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마이클 거리언 지음, 안미경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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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그레이가 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근본적으로 다른 남녀의 사고방식과 소통법을 다루고 있죠. 쉽고 인상적인 비유와 실사례들을 통해 남녀의 차이점을 풀어쓰고 있어서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는 것 같은데요. 지금 소개하는 이 책은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의 뇌구조 해부도 정도 되겠네요. 우리 뇌의 신경전달물질, 즉 호르몬 작용에서 남녀의 차이점을 짚어내고 있거든요.

 

      비록 인간의 뇌가 성장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변형되고 환경에 큰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뇌의 남성성과 여성성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융통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남자와 여자는 일생을 통해 새로운 신경기능을 익히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기본적인 인격구조가 일생을 통해 크게 바뀌지 않듯이 인간의 뇌도 완전히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본문 중에서)


    기본적으로 같은 호르몬을 공유하는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구별짓는 것이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분비량인데요. 생물학자들은 남자의 뇌와 여자 뇌 사이에도 상당한 너비의 스펙트럼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호르몬 분비량에 따라 정형적인 남자 뇌(또는 여자 뇌)의 한계 안에서도 그 행동 범위는 다양하다는 것이죠. 이를 테면 남자에게서도 여자의 특성이 나타날 수 있고 여자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남자의 특성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예외적인 뇌를 '브리지 브레인(bridge brains)'이라고 부르는데요. 현대 사회에서 여성들이 선호하는 이상형이 바로 브리지 브레인 남성이라고 합니다. 여자 뇌를 가지고 있는 이 남성들은 정서적인 교감, 즉 대화하기를 즐기고 집안에 있기를 좋아하는 등 매우 가정적인 성향을 띠기 때문이죠. 그러나 일반적인 남자들은 여자들의 욕구와는 정반대의 기질을 보입니다.

 

     감정에 관해서라면 남자의 뇌는 여자와 다르게 반응할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의 뇌와 반대현상이 일어난다. 여자를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남자를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를 벌어지게 만드는 대표적인 문제가 의사소통이죠. 감정적인 대화를 통해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기를 원하는 여자의 욕구가 남자에게는 큰  스트레스가 되는데요. 책에 의하면 이는 남자와 여자의 뇌 화학물질의 차이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남자 뇌를 지배적으로 구성하는 테스토스테론과 바소프레신은 공격성과 독립성을 증가시키는 반면에 여자는 테스토스테론과 바소프레신의 양이 적고 충동억제 호르몬인 세로토닌과 공감 호르몬인 옥시토신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남성성과 여성성의 핵심이 되는 이 호르몬들은 남녀 사이에서 빚어지는 수많은 오해와 갈등을 해결하는 좋은 열쇠가 됩니다. 옥시토신의 작용에 의한 여자의 친밀감의 욕구와 테스토스테론에 의한 남자의 독립성의 욕구를 잘 조화시킨다면 원만한 남녀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인데요. 신경생리학적인 용어로 친밀-분리 이론이라고 합니다. 이 책을 이끄는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가족문제 상담치료사인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친밀-분리 이론이 어떻게 남녀관계를 변화시키는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같은 남자다. 하지만 그의 뇌는 몇 년 사이에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 거기에 적응하며 살고 있다. 동시에 그녀도 예전에 남자가 사랑했던 여자와 같은 여자이지만 뇌는 시간의 변화에 새롭게 적응했다. 그녀는 아마도 예전만큼 섹스를 나누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남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을 차려입지도 않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결혼생활에서 오는 서로에 대한 실망감과 환멸은 뇌 화학적으로 볼 때 당연한 결과입니다. '사랑의 콩깎지'를 가능케 해준 페로몬의 분비량이 감소하면서 남녀의 뇌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대부분의 남녀는 이 뇌화학적인 변화를 모르고 결혼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많은 부부들이 오해와 상처의 굴레 안에서 멀어집니다. 이런 것이 결혼인가 보다, 때이른 체념 속에 살아가는 불행한 부부들에게 이 책은 명쾌한 해답을 던져줍니다. 서로의 근본적인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배려하는 것. 말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 다가갈 때와 기다릴 때를 아는 것. 이것이 친밀-분리 이론이 제시하는 답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다른 모든 일은 그것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 -릴케


     남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책의 제목이 된 이 문장은 저자의 아내와 그 친구들에게서 받은 질문이라고 하는데요.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풀어내고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남성성의 핵심, 그러니까 남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하는 이 책이 일깨우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역설적이게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고 착각하거나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남녀 갈등이 싹튼다는 것입니다. 대화는 매우 중요하지만 때때로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는 것이죠. 남성성의 핵심을 탐색하는 작업에서 여성성에 대한 이해는 필연적인데요. 뇌화학적인 측면에서 남성성의 핵심을 풀어내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여성성에 대한 이해로도 이어집니다. 남녀 모두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어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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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별을 먹자 - 일본 세계숨은시인선 4
나나오 사카키 지음, 한성례 옮김 / 문학의숲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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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나오 사카키는 가히 우주적인 생을 누린 시인입니다. 돈도 집도 소유하지 않고 세계를 떠돌던 나나오에게 지구별은 고향이고 집이었습니다. 숲에는 버섯, 강에는 물, 들에는 곡식, 길에는 꽃, 하늘에는 태양. 자연 속에서 그는 누구보다 풍요한 생활을 누렸습니다. "하루에 현미 한 홉 야채와 작은 생선/ 거기에 약간의 물과 듬뿍 바람을 먹고(...)/비누 샴푸/ 화장지 신문 돌아보지도 않고(<자서전>)", "사랑하는 행성(<나나오 사카키 저택 신축 설계서>)" 지구 위에 집을 짓고 굴뚝새와 검독수리, 크릴새우와 향유고래, 도롱뇽과 청개구리, 반딧불이와 더불어 살았던 그는 실천적인 생태주의자였습니다.

     "나는 인류와 합동이다/ 인류는 포유류와 합동/ 포유류는 동물과 합동/ 동물은 생물과 합동/ 생물은 지구와 합동/ 지구는 태양계와 합동/ 태양계는 은하계 우주와 합동/ 은하계 우주는 대우주와 합동/ 따라서 나는 대우주와 합동이다(<공리公理>)" 내가 곧 부처다,라는 불교의 핵심 진리는 나와 세계가 곧 하나라는 깨달음에서 시작됩니다. 나나오의 시 곳곳에서 보여지는 생태주의는 이 불교적 사상과 맥을 같이 합니다. "떡갈나무 낙엽 밝고 가는/ 검은 꼬리 사슴/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그들의 발자국을 밟고 간다/ 바로 나는/ 다섯 번째 사슴(<다섯 번째 사슴>)", "조그맣고 조그만 청개구리/ 방바닥에 척하니 앉아 있다//그리고 나도/ 청개구리(<청개구리>)".

    그의 의식은 아주 작은 "반딧불이(<아주 작은 것들>)"에서 "반경 1만 광년/ 은하계 우주(<러브레터>)"의 "봄꽃(<앞의 시>"에까지 자유롭게 넘나들어요. 절제와 무소유로 점철된 긴 방랑의 삶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발 가는 대로/ 알래스카 빙하 멕시코 사막 태즈메이니아 원생림/ 다뉴브 골짜기 몽골 초원 훗카이도 화산/ 그리고 오키나와 산호초(<자서전>)"를 제 집 삼아 "추우면 누군가를 껴안(<나나오 사카키 저택 신축 설계서>)"고 "더우면 뼈까지 알몸이 되(앞의 시)"고 "시장하면 손바닥의 콩을 먹(앞의 시)"고 "슬프면 뜨거운 눈물의 수프를 마시(앞의 시)"면서 우주적 여행을 한 흔적이 바로 이 한 권의 시집입니다.

     소박하고 단순한 어휘와 자유로운 리듬. 하이쿠를 현대화한 그의 시는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간혹 예리한 비판의식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순수한 동심입니다. 평생 이 순수함을 간직한 채 시인, 노숙자, 여행자, 가수, 생태주의자로서 살았던 나나오는 배낭 하나를 유품으로 남기고 지구별을 떠났습니다. "수염에 고드름/ 스노슈즈에 스키 스톡/ 눈의 바다를 저어(<눈의 바다를 저어간다>)" "은하수 너머(앞의 시)" "지구 B(앞의 시)"로 날아갔지요. 그리고 나는 여기 "지구 A(<앞의 시)>)"에서 "지구 B(앞의 시)"의 메시지를 읽습니다. "숲과 물 풍부하고/ 꽃 새 짐승이 아리땁고/ 사람은 무지개로 짠 비단 몸에 걸치고/ 춤과 노래로 말을(앞의 시)" 하는 지구 B로부터 온 나나오의 메시지가 지구 A에 있는 우리에게 일꺠우는 것은 바로 무욕(無慾)과 동심(童心).

 

          나를 찾아올 때면(...) 그는 노래하면서 온다. 먼 곳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그가 왔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 게리 스나이더(Gary Snyder, 1930~)

 

 

 

 

노래해 줘요

 

노래해 주지 않겠다면

웃어 줘요

 

웃어 주지 않겠다면

울어 줘요

 

울어 주지 않겠다면

나가 줘요

 

 

 

나나오 사카키, <있잖아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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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코츠키의 경우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7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이수연.이득재 옮김 / 들녘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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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과 가족의 가치가 국가적 이념에 의해 희생되었던 소비에트 시대를 "배반의 시대"라 규정하는 울리츠카야는 이 소설에서 2차 대전 전후와 소비에트 체제 하의 1960년대 러시아를 배경으로 쿠코츠키 일가의 특별한 연대기를 통해 참된 가족의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나의 소설은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가족의 의미를 찾는 것으로 가족과 가정에 대한 나의 진혼곡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인터뷰에서)

 

     쿠코츠키 일가는 역설적이게도 가족의 붕괴와 함께 완성됩니다. 주인공 파벨은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재혼으로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산부인과 의사인 그는 어느 날 자신에게 신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요. 내면투시입니다. 다른 사람의 신체 내부를 투명하게 꿰뚫어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의사로서의 삶에는 매우 유용한 능력이지요. 그런데 이 능력은 금욕적인 생활, 즉 남자로서의 본능적 삶을 버려야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투시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생식의 욕구를 포기해 온 파벨은 어느 날 자신의 환자였던 엘레나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고 결혼합니다. 이상하게도 엘레나와의 성관계만은 투시 능력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지만, 자궁을 도려낸 엘레나는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지요. 엘레나에게는 전장에서 죽은 전남편의 딸 타냐가 있었고, 그 부부, 파벨과 엘레나에게 유일한 자식이 됩니다.

 

    아기는 이미 자의식을 가지고 있을 거야. 그건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자신을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이지. 그 세계란, 나의 기쁨인 바로 너를 말하는 거야. 왜냐하면 태어나기 전 아기에게 전 세계는 엄마니까. 남자들은 그 전 세계, 우주가 결코 될 수 없지. 하지만 임신한 여자, 적어도 임신 후반기의 여자는 태아에게 완전한 하나의 우주가 된단다. 타냐야, 내가 보기엔 새끼를 낳은 후에 어미가 빨리 죽어버리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어찌 보면 우주가 또 하나의 우주를 낳는 거지. (583쪽)

 

    울리츠카야는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한 최초 외국인 작가인데요. 그래서인지 국내 독자들의 관심이 큰 것 같아요. 이름도 생소한 러시아 작가와 박경리 문학상의 연관을 궁금해하는 것일 텐데요. 토지문화재단은 "건강한 주제의식과 그에 걸맞은 문체, 삶의 정수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그리고 그것을 담아내는 미학적 구성능력 등의 문학성"과 "역사의식"을 선정 이유로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제의식이란 '토지'의 상징인 '생명력', 즉 생명사상과도 잇닿아 있다는 것을 소설을 읽어보면 알게 됩니다. 의붓딸 타냐와 고아 토마에게 혈육애 이상의 각별한 애정을 쏟아붓는 파벨의 직업이 생명의 탄생을 돕는 산부인과 의사라는 상징성과 골드베르그, 바실리사, 타냐 등 인물들의 목소리에 실린 생명윤리 같은 것이 이야기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유전학을 전공한 울리츠카야의 생물학적 지식과 철학적 고민, 신비주의적 믿음 등 전혀 이질의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의 지향점은 결국 생명사상, 그리고 그 안에서 가족의 가치와 의미를 탐색합니다.

 

   '우리는 이상한, 아주 이상한 가족이 아닌가! 오직 두 사람, 엘레나와 타냐만이 혈연으로 이루어져 있고, 나머지 가족들은 운명의 장난으로 모이게 된 탓일까? 혁명의 바람 때문에 오게 된 초라한 바실리사,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오로지 사철나무에만 빠져 있는 토마...... 언제나 우울한 엘레나, 이유 없는 반항으로 몸부림치는 타냐...... 이들 모두가 각자의 소소한 비밀을 가지고 결코 침입할 수 없는 자신만의 새장 안에 갇혀 있지는 않은가.'(298~299쪽)

 

   울리츠카야는 주요 작품들에서 "신성하고도 이상적인 가족을 형성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을 창조해 왔다고 하는데요.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파벨이 바로 그런 인물입니다.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두 딸과 여성성을 잃은 엘레나를 순수한 애정으로 껴안는 그는 거의 신의 존재에 가깝습니다. 비인간적으로 느껴지지요. 파벨에게 투시 능력을 부여한 것도 작가의 의도된 설정이었을 것입니다. 쌍둥이 형제와 타냐의 뒤엉킨 애정관계,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타냐와 세르게이의 혼인 등 상식을 뛰어넘는, 쿠코츠키가가 이룩한 '이상적인 가족'의 토대는 '신성'입니다. '신성한 가족'을 구현함으로써 울리츠카야는 암울한 "배반의 시대"에 희생된 가족의 가치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잃어버린 가족의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이죠.

 

   알고 보면 모두가 감추고 침묵해야 할 무엇인가를 가지고 살고 있었고, 그것이 폭로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난 직후, 그 같은 두려움은 현실적인 공포에 의해 밀려났다.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전장의 공포가 그 두려움을 대신했다. 자신들을 죽이는 독일군이라는 구체적인 적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 적과 맞선 남자들은 단순히 조국만을 위해 싸운 게 아니었다. 자신의 출신성분이나 가족들의 이력에서 비롯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싸웠다. (...)반동분자로 죽은 자의 아이나 전장에서 죽은 군인의 아이가 모두 고아가 되거나, 굶주림과 추위에 고통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 당장은 모든 사람들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에만 관심을 쏟앗다. 그 후의 삶은 생각하지 않았다.(36~37쪽)

 

   소비에트 체제 하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다양한 역사적 변화를 거쳐온 울리츠카야의 경험은 소설 곳곳에 녹아 있는데요. 당시의 사회 정치적 분위기나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 붕괴된 가족, 소외된 개인, 물질과 정신의 대립 등 다각적인 고찰이 이야기에 깊이와 무게를 더합니다. 주인공 파벨과 마찬가지로 의사 집안 출신이라는 것이 당시의 지식인과 상류층의 삶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작가 인터뷰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연구소를 뛰쳐나와 방황하는 타냐의 심리에는 울리츠카야 자신이 연구소에서 일하던 당시의 생명윤리에 대한 고민과 과학에 대한 환멸이 투영되어 있고요. 이렇듯 작가 자신의 실제적인 경험이 녹아 있어서인지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입니다. 많은 논란을 낳았다는 2부에서는 꿈과 환상이 뒤엉킨 몽환적인 묘사를 통해 신비한 감각을 체험하는 엘레나의 심리를 표현하고 있는데요. 다소 어리둥절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읽었지만, 파격적인 시도는 인상적이었습니다. 

 

    '경우'란 복잡한 사건이나 일, 놀라움, 예외 등 다양한 의미를 함축합니다. 저는 쿠코츠키에게 일어난 많은 복잡한 사건들을 이야기했어요. 그의 사건은 우리 각자의 사건이기도 합니다. 《쿠코츠키의 경우》는 우리 모두가 헤엄치고 있는 신의 세계에서 각각의 인간이 '특별한 경우'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작가 인터뷰에서)

 

   울리츠카야가 구현해낸 쿠코츠키 일가, 그 '신성한 가족'의 '특별한 경우'에 온전히 공감할 독자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 '신성'을 이루는 각각의 인물들에게서 발견되는 보편적 인간성은 우리 안에 숨은 특별한 감각을 자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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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잔해를 줍다
제스민 워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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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남부 연안의 흑인 빈민가를 무대로 하는 이 소설은 2005년 여름, 미국 뉴올리언스를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요. 작가인 제스민 워드는 당시 끔찍한 재앙의 생존자입니다. 충격에서 헤어나기까지 2년 여의 시간이 필요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생생한 묘사가 두드러집니다. 

 

       끔찍했다. 바람이다. 매질하는 데 쓰이는 전깃줄처럼 사나운 채찍을 휘두른다. 비. 살갗을 후려치는 돌멩이처럼 우리의 눈 속을 파고들며 눈을 뜰 수 없게 만든다. 물. 사방에서 소용돌이치며 모였다가 굽이쳐나가는 물은, 그 아래 가라앉은 웅덩이 흙 때문에 붉고도 붉어 보여서 피가 그치지 않는 거대한 상처 같다. (본문 중에서)

 

 

      허리케인을 소재로 하고 있다고 하면 재난소설의 형식을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는데요. 이야기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이 소설은 전형적인 성장소설의 범주에 넣을 수 있겠어요. 가상의 도시 부아 소바주 중심에 위치한 작은 오두막을 배경으로 열다섯 살 흑인 소녀 에쉬의 시점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무뚝뚝하지만 속깊은 두 오빠와 어린 동생, 알코올중독자 아버지와의 가벼운 일상, 죽은 엄마에 대한 회상이 이야기의 주를 이루고 있는데요. 변두리 흑인 빈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내 셔츠로 감싼 달걀들이 데운 돌처럼 따뜼하다. 그런데 가볍다. 색깔은 돌 같지만 돌이라깅는 너무 가볍다. 나는 달걀이 자갈 색깔이라서 꼭 그만큼 무거울 거라고 생각했다. 품에 넣으면 내 몸이 앞으로 기울 거라고.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나는 개구리 알이 올챙이로 변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봄에 우리 땅 근처의 도랑에 가보면 개구리 알이 그득했기 떄문이다. 나와 스키타 오빠가 어렸을 때 한번은 도랑가에 엎드려 손으로 개구리 알을 퍼내서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 정말 작은 벌레 같은 개구리들이 있는지, 뒤척거리고 꿈틀거리다 보면 길고 뾰족해져서 쑥쑥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눈을 감은 수백 개의 조그만 눈동자 모양을 하고 있을 때, 알들은 공기보다도 가볍고 산들바람처럼 시원하다. 나는 알 안에 있다면 몸을 보호할 주머니가 필요한 동물들, 그러니까 말이나 돼지나 인간도 그처럼 가벼울까 궁금해졌다. 개똥벌레의 심장을 품은 젤리처럼 투명해 보일까, 아니면 돌처럼 단단하고 고요해 보일까? (본문 중에서)

 

 

       소설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는 작가의 목소리가 있는데요. 생명에 대한 존엄성입니다. 이야기 첫머리부터 들큼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새끼 개들의 출산 장면이 나옵니다. 가족의 일부라 할 수 있는 투견 차이나의 새끼들이죠. 이야기 첫머리를 장식할 정도로 차이나가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큽니다. 차이나와 특별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스키타의 입을 빌려 작가는 그 어떤 생명도 하찮은 것은 없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니어를 낳다 죽은 엄마와 자신의 뱃속에 자라고 있는 아기를 통해 에쉬는 삶과 죽음 너머의 신비를 체험합니다.

 

     폭풍 전야 열흘과 폭풍 당일 그리고 그 다음 날까지를 하루 단위로 구성해 진행되는 이 소설은 '폭풍 전야'의 불안과 긴장을 매우 효과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개의 출산, 농구 시합, 투견 대결 등 자잘한 일상을 보여주면서 크고 작은 시련을 초연히 끼워넣습니다. 에쉬의 임신과 매니의 배신, 개의 죽음, 아버지의 손가락 절단 사고 같은 시련은 무거운 구름을 몰고 빠르게 다가오는 허리케인에 대한 불안감을 고조시키지요. 폭풍 전야,라는 말이 실감나요. 시련과 갈등이 부풀어오르고 묵직해지면 독자는 차라리 폭풍을 기다리는 마음이 됩니다. 미친 바람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기를요. 그리고 허리케인이 들이닥치는 순간 이상한 고요함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흔들리는 컴컴한 다락에 옹그린 채 같이 뒤흔들리면서요. 바람의 말에 귀기울이는 낮과 밤. 부서지고 뒤섞이고 날아가는 시간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제스민워드는 이 고요한 절박감을 소설에 잘 녹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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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 2012년 제13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중혁 외 지음 / 문학의숲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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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지면 길게 늘어졌다 다시 돌아오는, 요요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손에 쥐고 놀려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능숙하게 다루는 아이들만 보고 손에 쥐어본 요요는 그러나 생각만큼 쉽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휘익, 하고 내던지면 이리 튀고 저리 튈 뿐 손 안에 쥐어지지 않던 아쉬움. 올해로 13회를 맞는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 <요요>는 그 허전한 감각을 되살리는 작품이었습니다.

 

      네가 만들어 준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시침과 분침이 겹쳤다가 떨어지는 순간, 그건 멀어지는 걸까, 아니면 다시 가까워지고 있는 중인 걸까. * * 수상작 <요요> 중에서

 

      시계제작자 차선재의 고독한 삶을 압축한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줄여볼 수도 있겠습니다. 시간은 흐른다.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칭 "관계를 부수는 사람" 선재를 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시간에 대한 고찰이 담긴 독특한 시계입니다. 차선재가 만든 시계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저 흘러갑니다. 시침과 분침이 원형의 문자판을 따라 회전하는 반복적 시간에 익숙한 우리에게 그 직선의 시간은 역설적이게도 잃어버린 시간을 상기시킵니다. 내던져진 힘만큼 멀어졌다 되돌아오는 요요처럼요. 멀어지다 가까워지고 또 멀어지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요요의 시간.

 

       걸어가고 있는 장수영의 손을 보았다. 흔들리는 손을 보았다. 저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내가 잡았던 손이었다. 장수영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장수영도 자신을 보고 있는 차선재의 눈길을 알고 있었다. 한번 돌아보면서 손을 흔들까 생각했지만 언제쯤 어떻게 돌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손을 흔드는 건,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이미 주차장 입구로 향하는 계단으로 내려가 버리고 말았다. * * 수상작 <요요> 중에서

 

     요요의 시간은 상실의 감각을 일깨웁니다. 돌아갈 수 없는 순간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 대학 선배 장수영과의 헤어짐과 재회 속에서 선재는 '흐르는 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상실의 시간을 상심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해보자 이거지, 응?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거지? 그래, 찔러봐, 찔러 보라고. 씨팔, 내가 돌아갈 거 같아? 응? * * 김중혁 <바질> 중에서

 

      <요요>와는 또 다른 형식이지만 자선작 <바질>에서도 김중혁은 상실감을 이야기합니다. 박상훈과 담담하게 헤어진 차우영은 이국의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바질 씨앗을 발견하고 손에 넣게 됩니다. '바질'은 박상훈과 자주 가던 카페 이름이기도 합니다. 연인에 대한 미련이 담긴 그 씨앗은 차우영이 의식 못하는 사이 가시 돋친 가지를 늘려가고 급기야는 그녀를 집어삼키고 말아요. 박상훈은 차우영을 구하기 위해 괴식물의 늪에 뛰어드는데요. 자신들을 포위하고 살갗을 찌르고 압박하는 무지막지한 힘은 다름 아닌 지나간 시간의 향기, 바질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헤어진 연인의 상실감을 가시 돋친 괴식물과의 싸움에 비유하고 있는 이 소설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우리 마음 깊은 곳을 두드립니다.

 

   수상작이 된 <요요>와 함께 예심에 올랐던 일곱 편의 우수작들을 살펴 볼게요.

 

       에바의 세계는 너무나 화려해서 아득했고, 아그네스의 세계는 너무나 핍진해서 믿어지지 않았다. 에바는 더 이상 공통점을 추출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듣고만 있는 아그네스가 말없이 자신을 비난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정은 과거가 만들어 낸 상상일 뿐이야. 에바는 눈물이 날 것 같아 천천히 유리 막대를 젓는다. ** 김성중 <에바와 아그네스> 중에서

 

      각각의 작품들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만난 두 여인의 그림자 같은 우정을 보여주는 김성중의 <에바와 아그네스>, 얼굴도 모르는 대리모에게서 태어난 '나'의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그리조해진의 <밤의 한가운데>, 세상을 등지고 수학적 논리 안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여인의 폐쇄적 삶을 다루는 박형서의 <Q.E.D.> 등 모든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언어는 '불화(不和)'입니다. 오십 살도 넘은 암코끼리와 여행을 떠나는 '나'의 이야기를 발랄하게 풀어내는 최진영의 <엘리>와 조현,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황정은의 작품에도 역시 소통 불능으로 불화를 겪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아무 말 없이 괄다를 지나쳐야 했다. 해 줄 말이 없다. 전할 말도 없다. 무슨 말을 하든 귀가 접힌 괄다는 듣지 않을 것이다. ** 김태용 <알게 될 거야> 중에서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김태용의 문장을 만나게 될 줄이야. 예상 못했던 만큼 반가움도 크네요. 김태용의 문장을 눈으로 쫓으면서 비죽비죽 터져나오는 웃음을 어쩔 수 없습니다. 뚜렷한 서사가 배제된 그의 소설은 읽는 이를 당혹스럽게 하지만, 그럼에도 다음 문장을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끝을 보고야 말게 하는 이상한 힘이 있습니다. 여기서 계속 가자.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그리고 독자는 계속 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계속 가면 뭐가 나오느냐. 궁금해요? 그건, 만나서 얘기합시다.

 

      (...) 소설을 쓰는 것은, 때때로 시간을 어지럽히는 일이다. 이효석 선생도 시간을 어지럽혔으므로 먼 시간 밖에 있는 나에게 이르렀다. 내 글 역시 시간을 교란하는 역할을 떠안길 바란다. 한 글자 한 글자 써 나갔던 소설 쓰기의 순차적인 시간이 누군가의 시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안개 속에 있을 때 이효석 선생이 불빛을 반짝여 주었다. 잘 가고 있다고, 잘 헤매고 있다고, 불빛이 반짝였다. 불빛은 곧 스러질 것이다. 나도 곧 불빛을 잊고 방향을 잃을 것이다. 삶의 방향 같은 건 없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 김중혁 수상소감 중에서

     

      기수상작가 이기호의 자선작을 포함해 열 편의 작품 하나하나 개성이 또렷해서 읽는 즐거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상 작가 김중혁의 수상소감을 옮기며 글을 마칩니다. 축하를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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