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복숭아가 폐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다는 방송이 있었다고 한다. 본 적은 없지만 여기저기서 물어보는 이가 많았다. 묻는 이가 적지 않아 개복숭아를 생산하는 생산지에 문의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뒷산에 있던 개복숭아를 하룻밤에 도둑맞았다고 한다. 농작물을 전문적으로 훔치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와 사례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한 밤 중에 야산에 올라 개복숭아를 훔쳐가다니. 그들의 노력과 담력에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또 드는 생각. 다들 개복숭아를 심는다고 다른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 버리면 어쩌나. 기우이겠지만 불안하다. 그런 사례가 있으니까. 용감한 지자체들이 내세우는 구호만 봐도 섬뜩하니까. 부농 육성이라는 이름으로 '소득작물'을 선정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지원하니 논도 뒤엎고 밭도 뒤엎어 소득작물을 재배하는 농가가 한 둘이 아니다. 농업인이 부유해지는 것이야 두 손 들고 반기는 일이지만 그 소득작물이라는 것이 마냥 반가운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브로컬리, 고사리, 파프리카, 블루베리만 먹고 살 수는 없다. 물론 그것만 먹고 살 수 있는 신인류도 있다고 하더라마는 적어도 나는 불가하다. 그리고 걱정은 논으로 이어진다.
관행농이든 친환경이든 대략 나락 80kg 한 가마니의 수매가격은 16만원에서 18만원 선이다. 이에 생산비용은 9만원 선이다. 200평 기준(1마지기기) 관행농이면 일 년에 네 다섯 가마, 친환경이면 평균 세 가마 정도를 수확한다. 직거래를 하는 경우 조금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지만 그래봐야 25만원을 넘지 않는다. 추수까지 드는 비용으로 기계값, 인건비, 모판 비용, 정미 비용 기타 등등을 제외하면 적어도 20마지기 그러니까 1만 3천 220㎡ 정도의 농지를 확보하고 농사를 지어야 연 소득 1천만을 확보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벼농사를 고집하는 농부가 이상할 지경이다. 이런 시절에 지자체보다 백만 배 용감한 정부가 '쌀 수입 허가제'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잘까.
농림축산식품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정부의 입장을 잘 설명한 자료들이 있다. 매우 재미있고 더 나아가 웃긴다. 물론 그 자료에서 감동을 받을 사람들도 있겠으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적어도 내 경우 웃긴다. 우선 '쌀 수입 허가제 폐지'를 '쌀 관세화'라 표현하며 뭔가 관세를 부여해 아무렇게나 쌀이 수입되는 것은 막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거야 말로 코메디다. 사실 '쌀 관세화'는 '쌀 수입 자유화'라는 말을 교묘히 피해가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양곡관리법'이 엄연히 존재하는 마당에 국내 법령을 개정하는 절차도 없이 '쌀 양허표 수정표'를 WTO 회원국들에게 9월 중 통보하겠다는 것은 국회의 입법권도 침해하고 행정절차법도 위반하는 짓이다. 이는 정부가 위법 행위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를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민변이나 녹생당에서 정부의 위법행위를 조목조목 짚으니 2007년 양곡관리법 12조 1항의 개정에 대해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벼락치기의 특성이 그러하 듯 제대로 공부했을 리가 없다. 2007년 개정을 '쌀 수입 신고제'로의 전환이라 정부는 주장하기만 이는 '쌀 수입 시 사용용도를 명시'하여 허가를 받도록 개정된 것이다. 참말로 우짤까.
주위에는 '쌀 관세화' 즉 '쌀 전면 개방'를 원초적으로 막자는 사람들도 있다. 심정적으로 동의한다. 정부가 말하는 고율관세 따위가 얼마나 헛방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한국이 무역협정과 관련해 협상을 잘 했던 적을 본 적이 없으며 더 나아가 의지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믿을 수가 없지. 당연하다. 그러나 슬프고 또 슬프고, 억울하고 또 억울하지만 자국민의 식량을 무역 대상에서 제외했을 시 다른 산업에 여파가 있을 수 있다. 그 산업과 관련한 이해당사자도 역시나 국민이다. 그러니 원초적으로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쩌냐 시절이 그러한 것을. 그렇다면 어찌 해야 하나. 그냥 미친년 머리 풀 듯 풀어야 하나. 단언컨데 아니다. 우선 정부의 사회적 합의 없는 독단적인 결정에 반대해야 한다. 쌀 개방에 따른 이해당사자, 당연히 농민들과 합의를 해야 하고 그것을 먹고 사는 국민들과 합의해야 한다. 합의 과정 속에서 유력한 협상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정부가 말하고 있는 내용들에는 문제점이 많다. 그럼에도 뭔가 이 문제를 빨리 처리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정부가 '쌀'을 버리고 싶어한다는 인상 마저 준다. 쌀을 버리고 반도체나 스마트폰을 씹어 먹자는 것이 아니라면 불필요한 오해를 피했으면 좋겠다.
경쟁력 없다고 뭐든 다 버리겠다면 나는 경쟁력 없는 '정부'부터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럴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힘도 없고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럴 수 없다. 그럼 우짤까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지. 그게 답이다. 경쟁력을 갖추는 동안 적당히 버텨주고 막아줘야지. 역시나 그게 답이다. 그러면 우리가 이 가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우선 똑바로 알고 현명하게 판을 짜고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것도 마음을 다해.
백화점에서 마트에서 수입 곡물이 인기란다. 이유는 다이어트에 좋고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마야에서 먹었다는 곡물도 있고, 어디어디에 엄청 좋은 수퍼 곡물도 있고 다양하다. 자료를 찾아 보니 '귀리'건 '퀴노아'건 기타 등등 사람 몸에 다 좋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 땅에서 자라 그 땅에서 수확해 그 땅에서 먹을 때 이야기다. 곡물 역시 '기업화'되고 '공장화'되면 할 짓 못할 짓 다해 다른 나라로 건너 가게 마련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무담시 돈을 들여 그런 곡물을 먹을 이유가 없다. 연애인이 아무리 살을 뺐다고 떠들고 피부가 좋아졌다고 해도 무시해라. 쌀 수입 개방과 관련해 지혜를 모으고 마음을 모으는 일에 앞서 너도 나도 이 땅에서 수확된 쌀과 잡곡을 먹는 일 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땅에는 수입 곡물과 비견해 어떤 면에서도 뒤지지 않는 곡물이 더 많다. 조, 수수, 율무, 기장, 보리, 서리태...... 많아도 너무 많다. 그러니 수입 곡물을 사서 그것을 조리해 먹을 시간과 비용이 있다면 이 땅에서 나는 것들을 먹는 것이 훨씬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경제적이다. 더구나 그것이 농민과 땅을 살리는 길이다.
개복숭아를 훔친 이들도 오다가다 벼락을 맞아야 하지만 10년 뒤 혹은 20년 뒤에 추수될 그 많은 쌀들을 미리 훔쳐 갖다 버리려는 이들도 오다가다 큰 벼락 맞을 것이다. 그러니 천수를 누리려면 몹쓸 마음을 내려 놓고 협상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 당신들의 만수무강을 위해 우리 모두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 요즘 들고 있고, 읽고 있는 책들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아래에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