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미쳤나보다고, 날씨가 너무 추운거 아니냐고, 지구가 따뜻해진다는 말은 다 나의 거짓말이라고 툴툴거리는 친구 녀석이, 결혼이고 직장이고 다 때려 치우고, 아르헨티나로 떠날거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너 말 한 번 잘했다, 오냐, 잘 생각했다. 가거들랑 이참에 같이 가자, 거기가서 부채춤을 추던지, 심수봉 노래를 부르던지 밥은 굶겠냐고, 한참을 떠들다가 무심코 어묵을 파는 트럭 앞에서 나는 멈췄다.

어묵을 파는 아저씨가 만삭인 젊은 여자를 파리 쫓듯이 내몰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 홀린 사람처럼 트럭으로 다가갔다. 아저씨는 거친 말투로 욕설을 퍼붓고 있었고, 여자는 겁난 표정으로 얼마만큼 물러 서다가 또 트럭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여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오뎅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그러면 안되는데, 나는 아저씨와 여자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저씨, 어묵 한 꼬치 주세요." "칠백원 입니다."

나는 돈을 주고 건네받은 어묵 한 꼬치와 종이컵에 담은 국물을 여자에게 내밀었다. 여자는 잠시 멀뚱멀뚱 머뭇거리더니 그 짧은 커트 머리를 긁적이며 어묵을 건네 받았다. 아저씨가 갑자기 나를 쏘아보더니 어묵 꼬치를 여자의 손에서 낚아챘다.

"이럼 안되지. 한 번 이러면 계속 여기로 온단 말이오. 아가씨가 내 장사 책임질꺼요?"  "아저씨, 저 배 안보이세요. 만삭이라구요. 만삭!"
"그래서 저년 배가 내 짓이오? 이 아가씨 정신이 없구만."
"미친년이건 안미친년이건 저 배 속에 생명이 있다구요, 그리고 아저씨 허기가 뭔지 아세요? 배고픈거요, 그거 아시냐구요? 그리고 내 돈 주고 내가 사서 누구를 주건 버리건 아저씨가 뭔 참견이래요. 이리 줘요."

나는 정말 한 대 칠 자세로 심하게 아저씨를 째려보며 아저씨가 낚아챈 어묵 꼬치를 다시 뺏어 그녀에게 건냈다. 그녀가 웃는다. 빨간 볼을 씰룩거리며 웃는다. 아직 뜨거운 어묵을 제대로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킨다. 어묵의 뜨거운 기운이, 달짝지근한 국물이 그녀의 입속에 가득 고이는 것이 보인다. 그녀는 보도블럭 언저리에 녹은 눈처럼 그렇게 어묵 국물에 녹아드는 것 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어서 가라고 말하고는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근처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가장 큰 햄버거를 시켰다. 그녀의 불룩 솟아오른 배. 짧게 잘린 머리. 빨간 볼. 갑자기 가슴은 헛헛하고, 허기지고, 눈물 나는 1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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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09-12-30 0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엉뚱하게 박순녀의 '영가'라는 소설이 생각납니다.
아기 업은 남루한 여인이 보석상 쇼 윈도우 안 진열된 반지를 꼼짝않고 들여다보는 대목.
먹거리를 향한 고픔.. 마음의 고픔.. 자존의 고픔.
들창 너머 행복한 가정의 크리스마스 만찬을 들여다보는 성냥팔이 소녀.
그야말로 세밑의 겨울입니다.

굿바이님.
새해 건강과 행복을.

굿바이 2009-12-31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가"라는 소설이 궁금합니다. 한 번 읽어볼까 합니다.

동우님.
새해에는 동우님 가족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계획하시는 일들도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