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2006년 실천문학가을호에 단편 〈팽이〉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최진영 작가의 첫 소설집입니다. 등단작 〈팽이〉를 포함한 열 편의 단편을 싣고 있는데요. 다 읽고 난 소감부터 말하자면, 믿음직한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겉멋 들지 않았다고 할까요. 향신료 없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낸 음식에 비유해도 좋겠습니다. 그만큼 정직하고 꾸밈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소설, 오랜만네요.

 


   아줌마 남편이 그애랑 키스만 했다고 생각해?

   (...)

   그애 몸에선 아줌마 남편 머리카락도 정액도 나오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게 결정적 증거일 수도 있어요. 사람을 죽이는 데 꼭 머리카락이나 정액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치밀한 범인은 절대 증거를 남기지 않거든.

   수표가 나왔잖아요!

   다급히 대답했다. 경찰이 씩 웃었다.

   그렇지. 수표가 나왔지. 아줌마 남편은 수표 안 쓴다면서?

   네, 안 써요.

   그래, 안 쓰는데도 나왓지. 마누라한테는 전화 한통 안하는 남자가 키스방 다니는 애한테는 뻔질나게 전화하고. 그죠?

   손톱을 질근질근 씹어 삼켰다.

   왜 그랬다고 생각해, 아줌마는?

   내가 어떻게 알아!

   견고하던 목소리가 와장창 깨져 산산이 조각났다. 내 안에서 터져나온 그 소리를 주워 담느라 열 손가락 모두 상처가 났다. (<남편>, 50쪽)

 

 

     소설집 《팽이》에서 최진영은 익숙한 세계의 정경을 펼쳐보입니다. 성묫길에서 억대의 돈이 든 돈가방을 발견한 두 형제 내외의 해프닝을 그리는 〈돈가방〉이나, 살인범으로 몰린 남편에 대한 아내의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남편〉 같은 작품들은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욕망과 불안을 자극하면서 읽는 이를 사로잡는데요. 일상을 관통한 비일상적인 갈등 상황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속물적 욕망과 의심, 분노 따위의 감정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보통의 인물들의 것입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나쁜사람도 좋은 사람도 아니지요. 물론 그것만으로는 몰입의 요소로 충분하지 않죠. 두 작품 모두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화가 참 좋았는데요. 작품에 입체감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인물묘사나 구체적인 정황묘사 없이 대화만으로도 인물의 성격이나 심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니. 놀라운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잘 쓰는 소설가가 많지는 않으니까요.


 

   사막에서 사막이 되지 않는 것은 없다. 사막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사막이 되었다. (<새끼, 자라다>201쪽)

 


    따돌림 당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시선을 좇는 〈창〉, 아름다운 꿈을 품은 루저 청년의 똥통 같은 현실을 그리는 〈엘리〉, 사막화되어가는 사회를 향해 "물과 그늘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는 〈새끼, 자라다〉, 폭력의 악순환에 스스로를 가두고 만 종철이의 이야기 〈월드빌401호〉, 쌍둥이의 대조되는 삶을 다루는 〈주단〉등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공통된 정서는 암울함'입니다. 불합리한 사회의 단면을 꼬집거나 인간 심층의 욕망을 끌어올리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암울해요.

 

 

  아버지, 그 빌딩 이름이 정확히 뭐죠?

   내가 적어주지 않았니.

   알아볼 수가 없어요.

   길을 따라 가.

   이름을 알려주세요, 아버지.

   나도 잘 기억은 안 난다만, 길을 따라가면 돼.

   그런 길은 어디에나 있어요.

   그래도 가야 할 곳은 한 곳이지 않니.

   아버지는 가보셨어요?

   시간이 많이 늦었다.

   아버지는 가보셨냐고요.

   ......

   아버지는 어디 계세요?

   내 걱정은 마라. 난 괜찮다.

   아뇨. 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시냐고요. (<어디쯤>, 89쪽)

 

   

    남들이 알아주지는 않지만 스스로 만족하는 직장이 있고, 매달 삼십만원씩 적금을 부으며 성실하게 살고 있는 '나'는,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약도 하나를 건네받습니다. 약도는 너무 허술해요. 주변 건물 이름은 거의 생략돼 있고 글씨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아버지가 중요한 곳이라고 말한 그곳'의 이름조차 불분명해요. '성원빌딩'인지 '선원빌딩'인지 혹은 '서운빌딩'인지 확실치 않은 그곳'을 찾아 나선 '나'는 지하철역을 빠져나온 시점에서부터 방향감각을 잃고 밤새 거리를 헤매게 됩니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만 확실한 대답을 얻을 수는 없고요. 무엇보다 목적지부터가 불분명하니까요. 그곳'을 가보라고 한 아버지조차 그곳'에 대해 확실히 아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어딘가 있는 그곳'을 찾아헤매는 '나'의 행방을 따라가는 〈어디쯤〉은 시종 희끄무레한 안개 속을 걷는 듯한 갑갑함이 느껴집니다. 아무리 고민해도 극복하거나 나아질 수 없을 것 같은 암울함.

 

 

    아무것도 몰랐다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았다면 펭귄 새끼는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모래언덕 스러지듯 사라져가는 펭귄 새끼의 신념을 자라 새끼는 지켜볼 수 없었다. 낙타가 되어가는 펭귄 새끼가 두려웠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거울처럼 그 끝은 까만 구멍이고 짙은 암흑이었다. (<새끼, 자라다>, 197쪽)

 

 

   한데,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이 암울한 '사막'과도 같은 세계에는 등껍질 속에 몰래 이끼를 키우는 자라(<새끼, 자라다>)', 오십이 넘은 코끼리와 아프리카로 떠나는 청년(<엘리>)', 어딘지는 모르지만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어디쯤>)'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속에 "물과 그늘"의 꿈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불안한 꿈이지만, 이 암울한 세계를 견디는 작은 힘이지요. 깨진 창을 넘고 모래바람을 타고 사막을 건너는 꿈. 사막 같은 이 삶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해피엔딩일까.

 


   가끔 팽이를 돌렸다. 팽이는 열심히 돌다가도 멈출 때가 되면 제자리를 찾아 주저없이 멈췄다. (팽이, 287쪽)

 


    《팽이》에 실린 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면 살아남는 일이 비루하게 여겨집니다.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계속 이러고 있어도 되나. 아니라면 어째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평범한 일상에 대한 의구심이 들어요. 살아남는 것보다 더 절박한 것을 잊고 살았다는, 이상한 죄책감도 느껴지고요. 외부의 채찍질로 정신없이 돌다 멈춘 팽이의 기분. 멈춘 팽이의 기분으로 주위를 돌아봅니다. 멈춘 팽이의 기분으로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이 책은 묻고 있습니다. 어디야. 거기 어디냐고. 어딘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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