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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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허삼관 매혈기 (許三觀賣血記)』by 余華

-너무나 중국적인 이야기라고?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허삼관이라는 사내가 피를 파는 이야기다. 허허, 피를 팔어? 주인공이 조금 가난한 것 같긴 해도 배경이 현대 같은데……. 워낙 인구도 많고 엽기적인 일도 자주 벌이는 나라니 뭐 그런가보다 하면서 읽었는데 1948년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 매혈이라는 행위 자체가 소설적 허구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많은 소설을 읽어왔는데 너무 순진하게 믿은 것 같기도 하다. 뭐, 좋게 말하면 순수한 거구.


허삼관은 생사(生絲)공장에서 누에고치 대는 일을 하는 노동자다. 나이는 20대 중반, 그저그런 촌사람이다. 이런 허삼관은 어느날 우연히 삼촌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건장한 사내라면 누구나 반년에 한번씩은 피를 팔고 반년 동안 땅을 파도 벌 수 없는 돈 35원을 잠깐 동안 벌 수 있다고. 그래서 건장한 청년 허삼관은 매혈을 시작한다. ‘피땀 흘려서 번 돈’으로 결혼도 하고 인생의 위기마다 매혈로 모면한다. 이것으로 줄거리는 끝-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하는 줄거리 요약은 늘 너무 간단하다;;


줄거리를 보면 살벌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허삼관 매혈기』엔 삶에 대한 진한 페이소스가 녹아 있다. 그러나 페이소스를 드러내는 방식이 무겁고 축축하지 않다. 적당히 희극적이고 우스꽝스럽지만 우습진 않다. 그래서 손에 착착 감긴다. 요즘 들어 책 읽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던 나마저도 단번에 읽었을 정도로.


특히 4에서 허옥란이 출산을 반복하는 장면은 코미디를 방불케 할 정도로 우스꽝스럽다. 일락이, 이락이를 출산하면서 출산시간이 점점 짧아지다 삼락이를 출산하곤 아기가 나온줄도 모르고 소리를 지르다 의사한테 면박을 당하는 장면은 독자를 실실거리게 만든다. 그러곤 허삼관에게 아이들 이름을 들어 시비를 거는 장면 또한 킬킬거리지 않을 수 없다. 위화는 코미디를 썼어야 해,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이 책의 리뷰를 읽은 적이 있다. 너무도 중국적인 이야기라 보통의 사람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요지의 리뷰였다. 그래서 작품을 보관함에 넣어만 두고 있었는데 공짜 캐시가 생겨서 주문했다. 책이 별로여도 아까울 것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작품을 읽고 완전히 반했다. 책을 너무 늦게 주문한 것 같아 내 자신을 책망할 정도로. 물론 ‘너무도 중국적’인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다. 허삼관의 성격 또한 많은 홍콩중국 영화에서 보았듯이 극단적인 면도 있지만 한편으론 느긋한 평범한 사람이다. 토종 중국인의 매혈여로, 어찌보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리뷰어는 작품의 이야기만 읽은 듯 하다. 이야기가 나타내고자 하는 숨은 그림을 보았더라면 저렇게 평하지 않았을 텐데. ‘너무도 중국적’인 사내의 엽기적인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그림은 역설적이게도 평범한 삶의 행복이다.


허삼관이 매혈을 시작한 이유는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집도 가지고 싶어서였다. 후에 다시 매혈을 시작한 것은 친자도 아닌 일락이가 일으킨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락이가 아파서 다시 매혈여행을 시작했고 마지막에 매혈을 시도한 것은 맛있는 음식, 혹은 추억을 먹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매혈로 이루고자 했던 것들은 예기치 않은 사건사고로 평안한 허삼관의 삶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며 아이들을 양육하고 싶어서 목숨을 담보로 피를 팔았던 허삼관.


이런 허삼관의 모습에선 너무나도 당연히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우리네 아버지들의 삶도 허삼관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간이고 쓸개고 모두 내어놓고 살아가실테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전처럼 두텁지도 않아 언제고 허물어질지도 모르는데 아버지들은 그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허삼관처럼 살아갈 것이다. 물론 허삼관과 같은 형태는 아니겠지만 그와 유사하게 자신들의 피땀을 팔아가며 말이다.


진지하고 피상적인 이야기를 독특한 소재로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위화의 재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책을 덮으면 요란한 축제에서 빠져나온 기분이다. 삶이라는 질펀하고 요란한 축제. 그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허삼관의 대사는 이렇다. “그걸 가리켜서 좆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지만 자라기는 길게 자란다고 하는 거라구” 과연 킬킬거리며 축제에서 빠져나오기에 적당한 대사지 않은가! 낄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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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9-05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해전이던가, 읽었던 기억이 새롭네요.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불쑥 들어와 인사드려요. 위화의 글을 좋아해요.

비연 2006-09-05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푸훗 2006-09-05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메일 열었다가 적립금 5만원에 완전 흥분모드- 아, 위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니까요. 푸훗.

기인 2006-09-07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뵙겠습니다. :) 저도 이 책 재미있게 봤어서 들렸습니다. 축하드려요~

동대장 2006-09-0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재미있죠......추카드려염...

칸츄리 2006-09-10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상당히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축하드립니다.

푸훗 2006-09-10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재밌고 좋은 책은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