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의 낙타와 성자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조원규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으레 터널을 만나게 된다. 어디론가 뚫려있는 터널은 이제껏 조우한 고만고만한 경관에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풍경으로 진입하는, 그래서 그 길이와 무관하게 항상 일정한 두려움과 기대를 갖게 한다. 이때 터널의 입구에서 느끼는 두려움이 터널 뒤의 세상과 두 번 다시 마주할 수 없으리라는 불안의 신경증이라면, 터널안에서의 기대는 현실을 벗어나 다른 세상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망상의 신경증일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여행은, 현실에서 맞이하는 터널과 같은 것이다. 답답한 실존으로서의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며, 숙명처럼 새로운 것들을 만날 수 있는, 끊임없이 불안하고 끝없이 설레는 정신병. 하므로 여행에 거는 기대는 처음부터 측정이 불가할 수 밖에 없고 떠나는 자의 기쁨이 여행지에서도 온전하리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영광의 탈출을 조금이라도 도와 줄 조력자를 구하게 되는 것이리라. 가장 저렴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한 권의 책!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처음 채우게 될 어긋난 단추일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엘리아스 카네티를 통해 만난 모로코는 여행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수십개의 불편함(예로 언어의 문제, 바가지 요금, 불친절한 여행사 직원, 난방시설이 고장난 호텔, 지독한 모기때, 잃어버린 여권 등등)보다 더 불편했다. 그러니 불편이라는 단어는 내가 작가에게 갖는 호의적인 감정의 마지막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책을 읽는 동안 힘들었다. 조금 지난 일이지만 한국의 중견작가가 집필한 인도 기행서를 읽을 때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 것 같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를 시작으로 그를 답습한 인도 기행서가 무수히 쏟아져 나왔던 것 같다. 한결같이 슬프고, 비밀스럽고, 무기력하고, 가난한 인도의 이야기들이.

작가는 모로코의 오래된 도시 마라케시를 천천히 걸으며 낙타가 한끼 식사거리로 팔리는 낙타 시장에서 침통해 하고, 성고문에 시달리는 나귀의 오후에 구토를 느끼며, 수치심을 가난과 바꾼 거리의 아이들에게 동전을 주고, 히잡속에 감추어진 여자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뻔뻔하지만 천진한 젊은 실업자를 위해 편지를 쓰고, 거지인지 성자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일개의 무리들을 예의바르게 관찰하고, 아내의 아랫도리를 팔아먹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처럼 그가 보고 들은 것들은 모로코라는 단어가 내 마음에 새겨놓은 기표를 말끔히 지워내는데 충분했다. 아니 저항이 없다면 새로운 기표를 만들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는 왜 끝까지 그의 표현처럼 성실하지만 무정한 여행자,로 머무를 수 밖에 없었을까? 나는 그에게 쓸데없는 혐의를 씌우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의 차례와 마주보는 지면에 그려진 마라케시의 도시 그림을 손으로 짚어 보았다.  

역설적으로 이 책의 글과 사진을 통틀어 나는 이 그림이 가장 좋았다. 이 도시 그림에는 위쪽부터 밥 두칼라 사원, 벤 유수프 사원, 제마알프나 광장, 쿠르비아 사원, 밥 아게나우, 바히아 왕궁등이 조그맣게 그려져 있었다. 어느 한 시절, 그림의 사원들에서는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성자들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나누어 주었을 것이며, 수많은 학문이 연구되고 그들의 문화가 꽃을 피웠을 것이다. 그림의 왕궁에서는 강한 왕이 태어나 나라를 지키고 외국과 교류했을 것이며, 교육을 장려하여 부국강병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림의 광장에서는 명민한 이야기꾼이 영광의 역사를 이야기하거나 영웅과 아름다운 공주의 사랑을 이야기하며 도시의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을 것이다. 그림에는 없지만 그 곳의 사람들은 일하는 손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흥정으로 꾀를 겨루고 시장에서 기술을 겨루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내가 작가에게, 적어도 품격있고 명망 있는 어른으로서의 그에게 기대했던 여행기는 낡은 성곽의 돌 하나, 광장의 돌탑 하나에서도 세월의 암호를 해독해서 보여주는 여행기였다. 나 같은 사람은 모로코를 옆집처럼 드나들어도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는 그런 여행기, 잊혀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혹은 오도된 모로코를 그의 유려한 문장으로 온전히 살려낸 시간을 뛰어넘는 여행기, 그래서 나처럼 모로코라는 도시를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또는 앞으로 그곳을 찾을 사람들에게 작가가 보지 못한 이상의 것들을 만날 수 있게 하는 마음을 갖게 해 주는 여행기 말이다.

혹자가 말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며,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며, 쓸데없는 환상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또 말하고 싶다. 내게 현실을 홀딱 벗겨 보여 줄 여행기라면 나는 읽지 않겠노라고 말이다. 내가 모로코에 가면 그대가 말하지 않아도 공항에 도착해서 부터 지저분한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며, 거지를 만나게 될 것이고, 지친 낙타와 나귀도 보게 될 것이고, 지겹도록 히잡을 둘러쓴 여자들과 마주 칠 것이고, 매춘부도 보게 될 것이라고. 나의 관음증으로 말한다면 절대 그대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나는 여기서 에드워드 사이드가 어렵게 구축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로 이 책의 리뷰를 쓰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식으로 들여다 볼 필요도 없으며 그렇게 읽혀질 이유도 없다. 내가 실로 이 책을 읽으며 작고한 작가에게 어설픈 날을 세워가며 경계하는 이유는, 작가의 높은 명성과 본보기 될 만한 글쓰기에 휘둘려 생각없이 이 책을 베끼는 모로코 여행기가 넘쳐나지는 않을까,하는 기우 때문이다. 관음증이라면 대가의 그것 하나로 충분하다. 그런 것이라면 정말이지 그만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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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10-01-28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굿바이님.
제목도 지독하게 낯선 책들.
통찰한듯 낯선 것들을 수렴하면서 이토록 자의식 강한 사람이 누구였을까하고 잠시 생각합니다. 하하
무수한 구상 추상의 인물들, 누구였을까..하하
굿바이님이 닮은 사람, 굿바이님을 닮은 사람.


굿바이 2010-01-2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는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닮고 싶은 사람들이야 너무 많은데, 다행스럽게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았고, 그리고 저를 닮은 사람이라....아마 없을거예요. 저는 좀..... 많이 실망스러운 사람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