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고의 숲
로버트 홀드스톡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Review /『Mythago Wood』 by Robert Holdstock

-당신과 나의 관계 속에 형성된 미로,


로버트 홀드스톡의 이 소설『미사고의 숲』은 독특한 작품이다. 경계문학, 환상문학 등으로 분류되며 그 쪽에선 확실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는데 ‘경계문학’ 이라는 말이 낯설다. 경계문학? 뭐라 정의할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나면 ‘경계문학’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 생긴다. 아니, 확실한 인식이 생기는데 뭐라 정의할 수는 없다고? 장난하냐? 에휴, 정말 그렇다니까. 읽고 나면 내 말이 무엇인지 알 거라고.

미사고mythago는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작가가 임의로 만든 말인데 신화myth와 심상imago를 결합한 말이라고 한다. 신화와 심상을 결합해서 만든 말이라, 제목에서부터 벌써 판타지의 기운이 풍긴다. 원래 판타지라는 것이(물론 톨킨 류에 한해서지만)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장르가 아니던가. 난 책을 읽기 전 먼저, 작품해설을 대충 훑는 편이다. 이렇게 제목에 대한 유래도 알 수 있고 전반적인 분위기를 파악하고 읽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좀 도움이 된다. 읽으면서 해설을 다 까먹더라도 말이다;; 신화에 대해 아는 것은 없으나 관심은 좀 있는 편이라 책의 첫 장을 넘기기 전부터 기대 만빵이다-

작품은 헉슬리 가(家)의 세 남자가 사랑하고 소유하길 원했던 한 여성과 그 여성이 생성(?)된 숲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실세계에선 걸어서 한 시간이면 가장자리를 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라이호프 숲, 그러나 이 숲은 이상한 기운을 품고 있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숲의 중심부엔 다다를 수 없다. 게다가 일단 숲 속으로 진입하면 시간과 공간이 얽혀서 미로가 생성된다. 그리고 미로를 헤매다 보면 종종 초(超)현실적인 생물 혹은 현상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것들은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고 도우미가 되기도 한다. 이것들 중의 하나가 귀네스라는 여성이다. 고대 언어로 이야기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성. 헉슬리 가의 세 남자는 이 여성과 라이호프 숲이 뿜어내는 신비한 마력에 점차 이성을 잃게 되고 자멸의 길을 걷게 된다. 물론 이런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어 형, 화자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게 의외로 간단한 편이다. 그런데 이 짧은 줄거리로 어떻게 장편소설이 나왔을까- 그것은 바로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방대한 신화의 모티브들이다. 차고 음습한 기운을 풍기는 북유럽 켈트신화를 기본으로 지중해의 그리스•로마신화, 이집트 신화 등 다양한 신화들이 한데 어우러져 신비롭고 몽환적이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조화롭게 만들어 낸다. 그리고 신화에 대한 해설이 작품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나같이 신화에 무지하더라도 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작품의 근간(根幹)이 되는 이것이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너무 많은 신화가 등장해 머릿속이 쉴새 없이 바쁘고 자칫 지루하게 읽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을 쫀득쫀득한 문장과 구성으로 연결하여 신화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거나 책 즐기는 사람이라면 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다. 방대한 신화를 연결하고 관통하는 느슨한 내러티브로 이 작품처럼 재미있는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소설을 구성하는 다른 중요한 요소는 바로, 관계와 경계에 대한 집요한 탐구이다. 가문의 세 남성에 대한 관계, 숲과 외부의 관계 그리고 그들 관계에 형성된 경계가 이야기 속에 녹아있다. 그들의 1차적인 관계는 부자(父子)와 형제, 자연과 문명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적, 동지 그리고 지배자와 피지배자 등으로 변화한다. 이렇게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형성된 미묘한 경계는 바로 너와 나, 즉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현실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리들의 관계를 이 작품에서 엿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더 매력적이지 않나 싶다.

지금까지 신화네 경계네 뭐네 하면서 썼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역시 난 재미없는 책은 읽지 않는다, 랑랑. 머릿속에 꾹꾹 자국을 내어 적어 놨다가 눈에 띄면 까먹지 말고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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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9-05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경계문학이라는 영역에 들어가군요. 현실과 상상 혹은 신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라는 의미일까요. 나와 너의 경계를 아우른다는 의미일까요.. 그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다는 의미일지도.. 아주 인상적이었던, 마음에 들었던 책이었어요..

푸훗 2006-09-11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해설에 보니까 경계문학이 어쩌고 이러드라구요. 저 또한 인상적이고 맘에 드는 책이랍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