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프리카인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애영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5월
평점 :
나는“대중의 반역”을 읽은 후로 얼마 간 책을 잡지 못했다. 잡다한 일상들 사이로 게으름이 도졌다. 하루 이틀 피해지더니 읽어야 한다는 마음만 커졌다. 하루 중 나를 관조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오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마음은 거미줄처럼 가늘고 희미해 손을 놓을 것 같다.
내 마음에 이끼가 끼여 잘 보이지 않는다. 마음의 거울을 잘 닦아야 내 자신이 잘 보인다. 잘 보여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 수 있다. 책이든 뭐든 오감으로 받아들인 감각을 재구성하여 실토하는 작업은 비지땀을 흘리며 언덕을 오르는 기분이다. 산등선에 오르면 탈력이 붙어 정상을 향해 술술 걸어간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작가들은 보통 기억으로 글을 쓴다. 문학의 언어는 기억을 통해 뇌 전체의 감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르 클레지오”는 말한다. 작가는 상상으로 글을 쓴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들이 상상하고 말하는 것 역시 넓은 의미의 기억인 경우가 많다. 직접 체험한 것만이 아니라 책이나 예술, 문화 전반의 기억 일부를 새롭게 선보인다.
집단의 기억 일부를 표현해 주는 동시에 그 기억에 일부를 보태주는 존재가 작가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8년 노벨문학 수상 작가의“아프리카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아버지 삶을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복원하며 따라가 보는 일인칭 서술자의 자선적 소설이다. 십여전 전에 작고한 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되밟으면서 그의 삶과 가치를 재구성하는 전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작가의 문학세계의 형성 배경과 근원을 더듬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작가에게 아프리카가 어떤 존재인지, 그의 상상세계가 어떻게 이 대륙에 뿌리내리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1920년대부터 40년대 사이 아버지가 직접 찍은 오백여 장이 넘는 아프리카 사진들은 아프리카에서 이십여 년 이상의 긴세월을 보낸 아버지의 삶의 기록인 동시에 아프리카에 대한 그의 희망과 열정, 고독과 비탄 그리고 절망을 표현한 일기였다.
작가는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며 그의 삶의 순간들을 채웠을 생각과 느낌들을 자기 자신의 상상세계의 리얼리티 속에서 되살린다. 이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친밀한 시선과 작가의 것이 서로 닮아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의 어린 시절 아프리카 “사바나”를 향해 질주해가던 자신의 분방하고 위험스럽기까지 한 자유를 회고하는 그 서정적이고 감동적인 어조로, 뜨거운 햇살 아래 광할한 아프리카 고원지대를 횡단하는 아버지의 모험을 그린다.
아버지가 빅토리아만에 첫발을 디디면서 찍은 사진을 묘사할 때, 작가 자신이 그 사진속에 들어가 아버지의 위치에 서 있는 듯한 착각마저 갖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가 남긴 낡은 사진과 그것을 찍을 때 느꼈을 감격에 대한 아들의 묘사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아들이 아버지와 일체되는 것은 작가 자신의 상상세계속이며, 자서전과 전기의 성격이 이 책속에 어우러질 수 있는 비밀은 아프리카가 그들에게 주었던 혜택이었다.
2차대전 종전 직후인 1948년, 8살의 “클레지오”는 어머니와 함께 아프리카 서부 “오고자”라는 마을로 떠난다. 식민정부하의 의무장교로 일하던 아버지와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나치 치하의 프랑스에서 인자한 여성들의 품 속에 보호되던 작가 자신의 삶은 거침없는 햇살과 한밤의 폭풍우, 끝없는 황갈색 “사바나”의 풍경앞에, 폭력적이기까지 한 혼란을 경험한다.
성인이 된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다른 세상속으로, 라틴 아메리카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삶의 방식, 세계와 예술에 대한 생각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는 방식, 걷고 먹고 잠자고 사랑하는 방식, 그리고 꿈꾸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총체적인 변화를 겪었고, 그 과정을 통해 아버지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파나마로의 여행은 아버지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 덕택으로, 작가는 오랜 아프리카 생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일상용품들에서 사소한 생활습관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의 비와 바람과 태양의 흔적들을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하는 아버지야말로 진정한 “아프리카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프리카는 아버지를 입양한 마음의 고향이었다. 마찬가지로 작가 자신의 상상세계가 끊임없이 도달하려 하는 곳은 다름 아닌 “아프리카”, 작가의 “유년기의추억”, 작가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들이 뿌리내린 원천이 되었다.
작가가 아프리카에 대해 느끼는 끈은 단순히 향수라는 표현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감정도 아니다. 이프리카인들처럼, “르 클레지오”는 진정한 고향은 자신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 자신이 수태된 고장이라고 믿는다. 작가는 자신이 잉태되던 그 순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 속에서 끓어오르던 아프리카의 에너지를 자신의 몸 속에서 직관적으로 감지한다. 작가는 육체에 기입된 물질적 감각적 기억들이 자신의 내면에서 일깨우는 신화와 전설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소설적 글쓰기의 기반으로 삼았다. 작가의 글쓰기 여정은 아프리카와 함께, 아프리카를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아프리카는 작가의 상상세계를 잉태하고 젖을 준 상상의 어머니이며 그의 상상세계와 혼연일체가 되어 그 자신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듯 보인다. 작가에게 아프리카는 육체와 정신의 진정한 자유를 알게 해주었지만 또한 작가의 아버지를 앗아간 곳이기도 하다. “르 클레지오”는 노년의 아버지를, 망가져가는 아프리카의 모습을 완고한 침묵으로 버텄던 당신의 삶을, 그 고독과 비탄을 이해하게 된다. 60대 중반이 된 작가의 그 이해는, 기아와 질병의 아프리카 현실과 관계된 자신의 오랜 꿈을 기만하지 않겠다는 다짐같은 것이었다.
작가는 불어로 글을 쓴다는 것 외에 프랑스인라는 흔적은 거의 찾기 어렵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작품들 모두 소위 주변부 국가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들이며, 그래서 그는 불어의 작가이지만 프랑스 작가는 아니라는 말이 있다. 08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