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에서’는 '신과 인간'사이,'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중재자 무당의 삶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이창재 감독이 만든 98분짜리 다큐멘터리다. 부산에서 유일하게 독립영화들을 상영하는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봤다.
‘초상났냐? 굿하자.’
이 영화를 소개하는 포스터에 제일 큰 글자로 쓰인 이 말의 의미를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무당이 되기 싫어서 울고 또 울던 황인희와 그런 인희를 바라보며 울던 대무 이혜경을 보기 전까지는.
28살의 인희는 자신이 하고 있던 사업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망하고 집안에 편지풍파가 끊이질 않자 점집을 찾는다, 그곳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무당이 될 팔자를 타고 났단다.
‘도대체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냐고’ 반문하기를 수십번, 울먹이며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던 인희는 수없이 생각한 끝에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큰 무당 이혜경 옆에서 이런 저런 사연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만나고 이들의 소원을 신에게 전하고 신이 전하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여러 가지 의식도 지켜본다. 그러나 마음 속에 하루에도 수천번 갈등이 인다.
인희가 무당이 되기로 결심하고 내림굿을 받기로 한 날, 인희도 대무 이혜경도 꺼이꺼이 운다. 인희는 평범하지 않는 운명을 타고난 자신의 팔자가 원망스러워, 이혜경은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어린 나이에 ‘신의 딸’로 살아야 하는 인희 삶이 불쌍해서.
내림 굿은 밤새 이어졌다. 대무도 괭괴리와 장구를 치는 사람들도, 옆에서 시중을 드는 사람들도 기진맥진했다. 이런 의식을 한 번 치루기 위해서는 만만찮은 비용과 수많은 이들의 기운이 필요한 것 같았다. 그런데 내림 굿은 받은 두 달 뒤 인희는 결국 평범한 28살 처녀로 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무당이 되어 하고픈 일들을 포기하고 살기에는 28살이라는 나이가 너무 젊었기 때문이다.
나는 ‘굿’에 대해 좀 특이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나 하는 ‘이상한 짓’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그러한 의식을 주도하는 무당에 대해서도 꺼림칙하고 무서운 느낌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마을에서 간간이 굿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도 굿을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설에서 대보름 사이에는 배를 가지고 있는 집에서는 용왕제 같은 것을 올리기도 했는데 나는 웬지 무당이 하는 행동들이 무서워서 징 소리만 나도 인상을 썼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데는 ‘가면극의 이해’라는 책을 본 덕분이다. 선입견을 걷어내고 보니 ‘굿’이 우리 전통 문화의 일부라는 것이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느낀점은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이 세상에는 무수히 일어난 다는 것, 그런 일들을 겪는 본인들은 이중삼중의 고통을 당한다는 것. 이런 분들에게 무당은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당도 수많은 직업 중 하나다. 다만 우리가 우리들의 의지에 의해 자신의 직업을 선택한다면 그들은 그 직업이 숙명처럼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 숙명을 거부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28살의 인희를 보면서 ‘이상한 사람들’로 손가락질을 하는 몹쓸 짓은 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