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게 있어 여행은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었다.
낯선 곳으로의 도착은 우리를 100년 전으로,
100년 후로 안내한다. 그러니까 나의 사치는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감히 시간을
사겠다는 모험인 것이다.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중
이병률의 말이다. 옳거니 싶다.
기를 써서 마련한 시간이었다. 고작 4일인데도 그랬다. 엉켜있는 것들을 풀 자신도 능력도 없어 뭐든 다 잘라버리려고 떠난 시간이었다. 물론 잘라낸 것도 잘라낼 수 있는 것도 없다는 것만 깨닫고 돌아왔지만 말이다. 늘 어리석으니 놀랍지도 않다.
타자의 변모는 공포이자 경이라고, 김현은 말했다. 여행 중 가장 많이 떠올렸던 문장이다. 세월을 증거하는 돌과 이끼와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차라리 내가 돌이고 풀이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흘끔거렸다. 도통 방법도 출구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시간을 사겠다는 모험,에 기꺼이 탑승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실패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곳에도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할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 가까이 다가서면 멀어지는 세상이 여전히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