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코츠키의 경우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7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이수연.이득재 옮김 / 들녘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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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과 가족의 가치가 국가적 이념에 의해 희생되었던 소비에트 시대를 "배반의 시대"라 규정하는 울리츠카야는 이 소설에서 2차 대전 전후와 소비에트 체제 하의 1960년대 러시아를 배경으로 쿠코츠키 일가의 특별한 연대기를 통해 참된 가족의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나의 소설은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가족의 의미를 찾는 것으로 가족과 가정에 대한 나의 진혼곡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인터뷰에서)

 

     쿠코츠키 일가는 역설적이게도 가족의 붕괴와 함께 완성됩니다. 주인공 파벨은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재혼으로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산부인과 의사인 그는 어느 날 자신에게 신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요. 내면투시입니다. 다른 사람의 신체 내부를 투명하게 꿰뚫어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의사로서의 삶에는 매우 유용한 능력이지요. 그런데 이 능력은 금욕적인 생활, 즉 남자로서의 본능적 삶을 버려야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투시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생식의 욕구를 포기해 온 파벨은 어느 날 자신의 환자였던 엘레나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고 결혼합니다. 이상하게도 엘레나와의 성관계만은 투시 능력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지만, 자궁을 도려낸 엘레나는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지요. 엘레나에게는 전장에서 죽은 전남편의 딸 타냐가 있었고, 그 부부, 파벨과 엘레나에게 유일한 자식이 됩니다.

 

    아기는 이미 자의식을 가지고 있을 거야. 그건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자신을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이지. 그 세계란, 나의 기쁨인 바로 너를 말하는 거야. 왜냐하면 태어나기 전 아기에게 전 세계는 엄마니까. 남자들은 그 전 세계, 우주가 결코 될 수 없지. 하지만 임신한 여자, 적어도 임신 후반기의 여자는 태아에게 완전한 하나의 우주가 된단다. 타냐야, 내가 보기엔 새끼를 낳은 후에 어미가 빨리 죽어버리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어찌 보면 우주가 또 하나의 우주를 낳는 거지. (583쪽)

 

    울리츠카야는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한 최초 외국인 작가인데요. 그래서인지 국내 독자들의 관심이 큰 것 같아요. 이름도 생소한 러시아 작가와 박경리 문학상의 연관을 궁금해하는 것일 텐데요. 토지문화재단은 "건강한 주제의식과 그에 걸맞은 문체, 삶의 정수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그리고 그것을 담아내는 미학적 구성능력 등의 문학성"과 "역사의식"을 선정 이유로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제의식이란 '토지'의 상징인 '생명력', 즉 생명사상과도 잇닿아 있다는 것을 소설을 읽어보면 알게 됩니다. 의붓딸 타냐와 고아 토마에게 혈육애 이상의 각별한 애정을 쏟아붓는 파벨의 직업이 생명의 탄생을 돕는 산부인과 의사라는 상징성과 골드베르그, 바실리사, 타냐 등 인물들의 목소리에 실린 생명윤리 같은 것이 이야기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유전학을 전공한 울리츠카야의 생물학적 지식과 철학적 고민, 신비주의적 믿음 등 전혀 이질의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의 지향점은 결국 생명사상, 그리고 그 안에서 가족의 가치와 의미를 탐색합니다.

 

   '우리는 이상한, 아주 이상한 가족이 아닌가! 오직 두 사람, 엘레나와 타냐만이 혈연으로 이루어져 있고, 나머지 가족들은 운명의 장난으로 모이게 된 탓일까? 혁명의 바람 때문에 오게 된 초라한 바실리사,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오로지 사철나무에만 빠져 있는 토마...... 언제나 우울한 엘레나, 이유 없는 반항으로 몸부림치는 타냐...... 이들 모두가 각자의 소소한 비밀을 가지고 결코 침입할 수 없는 자신만의 새장 안에 갇혀 있지는 않은가.'(298~299쪽)

 

   울리츠카야는 주요 작품들에서 "신성하고도 이상적인 가족을 형성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을 창조해 왔다고 하는데요.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파벨이 바로 그런 인물입니다.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두 딸과 여성성을 잃은 엘레나를 순수한 애정으로 껴안는 그는 거의 신의 존재에 가깝습니다. 비인간적으로 느껴지지요. 파벨에게 투시 능력을 부여한 것도 작가의 의도된 설정이었을 것입니다. 쌍둥이 형제와 타냐의 뒤엉킨 애정관계,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타냐와 세르게이의 혼인 등 상식을 뛰어넘는, 쿠코츠키가가 이룩한 '이상적인 가족'의 토대는 '신성'입니다. '신성한 가족'을 구현함으로써 울리츠카야는 암울한 "배반의 시대"에 희생된 가족의 가치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잃어버린 가족의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이죠.

 

   알고 보면 모두가 감추고 침묵해야 할 무엇인가를 가지고 살고 있었고, 그것이 폭로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난 직후, 그 같은 두려움은 현실적인 공포에 의해 밀려났다.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전장의 공포가 그 두려움을 대신했다. 자신들을 죽이는 독일군이라는 구체적인 적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 적과 맞선 남자들은 단순히 조국만을 위해 싸운 게 아니었다. 자신의 출신성분이나 가족들의 이력에서 비롯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싸웠다. (...)반동분자로 죽은 자의 아이나 전장에서 죽은 군인의 아이가 모두 고아가 되거나, 굶주림과 추위에 고통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 당장은 모든 사람들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에만 관심을 쏟앗다. 그 후의 삶은 생각하지 않았다.(36~37쪽)

 

   소비에트 체제 하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다양한 역사적 변화를 거쳐온 울리츠카야의 경험은 소설 곳곳에 녹아 있는데요. 당시의 사회 정치적 분위기나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 붕괴된 가족, 소외된 개인, 물질과 정신의 대립 등 다각적인 고찰이 이야기에 깊이와 무게를 더합니다. 주인공 파벨과 마찬가지로 의사 집안 출신이라는 것이 당시의 지식인과 상류층의 삶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작가 인터뷰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연구소를 뛰쳐나와 방황하는 타냐의 심리에는 울리츠카야 자신이 연구소에서 일하던 당시의 생명윤리에 대한 고민과 과학에 대한 환멸이 투영되어 있고요. 이렇듯 작가 자신의 실제적인 경험이 녹아 있어서인지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입니다. 많은 논란을 낳았다는 2부에서는 꿈과 환상이 뒤엉킨 몽환적인 묘사를 통해 신비한 감각을 체험하는 엘레나의 심리를 표현하고 있는데요. 다소 어리둥절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읽었지만, 파격적인 시도는 인상적이었습니다. 

 

    '경우'란 복잡한 사건이나 일, 놀라움, 예외 등 다양한 의미를 함축합니다. 저는 쿠코츠키에게 일어난 많은 복잡한 사건들을 이야기했어요. 그의 사건은 우리 각자의 사건이기도 합니다. 《쿠코츠키의 경우》는 우리 모두가 헤엄치고 있는 신의 세계에서 각각의 인간이 '특별한 경우'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작가 인터뷰에서)

 

   울리츠카야가 구현해낸 쿠코츠키 일가, 그 '신성한 가족'의 '특별한 경우'에 온전히 공감할 독자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 '신성'을 이루는 각각의 인물들에게서 발견되는 보편적 인간성은 우리 안에 숨은 특별한 감각을 자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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