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하는 강아지 - 내 강아지를 행복하게 만드는 이야기
노나미 지음 / 엘컴퍼니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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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아지도 요가를 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요즘엔 강아지도 할 건 다 하는 것 같아요. 반신욕에 수영에 미용, 헬스기구나 자전거 타는 강아지도 있고요. 한데, 강아지 요가'는 조금 생소합니다. 사람도 따라하기 힘든 불편한 요가 동작들이 먼저 떠올랐는데요. 다른 건 몰라도 요가'라면 무리 아닐까, 하고 의아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강아지 요가'에 대한 정보가 없는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일단 책을 펼쳐들고 보면 그 마음이 얼마나 인간중심적이었는가를 확인하게 됩니다.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악기를 연주하지 않아도 우리 몸 속에 울려퍼지는 소리가 있답니다. 그것은 바로 심장이 뛰는 소리인데요. 우리 강아지의 심장소리를 한번 들어보세요. 규칙적으로 쿵쾅쿵쾅 뛰는 심장소리는 엄마 뱃속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본문 중에서)

 

     

    강아지 요가'는 동작의 완성도보다는 반려인과 강아지의 교감과 소통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무언의 몸짓으로 체온을 나누면서 몸은 물론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인데요. 책에는 준비자세를 포함해 열 가지 요가 동작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나비자세, 견자세, 고양이자세, 몽몽만세자세 등, 대부분이 동물 특유의 몸짓을 응용한 동작들인데요. 혼자서 동작을 취할 수 없는 강아지 옆에서 반려인이 자세를 잡아주거나 반려인의 배나 다리를 이용해 함께 요가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견자세나 나비자세 고양이자세 같은 쉽고 간단한 동작들은 무리가 없겠는데요. 반려인이 누운 자세에서 다리 위에 강아지를 싣고 높이 들어올리는, 그러니까 우리 어릴 적 아빠의 다리 위에서 비행기 타던 것과 흡사한 고난이도의 동작들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반려인과 강아지 간의 유대와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강아지가 겁을 먹고 버둥거리다가 다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스트레스만 받는 상황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강아지 요가'는 반려인과 강아지의 교감과 소통이 중요한데요. 강아지 요가의 기본 동작이 시선 교환하고 심장소리 듣기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자주 눈을 맞추고 안아주면서 강아지와의 유대를 쌓아왔다면 다소 위험해 보이는 동작들도 무리없이 따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들이와 나는 지구별 친구입니다. 그리고 한 가족입니다. 내가 아플 때나 힘들 때, 모두가 내 곁을 떠나갈 때 마지막까지 나를 지켜주는 소중한 친구입니다. 그래서 나도 그 친구를 지켜줄 거예요. 이 아이의 눈빛에서 저는 잠시 잊고 살았던 믿음을 배웁니다. (본문 중에서)

 

 

    강아지 요가(DOGA: Dog Yoga의 줄임말)는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요. 책의 저자이자 수의사인 노나미는 강아지 요가'를 한국에도 널리 알리기 위해 강아지 협회'를 등록하고 특허청으로부터 상표등록도 마친 상태입니다. 서문에서 그는 반려인과 강아지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돕는 것'이 한국강아지요가협회'의 설립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는데요. 책에는 바로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강아지 요가'와 마사지', 스트레칭', 명상'과 같은 실제 응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를 싣고 있는 이 책에서 우리는 강아지 요가'를 가능케 해주었던 작은 동물친구 초들이와 저자의 이야기도 함께 만날 수 있습니다. 근무하던 병원에서 유기견과 의사로 마주한 초들이와의 첫만남에서부터 입양 이후의 시간들. 그 안에 담긴 작지만 가장 큰 행복과 위안, 성찰의 순간들은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반려인들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것들입니다.

 

 

    어찌보면 인간이 더 동물적이고, 동물이 오히려 인간적인 따스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잃어버렸던 인간성을 동물을 통해 회복해 나가고 있는 모습이죠. 동물적인 인간과 인간적인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 우리 인간적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에필로그에서)

 

 

    반려가족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반려동물과 함께 하거나 갈 수 있는 곳은 매우 한정적입니다. 아직까지 반려가족에 대한 시선이 그리 너그럽지만은 않습니다. 여기에는 반려가족의 태도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려동물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거나, 아무데서나 함부로 짖어대거나 다른 동물이나 사람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여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는 반려인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요. 같은 반려인으로서 안타깝고 한편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절로 듭니다. 다른 사람이나 동물에 대한 배려가 배제된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반려가족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탓하기 앞서 반려인의 분별있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몸과 마음의 건강, 그리고 온전한 행복은 바로 그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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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 창비세계문학 20
마샤두 지 아시스 지음, 박원복 옮김 / 창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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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부터 뭔가 브라스 꾸바스'하죠. 창비에서 첫 선을 보이는 이 작품은 "19세기 라틴아메리카 소설이라는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라는 찬사를 받는 브라질 작가 마샤두 지 아시스의 대표소설 가운데 맨 처음 씌어진 것인데요. 그의 후기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자연주의적 사실주의' 경향의 시초가 된 소설이기도 합니다. 1880년에 씌어진 이 소설은  한 세기를 훌쩍 뛰어넘은 시간을 무색케 할 정도로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데요. 고전이라는 타이틀이 어색할 정도로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형식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난 당신을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은 말도 안되는 존재요. 당신은 동화일 거요. 분명 난 꿈꾸고 있는 겁니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난 미쳤을 거요. 당신은 현실과 동떨어진 존재의 환영에 지나지 않아요. 그러니까 부재중인 이성이 통제할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허황한 그 무엇일 뿐이지요. 자연이라고요? 당신이? 내가 알고 있는 자연은 그저 어머니일 뿐 적은 아닙니다. 삶을 재앙으로 만들지도 않을뿐더러 당신처럼 무덤만큼 무표정한 그런 표정을 짓지 않지요. (본문 중에서)


       작중화자인 브라스 꾸바스'가 자신이 죽은 날의 정황을 회고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죽은 사람을 화자로 등장시키는 파격적인 설정은 작품의 의도를 대변하고 있는데요. 이 사소한 형식적 전복을 통해 마샤두 지 아시스해묵은 관습에 익숙한 독자의 몽몽한 정신에 시원하게 한 방 날리고 있습니다. 작품 후반부에서 낑까스 보르바'라는 의심쩍은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작가는 그 뜻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있는데요. 낑까스 보르바'의 변화무쌍한 삶과 그의 궤변적 철학을 그럴 듯하게 풀어놓으면서 독자를 매혹하는가 싶더니, 막판에는 그를 정신이상자'로 내몰고 맙니다. 낑까스 보르바의 말발에 홀려 그도 그럴 듯하다고 동조하던 독자는 또 한 방 보기좋게 얻어맞습니다. 마샤두 드 아시스는 낑까스 보르바'나 도나 에우제비아', 로브 네비스' 등 신분층이 다양한 인물들이 내비치는 불안한 심리나 불확실한 삶의 행로를 통해 19세기 후반 브라질의 사회상을 담고 있는데요. 귀한 사람 천한 사람, 사랑과 연민, 행복과 불행, 정상 비정상 등...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인간의 삶에 안개처럼 드리워진 견고한 통념 같은 것을 소설 전반에 걸쳐 날카롭게 비꼬고 있습니다.

 

          가장 덜 나쁜 일은 추억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현재의 행복을 믿어서는 안된다. 그 행복 속에는 카인의 침 한방울이 담겨 있다. (본문 중에서)

 

      소설적 구성 면에서도 마샤두 지 아시스는 실험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무덤 속에서부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 소설은 160개의 짧은 장들로 이뤄져 있는데요. 어떤 장은 서로 이름만 부르다 끝나는가 하면, 긴 꼬리를 잇는 말줄임표로만 이루어진 장도 있습니다. 브라스 꾸바스의 감정 기복을 반영하는 문장들 역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말의 고삐를 붙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합니다. 서사보다는 주인공의 정서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큰 방해를 받지 않고 평탄한 독서를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평탄하다? 음. 아무래도 주관적인 감상이라는 말을 덧붙여야 할 것 같네요. 혹자는 지리멸렬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는데요. 지리멸렬할지는 몰라도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브라스 꾸바스 식' 해학과 풍자가 행간 곳곳 곰틀거리고 있거든요.

 

     단 한 번의 그 키스는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다. 그 순간은 짧았지만 열렬한 사랑이었으며, 달콤함, 공포, 원한, 고통으로 끝날 희열, 기쁨 속에 피어오를 혼란의 삶을 알리는 한편의 서곡이 되었다.(...) 즉 혼란과 분노, 절망과 질투의 삶을 알리는 서곡이 되었다. 어떤 시간은 지나치게 많이 그 대가를 치를 것이고, 다른 시간이 도래해 그 앞의 시간을 삼킬 것이다. (본문 중에서)

 

      사후세계의 빛 속에 빠르게 펼쳐지는 삶의 장면들처럼 브라스 꾸바스는 삶의 인상적인 순간들을 짧지만 강렬하게 회고하고 있는데요. 그의 삶, 혹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은 비르질리아, 그의 연인입니다. 언뜻 보면 브라스 꾸바스의 나머지 삶은 이 한 여인과의 추억을 감싸는 껍데기로 여겨지기도 하는데요. 미혼자인 브라스 꾸바스와 귀부인 비르질리아의 밀애는 역설적으로 그 나머지 삶과 나머지 사람들을 투영하는 소설적 장치에 불과합니다. 둘의 관계를 의심하면서도 사회적 체면 때문에 속만 끓이는 비르질리아의 남편 로브 네비스, 그들의 은밀한 사랑을 돕는 도나 쁠라시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를 바라보는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삶과 반응들이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우리 어린 시절의 장난질에서는 항상 왕, 장관, 장군, 또는 그것이 무엇이든 고위 관리 역할을 택하곤 했다. (본문 중에서)

 

      소설에는 앞서 언급하지 않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어린 브라스 꾸바스에게 사제가 되기를 강권하는 삼촌, 아들이 정계에 입문(아버지에게 정계 입문'은 가문을 빛내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하지 못한 절망감으로 죽은 아버지, 브라스 꾸바스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알고 떠나는 절름발이 소녀 등. 이들을 통해 마샤두 지 아시스는 인간 욕망의 양면성과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인간의 사랑, 사회적 통념 앞에 가물가물 흔들리는 연약한 촛불 같은 인간 존재를 아프게 꼬집고 있습니다. 64세에 결핵으로 사망한 브라스 꾸바스는 자신의 사인이 실은 고약'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브라스 꾸바스가 야심차게 발명한 이 고약', "인류의 우울을 완화시키는 숭고한 의약품"은 "인류애"와 "명성에 대한 갈망"이라는 양날의 칼'을 상징합니다. 비르질리아'와의 관계 역시 정계 입문의 야심에서 시작되었던 것을 볼 때, 꾸바스, 결국 그 자신을 삼킨 것은 명예욕'이라는 불치의 병'이었던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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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프 패러독스 - 매번 스스로 무너지는 당신을 일으켜줄 멘탈 강화 프로젝트
스티브 피터스 지음, 김소희 옮김 / 모멘텀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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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씨가 기르던 개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작고 마른 푸들종이었는데, 문제가 많은 녀석이었어요. 집안 여기저기 오줌을 휘갈기고 다니면서 사람이 불러도 본체만체 하는가 하면, 움직이는 모든 것(사람, 자동차, 고양이)을 쫓아가면서 깡깡 짖어댔지요. M씨가 녀석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이름도 불러보고 큰소리를 쳐봐도 소용없었습니다. 뭐 저런 개가 다 있냐며, 급기야는 신고 있던 슬리퍼를 집어던지는 M씨에게 나는 말해주었습니다. 다 M씨 탓이야. 개를 길들이지 않은 M씨 책임이라고.

 

    영악한 짐승은 거꾸로 M씨를 길들이고 말았습니다. M씨는 방바닥에 고인 의 오줌을 치우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개가 바깥에 나간다고 선언하면 곧바로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럴수록 그 작은 짐승은 제멋대로 날뛰었습니다. 달리는 차에 뛰어들거나 고양이를 물어뜯고 썩은 음식을 주워먹으면서, 주인이 제지하면 이를 드러내고. 아, 짐승! 말그대로 짐승 자체였지요. 기가 찼어요. 작은 짐승 한 마리도 길들이지 못하고 절절 매는 M씨가 답답하고 한심했지요.

 

    우리 머릿속에 침프를 데리고 있는 것은 개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개의 본성은 당신 책임이 아니지만 그 개를 관리하고 올바르게 행동하게 할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본문에서)

 

    무슨 개소리냐. 지금 소개하는 책, 《침프 패러독스》를 읽으면서 M씨와 그의 개를 떠올렸습니다. 스포츠 심리학자이자 정신과의사인 저자는 우리 머릿속에도 저 M씨의 개와 같은 짐승 한 마리가 살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변연계'를 가리키는 것인데요. 흥미롭게도 '침팬지(줄여서 '침프')'에 빗대고 있습니다. 머릿속에 들앉은 이 짐승은 실제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인간(전두엽)'보다 다섯 배는 힘이 세서 쉽게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화가 나거나 두려울 때,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침프'는 감정적 사고로 이성을 흐리거나 우리가 싫어하는 방식으로 성격을 드러냅니다.


당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당신의 모습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당신의 성격이다. 이런 성격에서 이탈한 경우는 침프에게 납치된 것이다. (본문에서)

 

    침프'는 우리(인간')와는 별개의 개체, 그저 감정적기계'에 불과하지만, 인간'이 그 기계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우리 성격과 삶이 흘러가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데요. 침프'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적절한 통제와 관리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책의 요지입니다. 인간 뇌의 작동원리와 그 활용법을 쉽고 재미있는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요. 심리적 우주'라는 우리 머릿속의 관계도를 통해 침프(변연계)'와 인간(전두엽)', 내 안의 침프와 다른 사람의 침프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싫어한다'는 '친하지 않다'라는 단어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당신이 선택하는 단어는 당신과 남들에게 특정한 감정적 반응을 유발한다. 침프가 그 단어를 좋아하지 않을 경우에는 자기 의견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에서 곧장 뛰쳐나올 것이다. (본문에서)

 

    얼마 전에 충격적인 뉴스를 보았습니다. 주차장 문제로 시비 끝에 앙심을 품고 상대방 개의 몸통을 전기톱으로 두동강 냈다는 기사였습니다. 머릿속 짐승을 통제하지 못해 죄없는 다른 짐승이 죽었습니다. 인간의 짓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 더이상 뉴스도 아닌 것 같은데요. 이런 위태로운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책은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침프인가 인간인가. 툭하면 침프에게 납치당하면서 후회와 자책으로 물든 삶을 이어갈 것인가, 침프를 우리에 가두고 당근과 채찍으로 길들이는 주인이 될 것인가. 사람 되기 는 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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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샤일로에서 본 것 - 미국 남북 전쟁 소설선 아모르문디 세계문학 2
앰브로즈 비어스 지음, 정탄 옮김 / 아모르문디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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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없이 이어지는 꿈길을 헤맬 때가 있습니다. 와짝 눈을 떴는데 여전히 꿈속이고. 겨우 잠을 깨서 뒤척이다 잠들었을 때, 다시 그 꿈이 이어지고... 눈 감아도 잠들 수 없고 눈을 떠도 깨지 않는 막막하고 이상한 밤. 그런 밤처럼, 어떤 순간은 끝없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아침이 밝고 한낮이 되어도 밤은 계속되는 것이죠. 지금 소개하는 책은 바로 그런 밤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통증을 견딜 수 없었다. 끔찍한 고통을 잊기 위해 그는 찢어진 손으로 나무 조각들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 집도 처자식도 국가도 영광도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기억이 지워졌다. 세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목재와 판자 더미 한복판, 그것만이 유일한 세상이다. 이 세상엔 언제나 새롭고 끝없는 불멸의 고통이 있다. 욱신거림의 시곗바늘이 째깍대며 영원의 시간을 알린다. ( 118쪽,  「실종자 중 하나」  중에서)

 

 

    스물여섯 편의 단편을 싣고 있는 이 소설집은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불타버린 시체, 나뒹구는 머리통, 흘러내리는 뇌수, 찢긴 팔다리... 앰브로즈 비어스는 남북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매우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전쟁의 현실감을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한밤의 악몽처럼, 낱낱의 이야기들은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긴박한 숨소리로 연결됩니다. 적과 아군, 승리와 패배, 삶과 죽음. 전쟁터,라는 냉엄한 이분법의 세계를 그리면서 한편으로 그 세계를 이루는(혹은, 대립하는) 인간성, 즉 인간적인 고뇌와 물리적 고통, 두려움과 공포 같은 감정들이 매캐한 화약 연기처럼 행간을 떠다니고 있습니다.

 

    나는 도망쳐야 했고, 그렇게 했다. (...) 나는 옥수수밭으로 돌아가 강을 찾은 뒤, 강둑을 따라 멀리까지 되돌아갔다가 작은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벽까지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새처럼 앉아 있었다. ( 87쪽, 「딕시에서의 나흘」 중에서)

 

  

    분량이나 구성 면에서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단편보다는 삽화에 가깝습니다. 긴박하거나 의미있는 어떤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해내고 있는데요. 뭐랄까. 한 사람의 꿈속을 훔쳐보는 기분이 듭니다. 기억,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겪어보지 않고는 쓸 수 없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전쟁터의 이미지들... 생의 본능과 죽음의 공포 같은 생생한 감각들. 어떤 기억은 일생을 옭아매는 사슬이 되기도 하죠. 책을 읽는 동안, 정용준의 소설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를 떠올렸습니다. 전쟁은 오래 전에 끝났지만, 고립된 섬에 남은 두 명의 생존 군인들의 시간은 여전히 전시(戰時)에 멈춰 있습니다. 죽여야 할 적도 지켜야 할 아군도 이제는 없지만, 그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무장을 해제하지 않지요. 그들이 싸워야 할 진짜 적은 참혹한 시간이 할퀴고 간 상처, 기억'입니다.

 

 

     어렴풋하고 단속적이지만 마법과도 같은 힘으로 떠오르는 젊은 군인 시절의 기억! 나는 다시금 아득한 나팔 소리를 듣곤 한다. 이상한 나라의 희미한 계곡에서 솟구치던 높고 푸른 연기를 또다시 보곤 한다. 매복지의 소나무에서 풍기던 냄새가 유령처럼 감각 속에 스며든다. 알 수 없는 운명의 진지를 휘감던 아침 안개가 얼굴에 와 닿는 것을 느낀다. (34쪽, 「내가 샤일로에서 본 것」 중에서)

 

 

    비어스는 남북전쟁이 발발한 지 닷새 만에 자원입대를 합니다. 당시 나이 열아홉이었는데요. 2, 3년 동안 이어진 전쟁이 그에게 남긴 것은 두개골에 박힌 총알과 전쟁 후유증, 약혼녀의 배신이었습니다. 1912년, 일흔 살의 비어스는 오십 년 전 참전했던 남북 전쟁의 유적지를 찾아다닙니다. 그 이듬해 11월에는 멕시코에서 종군 기자로 군대에 합류하게 되는데요. 12월 말, 판초 비야의 군대를 따라 오히나가로 향한다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해집니다.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남은 일생 동안 비어스는 또 다른 전쟁'을 계속 치러야 했던 것 아닐까.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 전쟁'의 상흔으로 읽어도 무방하지 않겠나. "언제나 새롭고 끝없는 불멸의 고통"을 견뎌야 했던 한 사람의 끝나지 않는 꿈속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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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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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실천문학가을호에 단편 〈팽이〉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최진영 작가의 첫 소설집입니다. 등단작 〈팽이〉를 포함한 열 편의 단편을 싣고 있는데요. 다 읽고 난 소감부터 말하자면, 믿음직한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겉멋 들지 않았다고 할까요. 향신료 없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낸 음식에 비유해도 좋겠습니다. 그만큼 정직하고 꾸밈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소설, 오랜만네요.

 


   아줌마 남편이 그애랑 키스만 했다고 생각해?

   (...)

   그애 몸에선 아줌마 남편 머리카락도 정액도 나오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게 결정적 증거일 수도 있어요. 사람을 죽이는 데 꼭 머리카락이나 정액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치밀한 범인은 절대 증거를 남기지 않거든.

   수표가 나왔잖아요!

   다급히 대답했다. 경찰이 씩 웃었다.

   그렇지. 수표가 나왔지. 아줌마 남편은 수표 안 쓴다면서?

   네, 안 써요.

   그래, 안 쓰는데도 나왓지. 마누라한테는 전화 한통 안하는 남자가 키스방 다니는 애한테는 뻔질나게 전화하고. 그죠?

   손톱을 질근질근 씹어 삼켰다.

   왜 그랬다고 생각해, 아줌마는?

   내가 어떻게 알아!

   견고하던 목소리가 와장창 깨져 산산이 조각났다. 내 안에서 터져나온 그 소리를 주워 담느라 열 손가락 모두 상처가 났다. (<남편>, 50쪽)

 

 

     소설집 《팽이》에서 최진영은 익숙한 세계의 정경을 펼쳐보입니다. 성묫길에서 억대의 돈이 든 돈가방을 발견한 두 형제 내외의 해프닝을 그리는 〈돈가방〉이나, 살인범으로 몰린 남편에 대한 아내의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남편〉 같은 작품들은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욕망과 불안을 자극하면서 읽는 이를 사로잡는데요. 일상을 관통한 비일상적인 갈등 상황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속물적 욕망과 의심, 분노 따위의 감정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보통의 인물들의 것입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나쁜사람도 좋은 사람도 아니지요. 물론 그것만으로는 몰입의 요소로 충분하지 않죠. 두 작품 모두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화가 참 좋았는데요. 작품에 입체감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인물묘사나 구체적인 정황묘사 없이 대화만으로도 인물의 성격이나 심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니. 놀라운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잘 쓰는 소설가가 많지는 않으니까요.


 

   사막에서 사막이 되지 않는 것은 없다. 사막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사막이 되었다. (<새끼, 자라다>201쪽)

 


    따돌림 당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시선을 좇는 〈창〉, 아름다운 꿈을 품은 루저 청년의 똥통 같은 현실을 그리는 〈엘리〉, 사막화되어가는 사회를 향해 "물과 그늘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는 〈새끼, 자라다〉, 폭력의 악순환에 스스로를 가두고 만 종철이의 이야기 〈월드빌401호〉, 쌍둥이의 대조되는 삶을 다루는 〈주단〉등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공통된 정서는 암울함'입니다. 불합리한 사회의 단면을 꼬집거나 인간 심층의 욕망을 끌어올리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암울해요.

 

 

  아버지, 그 빌딩 이름이 정확히 뭐죠?

   내가 적어주지 않았니.

   알아볼 수가 없어요.

   길을 따라 가.

   이름을 알려주세요, 아버지.

   나도 잘 기억은 안 난다만, 길을 따라가면 돼.

   그런 길은 어디에나 있어요.

   그래도 가야 할 곳은 한 곳이지 않니.

   아버지는 가보셨어요?

   시간이 많이 늦었다.

   아버지는 가보셨냐고요.

   ......

   아버지는 어디 계세요?

   내 걱정은 마라. 난 괜찮다.

   아뇨. 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시냐고요. (<어디쯤>, 89쪽)

 

   

    남들이 알아주지는 않지만 스스로 만족하는 직장이 있고, 매달 삼십만원씩 적금을 부으며 성실하게 살고 있는 '나'는,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약도 하나를 건네받습니다. 약도는 너무 허술해요. 주변 건물 이름은 거의 생략돼 있고 글씨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아버지가 중요한 곳이라고 말한 그곳'의 이름조차 불분명해요. '성원빌딩'인지 '선원빌딩'인지 혹은 '서운빌딩'인지 확실치 않은 그곳'을 찾아 나선 '나'는 지하철역을 빠져나온 시점에서부터 방향감각을 잃고 밤새 거리를 헤매게 됩니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만 확실한 대답을 얻을 수는 없고요. 무엇보다 목적지부터가 불분명하니까요. 그곳'을 가보라고 한 아버지조차 그곳'에 대해 확실히 아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어딘가 있는 그곳'을 찾아헤매는 '나'의 행방을 따라가는 〈어디쯤〉은 시종 희끄무레한 안개 속을 걷는 듯한 갑갑함이 느껴집니다. 아무리 고민해도 극복하거나 나아질 수 없을 것 같은 암울함.

 

 

    아무것도 몰랐다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았다면 펭귄 새끼는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모래언덕 스러지듯 사라져가는 펭귄 새끼의 신념을 자라 새끼는 지켜볼 수 없었다. 낙타가 되어가는 펭귄 새끼가 두려웠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거울처럼 그 끝은 까만 구멍이고 짙은 암흑이었다. (<새끼, 자라다>, 197쪽)

 

 

   한데,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이 암울한 '사막'과도 같은 세계에는 등껍질 속에 몰래 이끼를 키우는 자라(<새끼, 자라다>)', 오십이 넘은 코끼리와 아프리카로 떠나는 청년(<엘리>)', 어딘지는 모르지만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어디쯤>)'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속에 "물과 그늘"의 꿈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불안한 꿈이지만, 이 암울한 세계를 견디는 작은 힘이지요. 깨진 창을 넘고 모래바람을 타고 사막을 건너는 꿈. 사막 같은 이 삶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해피엔딩일까.

 


   가끔 팽이를 돌렸다. 팽이는 열심히 돌다가도 멈출 때가 되면 제자리를 찾아 주저없이 멈췄다. (팽이, 287쪽)

 


    《팽이》에 실린 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면 살아남는 일이 비루하게 여겨집니다.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계속 이러고 있어도 되나. 아니라면 어째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평범한 일상에 대한 의구심이 들어요. 살아남는 것보다 더 절박한 것을 잊고 살았다는, 이상한 죄책감도 느껴지고요. 외부의 채찍질로 정신없이 돌다 멈춘 팽이의 기분. 멈춘 팽이의 기분으로 주위를 돌아봅니다. 멈춘 팽이의 기분으로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이 책은 묻고 있습니다. 어디야. 거기 어디냐고. 어딘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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