 내 위주의 생각이었던 것 아닐까 불안해진 것입니다. 사람의 습성을 따르고 닮아가면서 살아가고는 있지만, 개는 개인 것이지요. 난생 처음 개를 키우게 되면서 여기 저기서 조언과 정보를 구하면서 어설픈 동거인 노릇을 해왔는데요. 그 일련의 과정은 개의 습성을 몰아내고 인간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내 친구는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미안합니다. 이제라도 마음을 전하고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런 바람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가 언급한 "사랑하면 보이고, 보이면 알게 되나니, 그때 보이는 건 예전 같지 않더라." 라는 말은 동물에도 해당되는 말 같다. 동물을 사랑하고 관심을 기울이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느껴지는 게 많다. 물론 단순히 느끼는 것만 가지고 '대화'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대화의 물꼬는 틀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그의 말에 집중할 수 있는 것처럼. (본문 중에서)  

 

 

     국내 최초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박민철 씨는 이 책에서 동물 교감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애정과 관심만 있다면 누구라도 동물과의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교감,이란 건 단순한 느낌을 넘어선 직접적인 대화입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그것처럼 말입니다. 일반인에게는 신기한 초능력처럼 보이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즉 동물 심리 분석가는 한국 직업능력개발원에 자격증이 등록된 공인된 직업입니다. 그것도 최근에 이루어진 일이라 여전히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직업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 책은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줍니다. 어떤 원리로 동물과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인지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그가 제시하는 몇 가지 교감법은 명상에 드는 상태와 비슷해 보입니다. 심장박동과 호흡에 집중해 동물과 주파수를 맞추는 방식이지요. 그 과정에서 동물과 이미지를 주고 받으며 교감이 이루어집니다. 방법은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무턱대고 해서는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아요. 동물 교감, 즉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서는 심신의 안정이 필수라고 하니까요. 균형잡힌 식생활과 규칙적인 운동, 과도한 전자기기 사용 자제 등 건강한 생활 습관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동물 교감을 위해 심장을 느낄 때 가장 중요한 건 불규칙한 심박의 패턴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바로 나와 교감을 하려는 동물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다. 그래야 그들의 심장 리듬과 어울리는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 사랑이 없으면 교감이 되지 않는다. 파동이 찌그러져 동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책 전반에서 강조하는 것은 동물에 대한 존중과 사랑입니다. 동물 교감을 위해서는 동물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4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동물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동물의 기본적인 습성과 그에 적절한 대처법은 물론 동물 유기와 학대 관련법, 동물 실험 등 사회적 문제까지도 다루고 있어요.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분들에게는 익숙한 정보일지도 모릅니다. 여타 동물 관련 서적에서 흔히 보았던 정보라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동물과의 불화로 힘들어하는 분들, 동물의 기본 습성을 궁금해하는 분들, 이제 막 반려동물과의 삶을 시작한 분들에게는 유익한 정보가 될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선택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주목적은 동물 교감일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매우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전문적인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를 꿈꾸는 사람도 읽어볼 만합니다. 그런데 과연 어느 정도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네요. 일반인에게는 다가가기 힘든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책에 담긴 동물에 대한 존중과 애정만은 누구에게나 전해질 거라 믿어요.  

 

 

 

                                  토킹애니멀즈 카페 http://cafe.daum.net/ldkf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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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와 이발사
에트가 힐젠라트 지음, 배수아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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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독일계 유대인인 작가 자신의 홀로코스트 경험을 토대로 씌여졌습니다.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다양한 예술작품이 많은데요. 대부분의 작품이 희생자에 초점을 맞추는 데 반해 이 작품은 홀로코스트 가해자 '막스 슐츠'의 관점을 통해 독일 나치 시기의 참극을 풀어냅니다. 주인공이자 화자로 등장하는 '막스 슐츠'는 나치 당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합니다. 그의 손에 목숨을 잃은 유대인 희생자 중에는 어린 시절 가깝게 지낸 이치히 핀켈슈타인도 끼어 있는데요. 독일이 패전하고 학살 전범자가 된 그는 이치히 핀켈슈타인으로 교묘하게 신분을 위장합니다. 이 시점부터 "나 이치히 핀켈슈타인, 한때는 대량 학살자 막스 슐츠였던......"이라는 멘트가 자주 등장합니다. 별로 진중한 말투는 아니죠. 대량 학살을 저지른 자의 죄책감 따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듯이 심상한 태도로 일관하는데요. 어느 순간 이치히 핀켈슈타인의 가면을 쓴 대량 학살자 막스 슐츠의 정체성이 불투명해집니다. 정확히 말하면, 독자 입장에서 조금 혼란을 느낀다고 할까요. 이치히로 변신한 막스는 유대 민족의 편에 서서 활동하기 시작하는데요.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서는 이스라엘의 건국을 위해 지하 테러리스트 활동을 자처하고 나서기까지 합니다. 심근 경색으로 쓰러진 이후에는 유대인 랍비의 심장을 고집해서 이식받기도 하고요. 신분 위장을 위한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친 면이 있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자처하는 그에게서 유대인의 정신, 진심이 느껴지기까지 하니까요. 이같은 상호 정체성 혼동은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라고 하는데요. 진중하지 못함, 그러니까 가해자와 희생자에 대한 희화화는 출간 당시 많은 논란을 낳았다고 합니다.

 

 

       상상을 해보라. 우리는 모두 살짝 취한 상태이다. 독실한 유대교인들이 웃고, 손가락을 튀기고, 수염을 간당거리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흥겹게 춤을 춘다. 나를 잡아끈다. 나도 그들과 어울려 춤을 춘다. 나는 약간 취기가 돈다.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나 자신도 다르게 보인다. 등에는 금니 자루를 둘러메고, 춤추는 내가 보인다. 내가 죽인 이들이 보인다. 그들도 함께 어울려 춤추고 있다. 망자들의 원무이다. 우리, 산 자들은 그 가운데에서 춤춘다. 음악이 우리를 위해서 울린다. (본문 중에서)

 

 

 

      역사적 참극을 다루는 이 소설은 심상한 어조와 경쾌한 리듬으로 진행되는데요. 암울한 진실을 굳이 암울하게만 이야기해야 할까요. 《나치와 이발사》에서 보여주는 익살과 풍자가 진실의 무게를 간과하지는 않습니다.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지요. "이치히 핀켈슈타인, 한때는 대량 학살자 막스 슐츠였던" 주인공(나)의 이중적 정체성을 내세워 중립의 자세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짐짓 익살을 떨고 있지만 읽는 내내 불편함을 떨칠 수 없지요. 잔인한 학살 장면이나 폭력적이고 변태적 성(性) 묘사 부분이 특히 그렇습니다.

 

 

     나, 막스 슐츠, 미래의 대량 학살범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아직 순결무구한 상태였는데, 그때 막 골수를 뒤흔드는 처절한 비명 소리를 내고 있었고, 사지를 버둥거리며 몸을 뻗대고, 터져 나온 이발 의자 쿠션의 대팻밥을 필사적으로 움켜쥐고, 머리를 최대한 위로 치켜세웠는데, 핏대 오른 내 머리통은 무섭도록 시뻘건 색깔로 변해 있었다. 나는 또다시 오줌을 쌌다.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도. 그리고 방귀도 뀌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떤 것이, 방귀 나오는 구멍이 꽉 막혀 있었으니. 내 몸은 움찔움찔 경련하기 시작했고, 내 귀에는 천사들의 합창 소리가 들려왔다. (본문 중에서)

 

 

 

      막스는 상처를 지닌 인물입니다. 유아기에 의붓아버지인 슬라비츠키에게 수차례 강간을 당하지요. 무기력하고 음탕하기만 한 어머니에 대한 혐오감에 더해져 그의 마음속 분노는 극에 달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히틀러의 연설은 그의 안에 내재하고 있던 분노와 폭력성을 분출시키는 계기가 되는데요. 작가는 이 결정적인 장면, 히틀러의 연설에 고무하는 대중의 모습을 성서의 산상 수훈과 절묘하게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이 부분 역시 종교적 조롱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지만, 좀 더 주의를 기울이면 숨은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받은 상처 하나당 한 명의 희생자를 원했다. 내가 받은 조롱 하나하나마다 한 명씩의 희생자가 필요했다. 그 조롱이 신으로부터 온 것이든지, 아니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온 것이든지 상관없이 말이다. 오늘날 나는 그때 왜 우리 모두의 목구멍에서 튀어나온 가래 덩어리가 허공을 멀찍이 날아가 무고한 자들을 맞추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당시 우리는 특별히 그들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숨통이 좀 트이라고 답답한 이물질을 뱉어 낸 것에 불과했다. 그때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본문 중에서)

 

 

 

       히틀러의 연설에 열광하는 대중 개개인은 저마다의 상처와 소심한 분노를 품고 있습니다. 그것을 뿜어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던 그들 앞에 히틀러가 나타나 지시를 하고 명령을 내려주었던 것뿐이라는 것이 이 장면이 주는 암시입니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막스의 일관적인 태도 역시 이와 맥을 같이 합니다. 그들의 학살에는 확고한 목적의식 따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지요. 홀로코스트의 비극과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분노는 여기서 출발하는 것 아닐까요. 작가는 막스를 내세워 '무죄'를 말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막스 슐츠 (max. Schuld, '최대 유죄'라는 뜻)의 이름이 갖는 상징성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가상재판의 내용은 의미심장합니다. 소설 원본에서는 막스가 죽은 이후 신과 대면하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독일어판에서는 이 부분이 삭제되었다고 합니다. 전쟁의 상흔은 그토록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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