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했던(?)APEC 기념 불꽃쇼-
한 며칠 컨디션이 아주 좋지 않았다. 어깨랑 오른 쪽 팔이 결려 반듯하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아팠기 때문이다. 워드 칠 일은 태산 같이 많은 데 팔은 마음대로 쓸 수도 없고 목을 가눌 수 없으니 책도 제대로 읽을 수도 없고.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둘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수업이 늦을 새라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가는데 황령산 터널 입구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사고가 났나. 밀릴 시간이 아닌데 왜이렇게 차가 밀리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기사아저씨께서 “벌써부터 밀리네. 불꽃 놀이 할려면 아직 멀었는데.”그때서야 오늘 APEC 기념 불꽃쇼를 한다는 날이라는 게 생각이 났다.
조금 있으니 학생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선생님 오늘 수업 하지요? 오늘 좀 일찍 마쳐 주면 안됩니꺼.”, 또 조금 있으니 또 전화가 왔다. 뒷 타임 수업할 아이 어머니다.“샘 오늘 수업 안하고 다른 날 보강 해 주시면 안될까요? ” 제 정신이었다면(?) 미리 수업을 조절해 줬을 텐데...
그래서 한 타임만 일찍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세상에 황령산 터널을 돌아 경성대 쪽으로 빠지는데 1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30분이나 걸려 빠져 나왔다. 거리는 아주 주자장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경성대 앞 대로로 나오니 헉! 광안리 쪽으로 사람들이 새까맣게 몰려가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올라오는데 광안리 쪽으로 가는 차선에 선 차들이 거의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광안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 불꽃 쇼 시작되는 시간 전에 도착하긴 할 것 같다만 굉장하다.
그것을 보니 애초 우리 집 2층에 올라가 불꽃을 봐야지 하던 마음이 갑자기 나부댄다. ‘나도 빨리 집에 가서 겨울잠바 챙겨입고 식구들하고 걸어갈까? 그냥 2층에서 볼까? 집에 옷 챙겨 전화를 할 까? 어쩔까?’ 망설이는 사이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니 식구들은 다 2층에서 보겠단다. 혼자 못가지. 광안대교가 반 정도 보이는 우리 집 뒷산에 올라갔다. 두툼한 겨울 잡바를 입고 모자를 둘러 쓰고. 8시 30분에 시작한다더니 10분이 지나도 안한다.
드디어 불꽃 놀이 시작, 15억씩이나 든 불꽃 쇼가 어떤지 한껏 기대를 하고 본다. 태극기 모양, 나비 모양, 알파벳, 행성, 오륜기 같은 예전에 보지 못했던 불꽃들이 터진다. 조금 지겹다. 슬슬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9시 30분 정도 마지막인 모양이다. 수백발의 불꽃이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광안 대교 밑으로 나이가라 폭표같은 것이 쏟아져 내린다. 광안대교 반 정도를 산이 가리고 있어 높이 올라와 터지지 않는 불꽃들을 못봤지만 그런대로 볼만하다. 아이들의 불꽃을 터뜨릴 때마다 탄성을 질러댄다. 이 아이들은 훗날 APEC을 떠올리면 이 불꽃 놀이를 떠올리지 않을 까 싶다.그러나 15억억 하며 잔뜩 기대했던 사람들은 오륙도 축제할 때 별 차이도 없구만 이러면서 내려간다. 아무튼 고생스럽긴 해도 광안리에서 불꽃 쇼를 봤던 사람들은 추억 바구니에 APEC과 함께 화려했던 불꽃 쇼도 담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