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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어디서나 직장인의 비애는 여전하다. 주중에는 진이 빠지게 일하고 주말인 불금(불타는 금요일)에는 미친듯이 돈과 기력을 탕진한다. 그러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미미한 긴장감이 안개처럼 들어선다. (일하지 않을 권리)<데이비드 프레인, 2017>, 이 책은 일하지 않을 권리를 상상해보자고 권한다. 


   토요일에 만났던 나의 두 아들에게도 결국은 삶의 철학이나 그들이 스스로 사는 공간에서 느꼈던 인간적 감성에 대한 대화 보다는 어느 누구는 취직 했다더라식의 일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오늘날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성격조차 ‘스펙’이 된 시대가 되었다. 


   내친김에 (게으름에 대한 찬양)<버트런드 러셀, 2005>을  읽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일 중심주의’ 가 이념과 종교를 떠나 일종의 진리 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에서 (강진일기)<손학규,2016> 의 ‘저녁이 있는 삶’ 을 찾아 볼 때이다.



    지난 5월 9일 대선 전에 지인과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있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투표’ 를 할 것이냐고 물었다.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것은 종교적 이유였다. 그가 말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다 옮기에는 부족하지만 그중에서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있었다.


   세계적으로 가난과 굶주림은 부유한 국가나 자본주의 부유층의 탐욕으로 인한 분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 했다. 어디서 자주 들어 봄직한 얘기였다. 지난 정부들의 경제민주화 정책인 대기업과 중소기의 상생으로 발생한 낙수효과는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정부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청문회장 모두 발언은 인상적이었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분배할 것이가)<발렌틴 투른.슈테판 크로이츠베르거, 2017> 의 서두에 ‘사람들은 미래에도 먹을 수 있을까’ 로 시작한다, 이 책은 인구과잉이 먹을거리 부족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라고 역설한다. 저자들이 꼽는 식량 위기의 주범은 ‘육류의 소비 증가에 따른 단작의 끝없는 확대’ 라고 주장한다. 급증하는 동물 사료 수요는 하나의 작물만을 지나치게 재배하는 단작을 초래한다고 역설한다.


   사람에게 육식은 필수다. 영양학적으로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해야하는 상황에서 특히 소고기에서 얻는 필수아미노산이 더 많은 실정이다. 만약 78여 억명 지구인의 식량이 제대로 분배된다면 빈곤적 굵주림은 극복되리라 생각한다. 



  토요일 아침은 늦잠자기에 좋은 시간대이다. 물론 계획에 따라 일상 생활의 공간을 떠나 산과 들에서 심신의 피로를 힐링하기에 좋은 시간대이다. 하지만 건축공사장이나 감정노동자들이 집약된 백화점 등의 근로자에게는  쉽게 여유를 갖기에는 어려운 토요일 아침이기도 하다. 


   특히 먹고 살기 위해 많은 노동시간을 투자하는 현대인은 잠이 부족하다. 또한 노환 등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꽤 있다. (잠1.2)<베르나를 베르베르, 2016) 은 잠을 소재로 한 픽션과 과학적 사실을 적절히 직조 해 나가는 소설적 재미가 솔솔한  책이다.


   저자인 <베르나르 베르베르> 가 (제3인류) 이후 4년 만에 내 놓은 신작 소설로 사람은 평생 3분의 1을 잠자면서 12분의 1은 꿈꾸는데 보낸다고 한다. 그 꿈이 소재가 글로서 소설 읽기의 재미를 만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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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차산업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대통령의 연설문 또는 신문의 기고문에 애용된다. 무슨 의미를 지닌 말인지를 설명하거나 이해를 돋는 책들이 쏟아지거나 개인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역설하는 강연도 있다. 이 용어는 2016년 세계 경제 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에서 언급되었으며, 정보 통신 기술(ICT) 기반의 새로운 산업 시대를 대표하는 용어가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은 기하급수적 변화를 일으킨다. 즉 융합의 혁명이다. 인간과 기계의 융합,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융합, 공학적인 것과 생물학적인 것과 융합(합성생물학), 조직과 비조직의 융합이 그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이 4가지 각기 다른 융합이 또 서로 융합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헉헉거리고 있다.  4차는 물리학과 디지털 그리고 생물학 사이에 놓인 경계를 허무는 기술적 융합이다.  미래의 융합시대는 우리의 현실에 와 있으나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통섭이라는 학문적 개념이 생활속에서 융합의 결과를 선보이는 것이다. 

 

   * 미래창조과학블로그

 

   ’제4차산업혁명’과 나는 어떤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이 또한 불평등을 생산하는 새로운 줄세우기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한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새 기술을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새 아이폰을 물신숭배할 이유도 없다. 이런 시대일수록 직접 만나서 상대방의 눈빛을 보며 대화하며 신뢰를 쌓아야 차별화된다.

 

 

   한국의 제4차산업혁명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준비는 이해되지만 영미권에서 쓰는 표현은 아닌 듯하다. 그들은 구호적인 단계를 넘어서 선도 산업으로 자리메김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계획하고 있는 새 산업지도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4차 산업혁명은 자연스럽게 접목될 것으로 본다. '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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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사상가들의 책이 그렇듯이 생활인으로서 비전문가로서 책을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루소의 고백론은 연애 소설 같다. 세계의 3대 고백론으로도 유명하다.

 

 


   시골에서 살았던 국민학교 방학때면 사촌 누나 집에 가끔 갔었는데 사촌들은 나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한 질의 전집이 뒷방에 있었다. 루소의 전집이었다. 그 책에 대한 호기심은 지금도 살아 있다. 다시 루소의 전집을 읽는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일 것이다 . 지금 그때의  사촌 누이는 환갑이 지났다.


 


   나는 결혼 후에도 루소의 사진을 영문 사전의 겉표지에 붙여 놓고 매일 매일 보았던 때가 있었다. 한 인물을 그렇게 좋아 해 본적은 없다. 왜 그리 좋아 했을까? 루소의 고백록을 읽다보면 미남이면서도 지적인 루소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아마 그의 연애감성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으라 생각된다. 청소년기를 혼자 살았던 기억에 대한 컴플렉스 또는 그에 대한 보상심리가 내 속에 살아 있는 듯하다. 그 압축된 기억 때문에 언젠가 빛을 볼 것이라는 희망도 가지고 있다. 자연주의자이며 산책을 즐겼던 루소에게!  2017.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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