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2 - 논어 속 네 글자의 힘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2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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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에서 재직하고 있다. 저자는 <마흔,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으로 베스트셀러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나는 <신정근 교수의 동양 고전이 뭐길래?>라는 책을 이미 소유하는데 여기서는 많은 동양고전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입문서라고 한다면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는 공자의 논어에 관한 책이다.

 

 

요즘 중국의 굴기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과 교역량 1위인 중국에 대하여 특히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중국 고전에도 관심이 가는것 같다. 

 

 

 

 또한 고려는 불교를 중시하였다면 조선은 유교를 중시하였는데 유교중에 특히 성리학을 중시하였다. 유교문화가 현재 한국의 정신문화의 뿌리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유교가 현재 한국 문화의 기저부분을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려말 고려가 쇠퇴의 길을 걷고 있을때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내세워 새로운 국가인 조선을 세우려고 했듯이

 조선말 외세의 침략에 무력했던 조선을 보고 동학이나 기독교 같은 새로운 정신을 받아들이면서 유교는 많은 공격을 당했다.

 

 조선 폐망의 역사에서 유교의 폐단이 크다고 반성하였지만 꼭 유교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당시 유럽국가들은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태평양, 아메리카 등 전 세계 모든지역을 식민지화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유교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 자학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지금도 유교의 문화를 기본으로 살고 있다. 우리의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유교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성찰 할 필요가 있다. 

 

"공자는 떠밀밀 삶을 살며 때때로 극단적인 석택으로 내몰렸음에도, 그때마다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공자는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자신이 좋아하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페이지30

 

 논어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從吾所好)고 한다.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때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때가 아닌가 싶다. 개인이 각자 갖고 있는 성향을 중시하고 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 할 수 있다면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큰 이익이 될 것이다. 아이들을이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부모는 사회에서 선호하는 직업을 갖도록 요구하는 것보다 아이가 원하는 직업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공자와 은둔자는 서로 정치적 지향만이 아니라 삶의 의미가 달랐다. 은둔자의 눈을 통해 공자를 바라보면 공자는 위인과 성인보다는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하나의 길을 찾아가는 사상가의 모습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페이지 56

 

 논어에서는 공자가 은둔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누는데, 은둔자는 공자가 오곡을 구분도 못한다며 농사와 같은 실용적인 것보다 뜬구름 잡는 이상주의자라고 비판한다. 은둔자는 세상을 바꾸기 보다는 세상에 순응하며 조용히 살지만 공자는 세상을 더 좋게 바꾸겠다고 나선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삶이 더 좋은 삶은건지는 사람마다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논어에서는 이런 장면을 넣을 것을 보면 오히려 공자의 제자들은 공자의 사회 개혁가로서의 모습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인문학은 특정한 영역의 솜씨를 길러주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인격을 갖추게 하는 배움이다. (...) 인능홍도(人能弘道)는 고통의 인문학을 표현하는 말이다. 사람은 지성과 의지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고통을 치르면서 자신이 걸어왔던 지금의 좌표를 조금 더 앞으로 밀어 낼 수가 있다. 그것이 바로 길을 넓힌다는 홍도(弘道)이다." 페이지 72~74

 

 논어의 인능홍도(人能弘道)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나는 이것이 사람이 자기를 이겨내고 자기의 한계를 확장시켜 진리의 길로 나아가는 모습을 나타내는 구절이라고 생각했다.

 

"군자는 말을 느리게 하고

행동을 재빠르게 하려고한다." 페이지 182

 

"공자는 언행일치를 위해 말과 행동의 속도를 점검하라고 제안한다. 말은 원래 빠른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속도를 늧추고, 행동은 원래 느린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속도를 높이자는 것이다. 그러면 말은 실행이 준비된 뒤에야 하게 되고, 행동은 말에 이어서 일어나게 된다." 페이지 188

 

 사람에게 말을 할 자유가 있지만 말은 빠르게 나오기 때문에 말 실수를 하기가 쉽다. 어떤 사유를 거쳐 말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짧게 생각하고 말을 하기 때문에 실수가 많을 수 있다. 공자는 이런 점을 지적하면서 생각을 하고 말을 하라고 조언하는것 같다.

 

"공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평소 어울리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는 태도도 보이고 있다. 상갓집에 조문을 가서 상주를 위로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자는 방금 조문한 상대의 슬픔에 공감했으므로 집으로 돌아와서도 즐거움을 표출하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페이지 264

 

 "최근에 '공정 서비스'라는 개념이 제기되고 있다. 종업원이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하듯이 손님도 종업원에게 적절한 권리를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서비스와 부당한 요구를 하는 손님은 매장에서 내보내는 식으로 대응하여, 손님의 권리만큼 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문화를 키우자는 의미이다."페이지 269

 

 상대방을 존중할 때 상대방의 감정까지 존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인격수양이 어느정도 경지에 이르러야 이 구절에서 나오는것처럼 상대방의 감정까지 깊게 공감하고 배려하는 행동으로 나오는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점에서 인격 수양은 죽을때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어를 읽고 공자의 인격 수양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죽을 때까지 극기하고 인격 수양에 힘써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공자와 은둔자의 비교에서 공자가 사회 변화를 위해 적극 나서는 모습은 은둔자에게 볼 수 없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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