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vs 역사 -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
볼프강 헤를레스.클라우스-뤼디거 마이 지음, 배진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서점의 정문에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멋진 문장이 적혀 있다. 그렇다. 책은 인간의 지적활동의 산물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수없이 많은 책을 만들어왔다. 좋은 책을 쓰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대단했다. 별 볼 일 없는 책은 기억되지 않고 사라졌다. 위대한 책은 읽고 또 읽히며 시간의 세례를 통과했다. 그래서 고전으로 남았다. 책이 사람을 만들고 시대를 만들었다. 책은 역사와 함께 했다.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이라는 강렬한 부제를 달고 있는 볼프강 헤를레스(클라우스 뤼디거 마이 공저)의 <책 vs 역사>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50권의 고전을 소개한 책이다. 사후세계의 여행안내서인 <사자의 서>에서부터 J K 롤링의 <해리포터>까지 각 시대를 대변하는 여러 명저를 선정해 책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입체적으로 리뷰한다. 

   이 책의 강점은 천편일률적인 기존의 고전리뷰집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역사를 일반적인 구분법인 '고대-중세-근대-현대'의 네 시대로 나눈다. 각 시대가 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서설한 뒤 선정한 책들을 해설한다. 책 자체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각 책이 집필된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그 책이 끼친 영향에 대해 자상하게 서술한다. 각 장마다 틈틈히 들어선 사진과 참고자료는 저자의 서술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난잡하지 않은 교과서 형태의 인문서적을 만들어냈다.

   저자가 선정한 책들은 한결같이 인류의 역사를 빛내고 움직인 명저들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경전인 <성경>과 <코란>이 전면에 배치됐다. 수천년 간 동양사상의 뿌리가 된 공자의 <논어>를 수록해 동서양의 균형을 맞추었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로 철학적 담론을 소개했고 괴테의 불멸의 소설 <파우스트>를 놓치지 않았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는 경제학을, 왓슨과 크릭의 <DNA의 구조>에서는 자연과학을 논했다. 저자는 정치, 과학, 역사, 문화 등 전 영역의 고전들을 두루 아우르면서 독자를 당시 시대의 한복판으로 이끄는 힘있는 서술을 펼친다.

   이 책에 수록된 50권의 책 중에서는 내가 읽은 책도 있고 안 읽은 책도 있다. 또한 내가 훌륭한 책으로 인정하는 책도 있고 그렇지 않은 책도 있다. 예컨대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선과 악이 지닌 힘과 검증과정, 즉 권력과 인간성에 대한 위대한 이야기를 어마어마한 판타지에 녹인 불멸의 소설이다. 반면 마오쩌둥의 <마오쩌둥 어록>은 그릇된 경제정책으로 야기된 기근과 대규모 정치테러로 무려 7,000만 명의 사람을 희생시키는데 사용된 지옥의 교과서다. 중요한 건 이러한 책의 양면성이 결국 현재의 우리사회를 더욱 밝게 빛내는 지적 근거가 된다는 사실이다. 전자는 책 자체가 훌륭하기 때문에 명저인 것이고, 후자는 책은 쓰레기지만 그것을 통해 명징한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는 점에서 고전인 것이다.

   물론 이 책에 아쉬운 게 없지는 않다. 저자가 독일인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독일 고전이 많이 선정된 점과 인문·사상 분야의 책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점은 아쉽다. 문학의 비율이 현저히 낮은 점이 가장 아쉽다. 세계문학의 거대한 산맥이라 할 수 있는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빠졌다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 <죄와 벌>과 <전쟁과 평화>가 인류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만든 50권의 책에 포함되지 못할 작품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무너진 균형이 아쉽다.

   칼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마지막 태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상을 해석해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말이 다 옳았던 건 아니지만 그의 저 말 만큼은 진실이다. 그렇다. 지식은 반영과 해석을 넘어 변혁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참된 지식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가장 좋은 책은 세상을 변혁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책이다. 이 명징한 진실을 곱씹게 한 것만으로도 헤를레스의 <책 vs 역사>는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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