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자유주의자가 되었나
복거일 엮음 / FKI미디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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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자유주의자가 되었나>는 우리사회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는 자유주의자들(自由主義者, liberalist)의 고백집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주의는 당연 '경제적 자유주의(economic liberalism)'를 의미한다. 총 스물한 명의 지식인들이 참여했다. 소설가 복거일을 위시하여 <대한민국역사>의 저자 서울대 이영훈 교수,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을 번역한 김이석 박사, 전교조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명지대 조전혁 교수(전 국회의원) 등이 눈에 띈다. 공저자 대표는 복거일이 맡았다.

대부분 대학 교수로 구성된 공저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각기 다른 자유주의에 이른 배경과 원인이 소개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위 '진화적'으로 자유주의자가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회주의의 허구를 학문적으로 깨달은 후 자유주의로 전향한 사람도 있다. 또한 기독교와 자유주의의 유사성을 파헤치며 논증한 사람도 있다. 자유주의에 대한 가지각색의 에세이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자유주의의 숭고한 정신과 함께 마르크스주의로 대변되는 집단주의의 허구를 생생하게 경청할 수 있게 된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첫 장의 서울대 이영훈 교수 편이다. <수량경제로 다시 본 조선후기>를 위시하여 평소 그의 저서를 탐독하면서 녹록지 않은 내공을 갖춘 학자라는 인식을 견지해왔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해서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했는지는 나에게 자못 흥미로운 주제일 수밖에 없었다. 이 교수는 학자답게 실증적인 자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이탈했다. 그는 18~19세기 농민들의 계층별 동향을 분석하면서 농민층이 부농과 빈농으로 분열되는 게 아니라 표준적인 경작규모의 소농 계층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또한 양반가의 15~16세기 상속문서에 적힌 노비들의 수를 연구하면서 조선시대를 봉건사회로 규정해서는 곤란하다는 깨달음에 도착한다. 조선시대 경제사를 세밀한 실증으로 연구해가면서 그는 사적 유물론을 중심으로 한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뼈대를 완전히 부정하기에 이른다.

이 교수뿐만 아니라 각 공저자들은 각기 다른 학문적 입장에서 범사회주의를 비판하며 자유주의의 올곧은 가치를 설파한다. 미제스(Ludwig Mises), 하이에크(Friedrich Hayek), 프리드먼(Milton Friedman), 뷰캐넌(James Buchanan) 등 저명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이론과 사상도 각 편마다 몇 토막씩 간략히 소개된다. 디테일은 떨어지지만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학문적 입장을 가볍게 훑어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존재성은 충분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주의를 오해한다. 아마 자유주의의 밑바탕인 개인주의(個人主義, individualism)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利己主義, egoism)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유교권으로 속해 있던 한국과 중국, 그리고 메이지유신 이후 군사적 집단주의에 함몰된 일본 등의 동아시아 지역은 개별 인간에 대한 철학을 흡수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세계의 모든 문제를 '집단(공동체)'으로 묶어 사고하는 습관이 은연 중 몸에 배었다. 기독교 문화의 영향으로 개인주의를 자연스럽게 수용한 서구사회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다. 자유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류 보편의 가치이다. 밀(John S. Mill)이 주장했듯이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개인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이는 곧바로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로 구분되어 정의된다. 17~19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은 정치적·경제적 자유주의의 토대를 이룬 사건들이었다. 그리고 이 둘을 모두 포함해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라 명칭한다. 20세기가 되어 자유주의는 앞에 '진보', '질서', '신新' 등의 이름을 붙이며 그 형태와 의미를 변화시켜갔다.

21세기에 당도한 지금의 시점에서 자유주의를 정치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토론이 불가한 보편적 통념으로서 자유주의의 역사성 속에 선언적으로 녹아있다. 문제는 경제적 자유주의이다. 다시 말해서 '자유주의 = 경제적 자유주의'라는 공식이 자연스럽게 자유주의 논의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프리드먼이 강조했듯이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역사적으로 정치적·경제적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에서만 가능했다. 물론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무조건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아닌 곳에서는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 역사적으로 그런 전례가 없다. 즉 정치적 자유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으로서 자본주의가 놓여 있는 것이다.

'새 정치'를 주장하며 신당을 창당한 모세력은 자신들의 이념을 '진보적 자유주의'로 명명했다. 그들이 '진보적'이라는 용어를 어떤 의도로 사용했는지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19세기말 밀을 중심으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신자유주의 1세대로서의 '진보적 자유주의(progressive liberalism = 사회적 자유주의, social liberalsim)'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아 보인다. 본래 진보주의와 자유주의는 양립 부자연 관계다. 역사적으로 용어의 혼선이 있다. 본래 진보주의(progressivism)라는 말은 정치학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진보적 자유주의가 20세기 들어 서구사회에 많이 보급되면서 기존의 'liberalism'의 개념은 'progressivism'과 혼용됐다. 그 결과 요즘에는 아예 진보를 '리버럴(liberals)'로 부르고 있다. 즉 'liberals'의 의미 속에 함의된 '보수'와 '진보'의 성질이 혼용되면서 복잡성을 띠어왔다. 그래서 이와 구별하기 위한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용어 전환의 역사성을 전제한다면 고전적 의미에서의 자유주의자들은 모두 자유지상주의자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단언컨대 나는(도) 자유주의자다. 철학적이고 체질적으로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를 싫어한다. 특히 사회주의의 원뿌리인 마르크스주의(Marxism)는 과히 증오하는 수준이다. 숭고한 개인의 개별성(individuality)을 어줍잖은 평등의 논리로 재단하여 결국 집합주의(集合主義, collectivism)로 귀결시키고야 마는 사회주의적 논리와 사상은 치를 떨 정도로 거리감을 둔다. 인간의 본성은 자유와 이기심이다. 역사의 진정한 주체는 자유를 본성으로 하는 개별 인간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이를 먹어갈수록, 현실의 문제에 치열하게 복무할수록 이는 점점 더 확연해진다.

20세기 세계사를 유심히 탐구하다보면 '사회 역할의 강조'와 '개인 자유의 보장'은 정확히 반비례로 등가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회(국가)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는 개입주의자들은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의 유혹을 벗어던지지 못한다. 사회공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이성이 사물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인식론을 기반으로 한다. 이를 플라톤과 데카르트 식으로 환원하면 '이상주의(理想主義, idealism)'와 '설계주의(constructivism)', 그리고 '합리주의(合理主義, rationalism)'가 구조론적으로 병합된 세계다. 이러한 병합구조는 칼 포퍼(Karl Popper)가 말한 바와 같이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으로 사회의 전체주의적 기작을 생산해낸다. 현대사는 이를 명징히 증명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항시 천국으로 포장되어 있다.

인간의 이성은 위대한 힘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없이 무기력하고 무능력하며 불완전하다. 인간 이성에 대한 교만은 밀부터 뷰캐넌까지 모든 자유주의자들이 외쳤던 경고였다. 그렇기에 개입주의의 교주라고 할 수 있는 케인즈(John Maynard Keynes)조차도 '하아비가의 전제'를 가정했던 게 아닌가. 나는 인간의 인식 능력을 매우 불완전하게 본 하이에크의 입장에 동의한다. 또한 "인간의 인식은 의식의 주관적 산물이므로 인간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는 칸트(Immanuel Kant)의 인식론을 적극 지지한다. 인식을 '형식(능력)'과 '내용(재료)'으로 구분하여 경험과 이성을 동시에 강조했던 칸트 철학이 현대 고도자본주의 사회의 복잡성을 설명하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직관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라는 칸트의 명언은 경험에 바탕을 두지 않은 사유는 내용이 없어 공허하고 지성의 능동적 활동에 따른 개념이 없는 경험은 틀과 형식이 없어 맹목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인간 이성의 긍정과 부정을 양립시키며 경험을 통한 끊임없는 인식 능력의 발전을 주장했던 칸트의 견해는 충분히 새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는 물론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재하는 개별 시민 모두에게 말이다.

자유주의를 이러한 칸트주의(Kantianism)의 입장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유주의자라고 해서 자본주의의 폐해로 꼽히는 빈부 격차, 환경파괴, 독과점, 공공재 부족 등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궁핍한 자에게는 정부가 따뜻한 최소한의 생활권을 보장해줘야 하고, 기업거래에 있어 명확한 법치를 세워 독과점을 규제해야 하며, 균형을 잃고 파괴되는 환경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각론에 있어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과 사회를 보는 기본 철학이다. 자유주의냐 사회주의냐는 결국 철학의 문제이다. 자유주의자로서 내 철학은 분명하다. 내 밥은 내가 해먹는 것이고, 자식 우유는 부모가 주는 것이며, 노후는 본인이 책임지는 것이다. 그게 안 될 때에 비로소 사회가 돌보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현실의 각론에 치열하게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자유주의 철학에 대한 내 신념은 더욱 확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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