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도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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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스물 아홉의 나이가 되었다. 이제 내년이면 서른의 나이가 된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았건만 아직도 삶과 인간에 대한 학습은 부족하다 못해 가난하기만 하다. 인생의 수많은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가지만 <사랑>이라는 절대적 선한 가치에 대한 이해와 학습이 심히 부족하여 삶을 둥개고 있다. 사랑이라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사랑한다, 는 말이 남발되고 있다. 사랑해, 정말 사랑해, 영원히 사랑해, 우리 사랑 변치 말자, 등. 인류는 사랑한다는 말의 오고감 속에서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언제나 말과 행동이 일치할 수 없듯이 사랑한다는 말과 진정으로 사랑하는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왜 많은 사람들은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별 것도 아닌 일에 돌아서고 헤어지며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걸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다른 사랑을 만들어가는 걸까?  

  사랑을 입증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기독교의 절대진리인 성경에서는 <사랑의 수고>라는 말이 나온다. 신약성서에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기독교의 3대 메세지가 수식해주는 뒷단어가 등장하는 데 믿음은 역사요, 소망은 인내이며, 사랑은 수고이다. 수고라는 말은 <희생>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정리하자면 사랑하는 곳에 희생이 있다는 것이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죽은 사랑이요, 강한 사랑은 반드시 희생의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그것이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말이다. 

  사랑을 입증할 수 있는 또 다른 요소를 꼽으라면 <믿음>이 아닐까 싶다. 흔들리지 않는 강한 사랑의 배경에는 믿음이라는 강력한 내포적 가치가 들어있다. 갖은 역경과 회오리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사랑을 지키며 결혼에 골인한 이들의 공통점은 강한 믿음으로 중무장하고 있다는 공통됨이 있다. 강한 믿음이 강한 사랑을 만들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만든다는 공식은 분명 삶의 법칙이라 할 수 있으리라. 이러한 <희생>과 <믿음>이 사랑을 구성하는 두 가지 유전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인호의 2002년 출간작 『몽유도원도』는 이러한 희생과 믿음의 절대적 가치가 진정한 사랑의 힘을 완성한다는 내 개인적 소신에 동의하는 소설이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도미설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시킨 이 소설은 도미와 아랑, 두 부부의 깊고 강렬하고 진실된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백제의 왕이었던 여경(개로왕)은 꿈에서 본 환상의 여인을 현실속에서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어렵사리 꿈 속의 여인과 똑같은 미모의 여인을 찾았지만 이미 남편이 있는 유부녀의 몸. 하지만 여경은 군주라는 자신의 신분적 위치를 이용하여 잔인하고 처절하게 아랑을 갖기 위한 몸부림을 실행한다. 아랑의 남편 도미의 두 눈을 뽑아가면서까지 아랑을 갖고자 하는 여경의 지나친 욕망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인과응보의 세상사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처절한 죽음으로 귀결된다. 확인된 것은 도미와 아랑 사이의 사랑의 힘.

  허황된 욕망과 인생의 본질, 그리고 진실된 사랑과 믿음과 희생이라는 삶의 절대적 가치를 고대설화를 기반으로 하여 재탄생시킨 이 소설은 어둡지만 아름답고 짧지만 강렬하다.
  믿음이 굳지 않으면 큰 사랑이 없으며 죽음을 띄어넘는 정절이 없이는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는 법이다. 세월이 흘러가서 말대의 세월이 온다고 하여도 이 진리를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p75> 

  도미와 아랑의 사랑. 그런 사랑을 하고픈 마음이 간절하다면 너무 감상적인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랑한다는 말이 소음 수준으로 범람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비록 설화이긴하지만 도미와 아랑이 보여준 절대 믿음과 절대 희생으로 무장된 강한 사랑의 웅숭깊음은 깊이 음미할 만한 아름다움의 극치다.  

 

  낮잠의 짧은 꿈속에서 만났던 몽유의 여인, 그 꿈속에서 만났던 천상의 여인을 현실 세계 속에서 찾으려 했던 대왕 여경. 그러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비극의 주인공 개로왕, 그를 한갓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웃을 수 있을 것인가.
  어차피 우리들의 인생이란 한갓 꿈속에서 본 도원경을 현실에서 찾기 위해서 헤매는 몽유병의 꿈놀이가 아닐 것인가.
<소설의 마지막, p144,145>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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