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전철에서 『근대의 어둠을 응시하는 고양이의 시선』이라는 책을 보고 있었다. 선배가 무슨 말을 하기 위해 나를 불러냈는지 짐작하고 있었지만, 또 나는 그렇게 거절하고 돌아오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여하간 찹찹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뭉뚱그려진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 역부터 내 옆에 앉으셨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 내게 6.0 이상의 강도로 다가오신 그분, 할아버지 혹은 노신사와의 벼락같은 조우는 이러했다.
그분 : 독서하는데, 방해가...
나 : 네? (화들짝 반, 적개심 반)
그분 : 그 책 재미있나요? 꽤 집중해서 보는 것 같아서.
나 : 아~ 네, 아~ 재미있습니다.
그분 : 책을 많이 보나요? 학생은?
나 : 아~ 그건 아니구요, 그리고 학생도 아니구요, 그냥, 그저 심심하고 무료해서요. (버벅버벅)
그분 : 제목이?
나 : 『근대의 어둠을 응시하는 고양이의 시선』입니다. 정선태씨가 쓴 글이구요.
그분 : 응...그런데 겁이 많아 보여요? 인상도 그렇고, 자세도 그렇고. (미소)
나 : (뭐래? 작업이래? 아~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할아버지가...) 뭐..그다지...
그분 : 멍이 잘 들지 않나요?
나 : 아~ 네, 잘 들어요. 몸이 좀 부실해서요.
그분 : 마음에 멍도 잘 들지 않나요?
나 : (이건 또 뭐래? 도를 믿으세요, 뭐 그런 부류의 할아버지? 그러기엔, 세련된, 어...신종?) 아뇨, 마음에 멍이라니...잘...그런데 저 이제 내릴겁니다. (뭐냐? 왜 내려? 여기가 어디래?)
그분 : 괜히 놀래켰나 보네요. 몸이 안좋으면, 아직 젊어 보이니까 꾸준히 운동하세요. 그리고, 호신술 배워봐요, 세상이 참 무섭잖아요. 낙법도 배워보구요. 잘 넘어지는 사람들은 그거, 낙법이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그리고, 책도 많이 읽으면 좋긴한데, 실전에서 강해야지요. 사람 많이 만나요. 아파도 보고, 다쳐도 봐야지요. 자꾸 아프고 다치다 보면 마음의 낙법이라는 것도 배우게 되요. 안다칠 수는 없어요, 사는 일이, 그러니까 잘 다치는 법을 배워야죠.
나 :.............
내릴 역도 아니었는데, 냅다 내려 버렸다. 마음의 낙법이라, 마음의 낙법이라, 잘 다치는 법.........할아버지 누구세요? 도대체? 누구시랍니까? 그리고 여기는 어디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