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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1 ㅣ 펭귄클래식 74
샬럿 브론테 지음, 류경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3월
평점 :
작품이 쓰여진 시기를 고려하면, 지금의 독자인 내가 19세기의 독자가 느꼈을 놀라움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작품을 얕잡아 본다거나, 가치를 폄하하거나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고전이 갖는 함의라는 것이 있으니, 시대를 잇고 꿰뚫는 가치 혹은 비평 정도는 얻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니면, 인간에게 주어진, 천형으로서의 아킬레스근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줄거리는 너무 잘 알려져 있듯이, 고난과 역경에 맞선 소녀 제인이,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상황까지 성장하여, 그(로체스터)와 결혼했다,라는 고백으로 마무리된다. 납득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소녀가 명민하게 상황을 헤쳐 나가는 모습, 그리고 그 주위에 포진한 멀쩡한 인간-남성, 인간-여성들의 도움, 숭고한 결말로 흐르기 위해 곳곳에 포진한 간악하거나 어리버리한 군상들은 완벽한 삼중주를 예측하게 하고, 예측에 대한 포상으로 적확한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독자를 배신하지 않는 힘, 이것이 어쩌면 이 소설을 그토록 오랜시간, 많은 소녀들에게 회자되게 한 원동력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런 힘을 위로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나는 이 소설의 정치적,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는 되도록 피하고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숱한 평론가들이 이미 할 말은 다했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나는 그들보다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많은 시간을 보낸 로우드에서의 생활이나 여성의 사회 참여와 경제적 예속, 결혼의 문제, 종교적 신념 따위는 나도 입을 대고 싶은 부분이 있지만, 오히려 개인적인 감상에 의존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내 속내이기도 하다.
제인 에어는, 사랑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해할 수는 없는, 혹은 미운 아가씨다. 이해할 수 없으면서 사랑할 수 있다는 나의 말이 어처구니 없게 들리겠지만, 그 [어처구니 없음]이 심중에 담긴 진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 어처구니 없음을 어처구니 없게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는구나! 여하간, 사랑할 수 있는 부분은 그녀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그녀가 아가씨의 얼굴을 하고 있을 때다. 그녀가 [외삼촌 집]에서 보여 준 결기나 [로우드]에서 보여준 의지들은, 당당함과 강인함, 자기애라는 덕목에서 충분히 납득되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그녀가 가정교사로 근무한 [손필드 장]이나, 떠돌다가 우연히 들어선 [무어 하우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펀딘 장]에서의 행동들은 한 마디로 어처구니 없다.
그렇게, "부당해! 부당한 일이야!"라는 말을 외칠 수 있었던 꼬마가, 타인의 부당함, 로체스터가 겪고 있는 부당함 앞에서는, 심지어 사랑하기도 했다면서, 어찌 그리 빨리 발을 뺄 수 가 있었던 것일까. "'어찌 감히'라고 했나요? 어찌 감히? 그게 바로 진실이기 때문이죠"라고 당당히 말하던 소녀가, 타인의 얼토당토아니한 요구, 신 존의 요구에는, 심지어 사랑하지도 않았다면서, 어찌 그리 우물쭈물할 수 있었던 것일까.
다시 돌아간, 그, 로체스터 앞에서, 이제는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여자이니 당당하게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녀의 말과 의지는 백 번쯤 옳고, 백만 번쯤 박수 쳐주고 싶은 모습니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아도 될 때, 온전히 먹고 사는 일에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 때,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집중할 수 있고, 빠져들어도 되고, 탐닉해도 되며, 그럼에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후회를 보듬을 수 있다. 자립할 수 없는 사람의 사랑은 늘 신경증적인 행동을 수반할 수 밖에 없고, 파국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상속이건 뭐건 일단 먹고 사는 일, 경제적 신분 상승을 이룬 후 로체스터를 찾은 제인은 역시나 어린 시절 똘망똘망함을 잃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런데, 로체스터는 어떤가. 눈도 잃고, 팔도 잃어야 사랑을 붙들 수 있는가. 불구의 몸으로 온전한 제인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희생이야말로, 제인의 희생이야말로, 사랑의 숭고함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감히 그의 입을 찢으려 할 지도 모른다. 그런 이데올로기는 폐기되어야 옳다.
제인에어는 목적지를 멀리 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출발점에서 그리 멀리 나가지 못한 소설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아무리, 사랑이 감정의 낭비라지만, 연애가 유희이고, 혼인이 약자의 자기 구제라지만, 이건 옳지 않다. 명민한 한 소녀를 정신병에 가까운 아가씨로 만들어 버린, 샬럿의 의지가 정확히 무엇을 향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작가의 히스테리에 희생된 주인공들이야 목숨이 붙어 있지 않아 다행이지만, 살아 있는 독자로서의 소녀들은 또 어쩌란 말인가. 공기를 따라 떠다니는 모든 낭비의 기류를 사랑이라고 한다면, 설마 그것들을 모두 사랑이라고 말 할 작정이라면, 아아~ 나의 주인님은 그저 신이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신이었으면, 이성도 내려놓고, 심지어 광기에 사로잡혀 따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민음사에서 나온 책을 잃어버려, 펭귄 클래식을 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