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객수산록
김원우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그 단정한 문체, 그 무류(無謬)의 사실증언벽, 그 해박한 박람강기의 적절한 현시성, 더불어 그 항목별 관지(關知)의 연쇄를 마냥 즐길 수 있음은 앎의 광대무변에 스스로를 유폐시켜 몰아의 경지를 누림에 다름아니었다.」-객수산록 p.281
그래서였을까, 작가의 다섯 편의 중편은 모두 시대정신(한국의 근대화와 물질만능주의를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다면)이라는 씨줄과 현실세계의 반푼이들을 날줄 삼아 아주 촘촘히 짜낸 결이 고운 한 편의 직물같았다. 또한 그 직물 위에 그려넣은 무늬들이 참담할 정도로 세밀하고 사실적이라서, 직공의 손재주에 탄복하다가 이내 목덜미 어디쯤이 서늘해지고 목구멍이 칼칼해졌다. 무엇엔가 떠밀려 살아온 자들의 헛헛한 심정과 핑계있는 억지는 말로해서 알아지는 일도 아니고 말로 한다고 변할 일도 아니지만, 급기야 점입가경의 기괴함으로 구질구질해진 시절과 타협할 의지가 없는 작가는 뭐라도 하지 않고서는 유유자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쓸 수 밖에.
다섯 편의 중편에는 비슷비슷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대학교수, 작가, 바람난 아내 혹은 남편들...어찌보면 등장인물들의 폭이 좁다 싶지만 사람 마음 쓰는 일이 다 거기서 거기임을, 프렉탈 현상이 브로컬리에만 존재하는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도 수긍이 간다. 물론 등장인물을 채색하는 그의 미감이, 뭐랄까 권위적인 구석이 있으면서도 짐짓 모르쇠를 잡는 듯해 마뜩짢은 것도 사실이다. 사실 글쓴이의 미감이 작품으로의 몰입을 종종 방해했지만, 그저 불편하다고 할 수 밖에 전체적인 완결성을 보면 책잡을 일은 아닌 듯 싶다. 문장의 강단으로 보나 담백한 감성으로 보나 더러 눈에 띄는 괴팍함으로보나, 이맛도 저맛도 아닌 실험적인 음식 앞에서 난감했던 기억이 있던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읽는 이를 조금 괴롭히는 권위적인 미감이야 눈 감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뿔사! 이렇게 쓰고 보니 어찌 김원우와 김훈은 닮았다.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데 현실이라는 외피를 도외시한 주체는 거의 퇴행성 정신장애일 뿐이며, 그렇다고 해서 편의주의적 현실 추수주의자는 주체성의 일정한 미달이라는 결격 사유만으로도 일찌감치 스스로 옷을 벗는 게 타당하다」-모기발순 p.412
돌아보면 지천에 널린 군상이다. 어느 쪽이거나 때로는 두 쪽 모두 다 이거나. 물론 그렇게라도 해야 살 수 있지 않냐고 따지고도 싶지만 실상 그렇지도 않다. 매우 다양한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 쳐도 세상에 '모 아니면 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쉽지는 않겠으나 덜어 낼 것들을 좀 덜어내고 정신을 차리면 어려울 일도 아니다. 작가도 아마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거다. 풍토가 그렇다고 스스로를 위무하고 무신경해지다 보면 자발적으로 무능해짐과 동시에 통렬하게 후회할 일만 남게 된다는 것을.
「무력감, 귀찮음, 상실감, 허전함, 박탈감, 게으름, 낭패감, 맥빠짐, 실족감, 엉거주춤, 구속감, 옥죄임, 의무감, 안달복달, 언어가 부족한게 아니라 심기가 언제라도 만화경처럼 희번덕거린다 」-무병신음기 p.124
어찌 알았는지 요즘의 내 심중을 가을햇살 아래 무말랭이 말리듯 쫙 펼쳐 놓았다. 수분이 빠지고 꼬들꼬들해지니 볼품은 없지만 윤곽은 확실해진다. 글쓴이의 냉소와 통찰력이 여간 거슬린다. 몹쓸! 그렇지만 어찌 모르겠는가, 그것이 글쓴이의 점잖은 비명임을.
어느 덧 신체적 무병에도 신음소리가 절로 나는, 가을이다. 김원우의 소설은 가을에 읽어야 제맛이라고 다소 맹문이같은 사족을 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