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기소하다
빈센트 불리오시 지음, 홍민경.최지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있을까. 미국과 한국을 위시한 대통령제 국가들은 대통령 재임 중에는 형사상 소추가 불가하도록 헌법에 명시해놓고 있다. 직무와 관련하여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을 때 의회 제적의 2/3 이상의 가결을 통해서 탄핵할 수 있을 뿐이다. 기소는 현직에서 물러난 후에야 가능하다. 대통령 개인의 불법 때문에 국가와 국민을 위한 거대 리더십이 요동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헌법 장치인 셈이다.

  엄연히 헌법과 법률상으로 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한 전직 검사는 '대통령을 기소하다'라는 도발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106건의 재판에서 105건을 승소하고, 이중 21건의 살인 사건에서는 단 한 번도 패소하지 않은 전직 검사 빈센트 불리오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유일무이한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현직 대통령 조지 부시를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저서 『대통령을 기소하다』는 부시 대통령을 기소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증거를 논설한 책이다.

  책을 읽기 전, 자못 도발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감정에 치우치거나 비논리적 외침이 주를 이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논리적이고 설득력있게 부시 대통령의 살인죄 기소 이유를 독자에게 설명한다. 왜 부시를 기소해야 하며, 증거는 무엇이고, 법률적 가능성은 어떠한지를 구체적이고 생동감있게 언급한다. 또한 열정적이고 흥미있게 논설하고 있어 지루하지도 않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논지 전달로 충분한 공감이 형성된다.

  저자가 부시 대통령을 살인죄로 형사 고발할 수밖에 없게 만든 사건은 응당 이라크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인해 4,000명이 넘는 미국 젊은이들이 사망했으며, 이라크 민간인 도합 10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저자는 과정과 결과에서 모두 철저하게 실패한 이라크 전쟁의 원흉으로 부시를 지목했다. 또한 잘못이 없는 한 국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수없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장본인으로서 부시를 법정에 세우겠다는 논리다. 탄탄한 논리와 생생한 증거들, 그리고 법률적 근거들을 열거하며 독자를 설득한다.

  현직 대통령의 기소 여부를 떠나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특별하다. 애초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위해 내세운 명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후세인이 WMD(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이는 당장이라도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후세인이 9·11 테러에 연루되었다고 한 것이다. 결국 이 두 가지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후세인과 이라크는 WMD를 보유하지 않았고, 9·11 테러와는 전혀 상관 없음은 이미 명명백백해졌다. 요컨대 초강대국 미국이 자국에 아무런 잘못도 가하지 않은 주권국가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다.

  저자는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을 위해 부시와 그의 참모들이 온갖 거짓과 기만으로 국민을 속였음을 증명한다. 수없이 많은 거짓말, 양심의 부재, 도덕과 인권의 추락, 언론과 지식사회의 역할 부재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미국 사회의 오류와 문제점 또한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부시에게 8년 동안이나 국가 운영을 맡긴 미국민들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비단 저자의 논설을 떠나서라도 지난 8년 동안 미국의 추락은 자명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전 영역에서 헤게모니를 이뤄온 미국의 존재감은 점점 초라해지고 있다. 부시의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외교 노선은 많은 국가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국 경제를 초토화시키며 세계 경제를 위축시키고 있다. 무엇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다. 모두 부시가 재임한 이후에 벌어졌다.

  미국 만큼 빛과 어두움이 대극적으로 공존하는 국가는 드물다.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이면에는 세계 제일의 양극화 국가라는 오명이 존재한다. 가장 부유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4,000만 명의 국민이 빈곤층으로 존재하는 국가. 국민 중 약 5,000만 명이 의료보험 하나 없이 살아가는 국가. 아무 명분없는 전쟁으로 1조 달러를 쏟아붓고 4,000명의 젊은이가 개죽음을 당하는 국가. CEO의 임금과 직원의 평균임금 비율이 531대 1의 엽기적 경영구조를 갖고 있는 국가. 그게 바로 미국이다.

  저자가 주장한 도발적 문제제기는 그 실현성 여부를 떠나 지난 8년 간의 부시 행정부의 무능과 독단이 미국과 세계를 얼마나 불행하게 했는지, 더 나아가 작금의 미국사회가 얼마나 잘못 운행되고 있는지를 꼬집고 자책했다는 점에서 응당 유의미하다. 어쩌면 저자와 같이 의식있고 용기있는 지성인이 아직도 목소리를 내고 있기에 미국엔 아직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

  부시 정권의 실패와 미국의 추락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부시 정부의 정책과 기조를 그대로 따라하는 정부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모토는 시장주의와 미국우방주의다. 하지만 이는 매우 시대착오적이다. 이미 미국발 경제위기를 통해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모순과 폐해는 만천하에 입증됐다. 또한 자국의 경제조차 컨트롤하지 못하는 미국의 무능은 이미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다. 부시 정권의 실패를 교훈삼아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명박 대통령과 위정자들은 고심하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오바마가 미국의 제 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백악관의 주인이 바뀐다. 미국인들은 압도적인 표차로 건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부시는 분명 무능했고 독선적이었다. 한 국가의 지도자는 그대로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는 말이 있다. 미국민들의 수준이 어떠한지 지난 8년 동안 잘 봐왔다. 하지만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 또한 국민의 힘이자 책임이다. 오바마를 선택한 미국민들의 수준은 다시 한 번 검증받게 될 것이다. 이는  한국 또한 마찬가지다. 앞으로 남은 4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민들의 수준이 어떻게 평가받을지 자못 궁금하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