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교(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교주 박민규가 이르길 천운영의 소설은 [정말이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란다. 그리고 또 그 이유를 [당신이 운좋게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다면 잘.알.겠.지 이런 내 마음]이라 한다. 그러니까 나 혼자 만이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를 알고 싶소,정도 되겠다. 그래, 그런 책이 나도 있긴 있었다. 그러니까 [잘.알.겠.다 네 마음] "소설은 울분을 토해 내는 것이 아니야. 냉정해져. 질척대지 말고. 자기연민 같은 건 버려. 자기변명도."(162p) 그래서였을까. 천운영의 작품들은 질척이지 않았다. 그녀의 글에서 설핏 엿보이는 어설픔은 있었지만 욕망의 고갱이를 진지하게 탐색하면서도 쓸데없이 무엇인가 조작하려는 조바심이 없다는 점에서 그녀의 소설은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냉정함을 잃지 않으면서 순도높은 욕망의 풍경을 완성시킨 셈이다. 칭찬하면서도 질투가 나는 대목이다. 작가의 작품들을 따라가면서 나는 점점 그녀가 궁금해졌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욕망과 상처들이 궁금했다. 질 나쁜 행동이라 뻔히 알면서도 나의 관음증은 그녀의 작품 속에 녹아난 그것들을 찾으려고 시종일관 분주했다. 그리고 사실임을 확인할 수 없지만 나는 어느 지점에선가 그것, 소름 돋게 내것과 닮아 있는 생채기와 마주할 수 있었다. 눈물로는 어림도, 그러나 무엇으로라도 울어야 하는, 나는 [그녀의 눈물사용법]을 알 것만 같았다. 다른 단편들도 그렇지만 특히 [노래하는 꽃마차]라는 단편은 봄이 오면 제 몸을 미친듯이 긁어 피꽃을 피우는 한 여자의 과거와 현재를 노래처럼 들려주는데 여자의 과거를 따라가며 여자가 겪은 치욕을 되살리는 작가의 문장이 참 아프고 그래서 참 아름다웠다. 욕망을 그리고 상처를 먹이를 하지 않는 글쟁이가 있을까 생각하니 없겠다,싶다. 다 아문 상처건 덜 아문 상처건 왜곡된 욕망이건 그걸 다시 들추고 쑤셔대야 하는 일이 글쟁이의 운명이라면 처량하고 딱한 밥벌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억압된 충동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이 그것을 배설하는 일이라면 글쟁이야 말로 되려 허구헌날 쾌변의 기쁨을 누리는 자들이 아닐까 싶다. 울고 웃고 장단 맞추고 노래하고. 작가는 지면을 빌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다. 그런 '내가 소설을 쓴다']라고 적고 있다. [어쩔 수 없다]라는 말, 작가가 어떤 의미로 사용하였는지와 무관하게 나와 작가를 깊게 연결해 주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쓰는 작가의 글들이 욕망과 상처를 온전히 굴절한 풍경이기를 바란다. 처음으로 돌아가 박민규의 흉내를 내보자. [정말이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당신이 운나쁘게 그녀와 같은 욕망과 상처를 숨기고 있다면 잘.알.겠.지 이런 내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