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을 넘어도 소녀같을 민정양이 아니었으면 어림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사랑을 찾아 태평양을 건너지 않았더라도 아마 이 모임(책 읽는 부족)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언제나 자체발광에너지를 소유한 그녀가, 태평양쯤이야, 내 사랑을 가로막을 순 없지, 뭐 이정도 배짱을 보이지 않았던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만한 분들을 또 어찌 만날 수 있었겠는가.
여튼, 그렇게 각 지에 흩어져 있는 분들과 [민음사 고전 읽기]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얼굴을 뵙게 되었고, 그곳이 다름아닌 이천십년의 잔인한 봄 바다가 덜컹 펼쳐진 부산, 광안리였다.
서울역에서 처음으로 만나뵙게 된 두 분, 후니마미님과 호호야님은, 상상은 했지만, 그래도 설마했는데, 사십대에 대한 나의 막연한 불안감을 한 방에 날려주시는 센스와 내공 그리고 미모를 갖추신 분들이었고, 오랜기간 알고 지내온 두 처자, 웬디양과 민정양은, 여행을 가면서도 샤방거리는 원피스를 입을 정도로 초절정 사랑스러움과 깡을 겸비한 여인네들이었다. 다시 말해, 어리버리 우중충한 사람은 나 혼자였던 셈이다. 급격히 우울했다.^^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눌 즈음, 대전에서 기차에 오른, 건장한 청춘, 도치님이 합석을 했고 그렇게 여섯의 민간인들은 KTX보다 빠른 속도로 웃고,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역시 공통의 언어를, 그리고 같은 시절을, 그것도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소유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 시간이 주었던 묘한 안도감이 그것을 반증할 것이다.
부산역 플랫폼에 도착함과 동시에, 부산에서 우리를 기다리신 동우님을 처음으로 뵙게 되었고, 글에서도 감지할 수 있었지만, 품격있는 인자한 미소에서 뭐랄까 부산에서의 하루가 매우 유쾌하고 유익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예감은 적중했고, 나는 내내 즐거웠다.
동우님이 마음 써 주신 덕분에, 바다가 와락 보이는 숙소에서 짐을 풀고, 곧바로 선물로 가져온 책들과 이야기 보따리들을 풀었는데, 선물에서 보이는 그 마음들이, 이 어정쩡한 봄날을 단칼에 베어낼 만큼 훈훈하고 아기자기했다. 또한, 모임을 위해 민정양과 웬디양이 준비한 프로그램들은 다시 생각해도 기특하고 고마운 것들이었다. 아- 아직은, 사람이 희망일까? 마음 한 켠 세워놓은 철조망 사이로 봄꽃이 가벼이 날리고 있었다.
흥이면 흥, 노래면 노래, 술이면 술, 어디간들 이 땅의 젊음이 뒤질 수 있겠는가. 부산의 회는 치아로 씹히기도 전에 목구멍을 넘었고, 부산의 소주는 처음 만난 사람들의 경계를 자연스레 걷어낼 만큼 달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마음이 덥혀질 만큼 취했고, 서로를 기억할 만큼 또랑또랑했다. 자리를 옮겨 노래를 부르고, 정말이지 다들 어쩌면 그리 뭐든 잘하시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봄 밤의 바다를 옆에 두고 걸으며, 파고드는 바람을 적당히 무시한 나는, 같이 걷던 분들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마음 속으로 더듬었다. 어쩌면 가늠할 수 없는 사연과 세월을 살았을, 어쩌면 감당할 수 없는 시간을 다시 살아내야 할 우리들이지만, 그렇게 각자의 삶의 무늬를 잠시 내려놓고, 이렇게 같은 바닷가를, 각기 다른 보폭으로 걸을 수 있다니,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을 지언정, 내게는 혹은 서로에게는 짧은 순간 찾아든 위안이었을 것이다.
아- 사월의 봄을, 그밤을, 더 기록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마음에 둔다. 잊지 못할, 봄이 어찌 없었겠는가마는, 이천십년의 봄도 여투어두기 위함이다. 나는 그렇게 마음에 묻어 묵히는 일이 즐거우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먼 길을 가볍게 나서준 후니마미님, 호호야님, 도치님, 민정, 웬디와 부산에서 뜨겁게 맞아주신 동우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먼 곳 케이프타운과 미국에 있어 자리를 같이 하지 못한, 심샛별님과 쟁님에게도 아직 낯설지만 작은 마음 하나 흘립니다. 다들, 건강하고 평화롭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