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는지 그 시작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느 출판사에서 주체하는 소설상이니 어느 신문에서 뿌리는 문학상이니 그런 것들을 내심 허투루 넘겨 볼 수가 없었다. 궁금했고 또 가당치도 않은 욕심을 부려 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서유미의 작품이자 [제 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이라는 영예를 거머쥔 이 작품을 곱게 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상식을 저버리는 마음가짐은 아니었다. 그녀의 소설이 어때요?라고 누군가 물으면 나는 [속도감은 좋았어]라고 말할 것이다. 이유없이 난해하고 쓸데없이 지루한 소설보다는 쉽게 이해되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더 좋은 글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조건 빨리 읽혀 좋다,라는 뜻은 아니다. 조카의 낙서장처럼 기승전결을 완벽히 예측할 수 있어서 혹은 [메롱!]처럼, 좀처럼 곱씹어서 읽을래야 읽을 수 없는 그런 글들의 스피드까지 예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유미의 소설 [쿨하게 한걸음]은 조카의 낙서장과 어딘지 닮아 있었다. 작가에게는 너무 미안한 말이지만 말이다. 미혼의 삼십대 여성 그것도 돈도 없고 실업자에 애인도 없다는 설정은 갑갑하고 상투적이지만 어찌되었건 작정만 하면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를 엮어 낼 수 있는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건 뭐랄까, 그저 몇 일전 내가 친구와 떠든 전화 통화의 일부분과 멀리 떠나있는 친구의 싸이월드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많이 뻔하고 또 지극히 다람쥐 쳇바퀴와 유사한 이야기 말이다. 물론 삼십대가 극적 긴장감과 절망으로 벼랑 끝에 서있다고 말하면 그것은 시건방진 발언이지만 적잖이 암울하고 절망적인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런데 그 긴장과 절망이 스타벅스의 캐러멜라떼 한 잔으로 위로되겠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참으로 뭣도 아닌 뭣인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말하는 쿨하게 한걸음이라는 것, 특히 쿨하다는 것이 [짜식! 가볍게 툭툭 털어버려!]라는 의미라면 나는 [가볍게]라는 대목에 곱표를 하고 싶다. 특히 [가볍게]라는 의미가 성찰없는 가벼움이라면 곱표 세 개쯤은 얹어주고 싶었다. [쿨하게 한걸음]은, 작가에게는 두 번 미안한 말이지만, 작가가 출발선에서 딱 한걸음만 떼어놓은 작품같았다. 물론 그 한걸음이 작가에게는 쿨했는지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