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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별을 먹자 - 일본 ㅣ 세계숨은시인선 4
나나오 사카키 지음, 한성례 옮김 / 문학의숲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나나오 사카키는 가히 우주적인 생을 누린 시인입니다. 돈도 집도 소유하지 않고 세계를 떠돌던 나나오에게 지구별은 곧 고향이고 집이었습니다. 숲에는 버섯, 강에는 물, 들에는 곡식, 길에는 꽃, 하늘에는 태양. 자연 속에서 그는 누구보다 풍요한 생활을 누렸습니다. "하루에 현미 한 홉 야채와 작은 생선/ 거기에 약간의 물과 듬뿍 바람을 먹고(...)/비누 샴푸/ 화장지 신문 돌아보지도 않고(<자서전>)", "사랑하는 행성(<나나오 사카키 저택 신축 설계서>)" 지구 위에 집을 짓고 굴뚝새와 검독수리, 크릴새우와 향유고래, 도롱뇽과 청개구리, 반딧불이와 더불어 살았던 그는 실천적인 생태주의자였습니다.
"나는 인류와 합동이다/ 인류는 포유류와 합동/ 포유류는 동물과 합동/ 동물은 생물과 합동/ 생물은 지구와 합동/ 지구는 태양계와 합동/ 태양계는 은하계 우주와 합동/ 은하계 우주는 대우주와 합동/ 따라서 나는 대우주와 합동이다(<공리公理>)" 내가 곧 부처다,라는 불교의 핵심 진리는 나와 세계가 곧 하나라는 깨달음에서 시작됩니다. 나나오의 시 곳곳에서 보여지는 생태주의는 이 불교적 사상과 맥을 같이 합니다. "떡갈나무 낙엽 밝고 가는/ 검은 꼬리 사슴/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그들의 발자국을 밟고 간다/ 바로 나는/ 다섯 번째 사슴(<다섯 번째 사슴>)", "조그맣고 조그만 청개구리/ 방바닥에 척하니 앉아 있다//그리고 나도/ 청개구리(<청개구리>)".
그의 의식은 아주 작은 "반딧불이(<아주 작은 것들>)"에서 "반경 1만 광년/ 은하계 우주(<러브레터>)"의 "봄꽃(<앞의 시>"에까지 자유롭게 넘나들어요. 절제와 무소유로 점철된 긴 방랑의 삶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발 가는 대로/ 알래스카 빙하 멕시코 사막 태즈메이니아 원생림/ 다뉴브 골짜기 몽골 초원 훗카이도 화산/ 그리고 오키나와 산호초(<자서전>)"를 제 집 삼아 "추우면 누군가를 껴안(<나나오 사카키 저택 신축 설계서>)"고 "더우면 뼈까지 알몸이 되(앞의 시)"고 "시장하면 손바닥의 콩을 먹(앞의 시)"고 "슬프면 뜨거운 눈물의 수프를 마시(앞의 시)"면서 우주적 여행을 한 흔적이 바로 이 한 권의 시집입니다.
소박하고 단순한 어휘와 자유로운 리듬. 하이쿠를 현대화한 그의 시는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간혹 예리한 비판의식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순수한 동심입니다. 평생 이 순수함을 간직한 채 시인, 노숙자, 여행자, 가수, 생태주의자로서 살았던 나나오는 배낭 하나를 유품으로 남기고 지구별을 떠났습니다. "수염에 고드름/ 스노슈즈에 스키 스톡/ 눈의 바다를 저어(<눈의 바다를 저어간다>)" "은하수 너머(앞의 시)" "지구 B(앞의 시)"로 날아갔지요. 그리고 나는 여기 "지구 A(<앞의 시)>)"에서 "지구 B(앞의 시)"의 메시지를 읽습니다. "숲과 물 풍부하고/ 꽃 새 짐승이 아리땁고/ 사람은 무지개로 짠 비단 몸에 걸치고/ 춤과 노래로 말을(앞의 시)" 하는 지구 B로부터 온 나나오의 메시지가 지구 A에 있는 우리에게 일꺠우는 것은 바로 무욕(無慾)과 동심(童心).
나를 찾아올 때면(...) 그는 노래하면서 온다. 먼 곳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그가 왔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 게리 스나이더(Gary Snyder, 1930~)
노래해 줘요
노래해 주지 않겠다면
웃어 줘요
웃어 주지 않겠다면
울어 줘요
울어 주지 않겠다면
나가 줘요
- 나나오 사카키, <있잖아요>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