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된 카페인은 당신과 나를 닮아 각성도 흥분도 흐릿하기만 하다. 피곤에 붙들린 몸은 아무리 많은 커피를 부어도 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몸은 긴장하지 않지만, 마음은 긴장하지 않는 몸뚱아리를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삼일동안 새벽밥을 했다. 다른 이들은 아침밥이라고 하겠지만, 05시 30분에 짓는 밥을 나는 새벽밥이라 우기고 싶었다. 힘겨웠다는 이야기다.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굽고, 몇 가지 밑반찬을 식탁에 올려놓는 일이 번거로웠다. 맛없는 밥상을 받아야 했던 엄마는 또 얼마나 곤란하셨을지. 내게 번거로운 일, 그럼으로 엄마에게도 고단했을 일, 더 나아가 밥이라는 고단함을 과장된 제스추어로 깨닫는 나는 여전히 어른-아이다.  

엄마에게 내려진 진단은 노화다. 나는 노화가 병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엄마는 차라리 병이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 마음을 알겠으나, 내 마음이 그 마음일 수는 없다. 간격을 메우지 못하고, 간격을 확인하는 일에 멈춰버린 딸은 다급해진다. 시건방지고 설익은 성찰이 쏟아진다. 가소롭고 버르장머리 없으며, 한없이 이기적인 딸년이다.   

엄마가 책장을 본다. 무슨 책이 제일 재미있냐고 묻는다. 난감하다. 땀이 난다. 책등을 훑어본다. 엄마에게 재미있을 책이 무엇일까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모르겠거나 없다. 그렇지만 실망하는 타인의 얼굴을 보는 일에 나는 익숙하지 않다. 무엇이라도 골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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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엄마의 일상으로, 나는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더 많은 시간을 더 은밀한 마음을 나누지 못한 안쓰러움도 덤으로 따라왔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자식들을 뒤짊어지고도 거침없었는데, 엄마를 채 업지도 않은 딸은 벌써 비틀거린다. 그래서일까. 보잘 것 없는 자식을 낳았다고 부모 역시 보잘 것 없는 것은 아닐진데, 돌아가는 엄마의 뒷모습은 헛헛하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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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10-09-12 0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딸네집 오는 엄마라는 이름.
내 집 오는 엄마 맞는 딸이라는 이름.
딸년집 다녀가는 에미라는 이름.
헛헛한 뒷모습 배웅하는 딸년이라는 이름.
여자라는 이름들은.....흐음.

굿바이 2010-09-12 23:43   좋아요 0 | URL
제 마음을 짐작해주시는 것 같아, 염치없는 위로를 얻습니다.

hohoya 2010-09-19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친정어머니도 병원에서 한 달을 계셨는데
무심한 이 딸은 앉아서 블로그 댓글 달 시간은 있어도
딸이 보고싶은 엄마에게 얼굴 보여드릴 시간은 없었네요.

친정엄마의 그 어깨가 지금의 내 어깨일 수는 없는데
우리 달 하나는 또 제 어깨가 그리 믿음직스럽다니.......
그래서 사랑은 내리사랑인가 봅니다.

저,날마다 새벽밥하고 있시유.
5시30분에 일어나 밥차려주고 있시유.
하나는 따끈한 밥을 먹어야 하루를 시작하는 힘이 난대유.
괜히 아침밥 먹는 습관을 들여줬어,괜히 그랬어.ㅇㅇㅇㅇ

굿바이님, 복많이 받으락....
아니다,설날이 아니지.
아니야,추석에도 복많이 받으면 좋겠지 않아요?
어차피 설날엔 여럿이 나누느라 경쟁률이 높을테니까
굿바이님은 추석에 미리 남들의 100배는 받아버려요. 해피 추석!!

굿바이 2010-09-20 11:17   좋아요 0 | URL
아! 날마다 새벽밥하세요?
우와....존경스럽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도 알겠죠? 본인이 참 행복한 딸이라는 사실을요. 알겁니다.

호호야님 덕분에 올 해 하반기는 잘 굴러갈 것 같습니다. 이 고마움을 어찌 다 갚을지 모르겠어요. 호호야님도 뭐든 잘 드시고, 마음까지 둥둥 떠오르는 추석 보내세요.
무조건 기쁘고 또 기쁜 연휴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