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밤은 안개때문이었다.
한강 위를 떠도는 힘없는 안개는 강이 꾸는 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강은 그렇게 태생적으로 북쪽을 기억하며 겨울을 꿈꾸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깊고 날선 대기와 허연 것들이 꿈틀거리는 하늘을.
조바심이 났다. 쥐며느리처럼 몸이 말렸다. 눈이 내릴 것만 같았다.
다행히 밤은 강을 다독거렸고, 강의 꿈들은 서서히 걷혔다.
철지난 옷을 입고 떨고 있는 내게 10월은, 그러니 자비다.
목련 전차,를 읽는다.
그리운 것들이 월담을 하는 밤.
내 곁을 지키는 그 환한 불빛, 목련 전차, 나아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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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눈이 내리면 북극곰이 운다
북극곰이 제일 먼저 동물원 쇠창살을 흔들며
으엉으엉 눈이 내린다고 운다
향수병 같은 거야 잊은 지 오래지만
제 똥을 짓뭉개고 앉아
우울한 덩치로 늙어가는 짐승의 슬픔을 과연
누가 알겠는가 눈이 내리면
그도 내심 몸속의 피가 뜨거워지는 것이다
콧김이 송골송골 맺힌 코를 벌름벌름
알 수 없는 서러움에 사무쳐서
북쪽을 향해 머리를 짓찧고 싶어지는 것이다
눈이 귀한 남쪽 항구 몇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부산에 눈이 내리면
하나밖에 없는 동물원에 눈이 내리면
북극곰이 정말 서럽게 운다
긴 목에 목도리 하나 없이 겨울을 나야 하는
기린은 이 겨울이 딱 질색이겠고
낙타도 코끼리도 시큰둥 썰렁한 우리 안에 들어가
전기스토브를 쬐며 덜덜 떨고 있겠지만
눈이 내리면 북극곰 눈에는 모두가
제 혈족으로 보이는 것이다
흰 털가죽 뒤집어쓴 북극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 부산에 눈이 내리면 나도 따라 울고 싶어진다
흰 털가죽 덮어쓰고 울타리 밖에 갇혀서
으엉으엉 울타리 흔들고 싶어진다
부산에 눈이 내리면, < 목련 전차 > 中, 손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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