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애영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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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대중의 반역”을 읽은 후로 얼마 간 책을 잡지 못했다. 잡다한 일상들 사이로 게으름이 도졌다. 하루 이틀 피해지더니 읽어야 한다는 마음만 커졌다. 하루 중 나를 관조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오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마음은 거미줄처럼 가늘고 희미해 손을 놓을 것 같다.


  내 마음에 이끼가 끼여 잘 보이지 않는다. 마음의 거울을 잘 닦아야 내 자신이 잘 보인다. 잘 보여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 수 있다. 책이든 뭐든 오감으로 받아들인 감각을 재구성하여 실토하는 작업은 비지땀을 흘리며 언덕을 오르는 기분이다. 산등선에 오르면 탈력이 붙어 정상을 향해 술술 걸어간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작가들은 보통 기억으로 글을 쓴다. 문학의 언어는 기억을 통해 뇌 전체의 감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르 클레지오”는 말한다. 작가는 상상으로 글을 쓴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들이 상상하고 말하는 것 역시 넓은 의미의 기억인 경우가 많다. 직접 체험한 것만이 아니라 책이나 예술, 문화 전반의 기억 일부를 새롭게 선보인다.


  집단의 기억 일부를 표현해 주는 동시에 그 기억에 일부를 보태주는 존재가 작가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8년 노벨문학 수상 작가의“아프리카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아버지 삶을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복원하며 따라가 보는 일인칭 서술자의 자선적 소설이다. 십여전 전에 작고한 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되밟으면서 그의 삶과 가치를 재구성하는 전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작가의 문학세계의 형성 배경과 근원을 더듬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작가에게 아프리카가 어떤 존재인지, 그의 상상세계가 어떻게 이 대륙에 뿌리내리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1920년대부터 40년대 사이 아버지가 직접 찍은 오백여 장이 넘는 아프리카 사진들은 아프리카에서 이십여 년 이상의 긴세월을 보낸 아버지의 삶의 기록인 동시에 아프리카에 대한 그의 희망과 열정, 고독과 비탄 그리고 절망을 표현한 일기였다.


  작가는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며 그의 삶의 순간들을 채웠을 생각과 느낌들을 자기 자신의 상상세계의 리얼리티 속에서 되살린다. 이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친밀한 시선과 작가의 것이 서로 닮아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의 어린 시절 아프리카 “사바나”를 향해 질주해가던 자신의 분방하고 위험스럽기까지 한 자유를 회고하는 그 서정적이고 감동적인 어조로, 뜨거운 햇살 아래 광할한 아프리카 고원지대를 횡단하는 아버지의 모험을 그린다.


  아버지가 빅토리아만에 첫발을 디디면서 찍은 사진을 묘사할 때, 작가 자신이 그 사진속에 들어가 아버지의 위치에 서 있는 듯한 착각마저 갖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가 남긴 낡은 사진과 그것을 찍을 때 느꼈을 감격에 대한 아들의 묘사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아들이 아버지와 일체되는 것은 작가 자신의 상상세계속이며, 자서전과 전기의 성격이 이 책속에 어우러질 수 있는 비밀은 아프리카가 그들에게 주었던 혜택이었다.


  2차대전 종전 직후인 1948년, 8살의 “클레지오”는 어머니와 함께 아프리카 서부 “오고자”라는 마을로 떠난다. 식민정부하의 의무장교로 일하던 아버지와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나치 치하의 프랑스에서 인자한 여성들의 품 속에 보호되던 작가 자신의 삶은 거침없는 햇살과 한밤의 폭풍우, 끝없는 황갈색 “사바나”의 풍경앞에, 폭력적이기까지 한 혼란을 경험한다.


  성인이 된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다른 세상속으로, 라틴 아메리카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삶의 방식, 세계와 예술에 대한 생각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는 방식, 걷고 먹고 잠자고 사랑하는 방식, 그리고 꿈꾸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총체적인 변화를 겪었고, 그 과정을 통해 아버지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파나마로의 여행은 아버지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 덕택으로, 작가는 오랜 아프리카 생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일상용품들에서 사소한 생활습관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의 비와 바람과 태양의 흔적들을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하는 아버지야말로 진정한 “아프리카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프리카는 아버지를 입양한 마음의 고향이었다. 마찬가지로 작가 자신의 상상세계가 끊임없이 도달하려 하는 곳은 다름 아닌 “아프리카”, 작가의 “유년기의추억”, 작가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들이 뿌리내린 원천이 되었다.


  작가가 아프리카에 대해 느끼는 끈은 단순히 향수라는 표현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감정도 아니다. 이프리카인들처럼, “르 클레지오”는 진정한 고향은 자신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 자신이 수태된 고장이라고 믿는다. 작가는 자신이 잉태되던 그 순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 속에서 끓어오르던 아프리카의 에너지를 자신의 몸 속에서 직관적으로 감지한다. 작가는 육체에 기입된 물질적 감각적 기억들이 자신의 내면에서 일깨우는 신화와 전설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소설적 글쓰기의 기반으로 삼았다. 작가의 글쓰기 여정은 아프리카와 함께, 아프리카를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아프리카는 작가의 상상세계를 잉태하고 젖을 준 상상의 어머니이며 그의 상상세계와 혼연일체가 되어 그 자신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듯 보인다. 작가에게 아프리카는 육체와 정신의 진정한 자유를 알게 해주었지만 또한 작가의 아버지를 앗아간 곳이기도 하다. “르 클레지오”는 노년의 아버지를, 망가져가는 아프리카의 모습을 완고한 침묵으로 버텄던 당신의 삶을, 그 고독과 비탄을 이해하게 된다. 60대 중반이 된 작가의 그 이해는, 기아와 질병의 아프리카 현실과 관계된 자신의 오랜 꿈을 기만하지 않겠다는 다짐같은 것이었다.


  작가는 불어로 글을 쓴다는  외에 프랑스인라는 흔적은 거의 찾기 어렵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작품들 모두 소위 주변부 국가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들이며그래서 그는 불어의 작가이지만 프랑스 작가는 아니라는 말이 있다. 0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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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평전
김학동 지음 / 새문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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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둑에 홀로 나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소월이 흐르는 강물을 한 없이 보고 있을 생각을 하면 그가 나 일까 싶어 진다. 소월이야 말로 나의 청춘기를 가장 잘 대변하기에 좋은 시인다.

 

  오늘은 우리가 살아갈 날의 첫날이기도 하다. 재즈 가수  '말로' 가 부르는 '개여울' 을 들어 본다. 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개여울' 은 1972년 수원대 교수 였던 '정미조' 씨의 학생시절 리메이크 버전이 제일 듣기 좋다. 그녀의 '비음' 이 주는 느낌은 소월을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소월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싶었다. 개여울은 1925년 '개벽'지에 발표되었다.

    소월의 비루했던 삶과 위대했던 정신의 초점화에 한정되어 있다. 소월은 평안북도 정주 사람이다. '홍경래의 난' 이 일어났던 곳이며 소월(1902~1934) 이외에도 이광수(1912-?), 김억(1896-?), 백석(1912-1995) 등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별과 같이 빛나는 소설가와 시인들의 고장이다.

   평북 정주의 지리적•공간적 특성은 혼종성있다. 봉건 지배 권력의 중심인 한양으로부터 밀려나 소외와 차별을 감내해야 했던 곳이었다. 그곳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 근대 문화와 교육시스템을 일찍 받아들여 근대 지식인과 민족지사들을 배출할 수 있었다. 소월은 전통과 근대가 교차되고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는 혼종의 시공간(정주)에서 살았던 경계인이었다.

   소월은 1909년에 공주 김씨 문중에서 세운 남산소학교에 입학하여 1917년에 오산학교 중학부에서 스승 김억을 만났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일본 유학을 중단, 귀국 후 4개월간 서울에 머문다. 다시 고향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다 폐업한 후 조부에게 얻은 돈을 밑천 삼아 고리대금업을 시작한다. 곧 실패한다.

 

   지병인 '저다병'(팔과 다리가 붓는 각기병)을 앓았다. 그는 '내면적 인간의 비극적 운명' 을 떠안았던 시인이었다. 부유한 집안의 촉망 받은 장손으로 가족의 관심과 기대 속에 근대 교육을 받았다. 소월은 고향 밖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끊임없이 열망했다.

 

   오늘날 소월 시의 수용이 시집 '진달래꽃'(1925, 초판이 3억원)에 편중된 것은 독서 대중의 오해가 생겨낸 또 다른 이유이다. 소월 시의 화자들은 대체로 상실감과 비애에 몰입되어 있다. 근원의 세계, 본질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무상하기 짝이 없는 현상과 감각의 세계, 그 허깨비 같은 것 현실 속에서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것,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실존적 상황의 부조리함 앞에서 소월의 화자들은 눈물에 젖은 채 비통해 한다. 

   지구 상에 '한' 없는 민족이 어디 있겠는가? '한'은 인간의 실존의식, 즉 존재의 모순과 비극적 상황 인식에서 생겨난 역설적 감정 이다. '한'이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고유한 경험에서만 생겨나지 않는다. 1950년대의 '고석규'는 소월의 '한'은 근대가 애써 망각하고 부정했던 '자연 속의 서정'을 발견한 '눈'이었다고 했다. 즉 소월의 '님'은 자연이다. 그 자연은 웅장하고 거창한 것들이 아니다. 우리네 일상속에 늘 함께 있는 산과 들 그리고 강과 바다로 우리 조상이 대대로 하루 하루를 살아 왔고 후손이 살아 갈 삶의 공간이다.

 

   소월이 마주쳤던 식민지 근대의 현실과 인간 실존의 비극성은 오늘날 우리 자신의 모습과 그리 멀지 않다. 어쩌면 소월이 당면했던 마음의 짐들이 여전히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 삶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해 대결과 저항이 필요하다고 인깨워 준다. 소월은 세계의 시인으로 다시 소환되어야 한다. 그것이 소월의 진실이다.  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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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에게 고함
김영구 지음 / 다솜출판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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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는 혼자 놀 줄 알아야 한다. 술 한 잔을 마셔도 그렇다. 그의 수하나 기쁨조를 데리고 즐기다 탈난다. 리더는 절대고독에 익숙해야 한다. 진시왕이 중국의 천하통일을 이루어 낸 것은 좋은 인재가 많아서였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좋은 인재에게 지혜를 구했다. 진시왕은 인제들에게 너그러웠다. 하지만 우주에서 보면 지구의 유일한 건축물인 만리장성 축조때는 백성의 원성을 샀다. 


  개인이 조직을 이기기는 힘들다. 대세는 조직과 조직의 싸움과 경쟁이다. 폐쇄사회나 열린사회던 괘씸죄에 걸리면 숙청바람처럼 토사구팽 된다. 넘치러 할때 물러나야 한다. 때를 아는 자의 지혜다.


  지금 나라 빚이 450조원을 윗 돌고 있다. 앞으로 10녀간은 부자 나라나 가난한 나라나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나가야 할 때이다. 현재 공공기관에 대한 민영화 의도도 부채에 대한 정부 해법 중 하나다. 저자는 국제법학자로서 대한민국의 정체성 제고 측면에서 그의 주장을 펴며 건전한 보수 학자임을 자평한다. 이런 자신감은 2선으로 물러난 학자나 언론인 등에서 뚜렸히 나타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 : 우리는누구인가?, 자유민주주의에 관한 반성, 독도영유권 문제와 우리 국민의 기질적 약점, 북한 핵무장 기도를 저지하기 위해서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냐?, 북한 정권에 대한 인식의 혼돈, 인식의 혼돈을 누리는 자와 방치하는 자, 혼돈과 미망에서 깨어나기 위한 제언 등이 그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의 잘 못을 실랄히 비판한다. 특히 우리 헌법이 명시한 '자유민주주의'에 반한 종북 좌파의 몰인식이나 비전문성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해군사관학교 법학 명예교수이다. 현재 부산 '려해 연구소'를 운영하며 관련된 저작과 자문 등을 하고 있다.


  인상 깊었던 내용 중에는 북한 인권법 제정을 옹호하며 소위 좌빨이라는 분들의 논리적 허구성에 대한 학자적 비판을 서슴치 않고 있다. 진보학자들에게 논란의 여지를 두고 있다. 또한 조선 말에 이여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대한 민국 임시 정부, 대한 민국 건국에 이르기까지의 법적 정통성을 논한다. 


  일본이 주장하는 한•일늑약은 불법으로 일본군이 군사적 강점기 일뿐 일본 영토화는 아니였음을 강조한다. 현재 분쟁화를 시도하고 있는 독도 영유권에 대한 박정희부터 이명박 정권까지 어떻게 대처하며 지금에 이르렀는가를 얘기한다. 일본이 국제 재판소에 이 문제를 끌고 가려는 의도를 였볼 수 있다. 미국의 독립전쟁사를 언급한 부분에서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투쟁을 역설한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독립투사를 비롯하여 김일성 같은 인물에게 공산주의가 스며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열거 한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연속성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노예 흑인 인권에 대한 미국 지식인(존 퀸시 애담스 변호사)의 자유민주주의 정의 실현을 높이 평가하며 우리 국민의 기질적 문제를 비판과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북한 정권에 대한 우리의 인식 혼돈에 대한 우려도 언급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법적 혼돈과 모순, 종북 좌파들의 생각, 북한 동포에 대한 대한민국의 윤리적 책무 등이다. 미국의 '롬니'는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미국이 중국과 함께 북한의 치안 유지와 인도주의적 문제를 처리하겠다'고 말을 인용하며 협의해야 할 당사국은 중국이 아니고 대한민국 정부여야만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김일성 그리고 김정일에 이여 김정은의 탄탄히 권력세습이 진행되고 있을 북한 지도부의 경제적 축적과 동시 권력의 균열이 진행 밖에 없는 실정이다. 러시아 푸틴 정권이 세계적인 러시아 석유 재벌들을 몰아내는 과정을 봐도 현재의 북한의 권력 재편에 대한 패턴을 읽을 있다. 조직을 벗어난 개인은 초라 뿐이다. 조직은 생존 본성을 응축시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에 골몰해 있다. 1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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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박지원 참 우리 고전 1
박종채 지음 / 돌베개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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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범죄와의 전쟁' 중에서 “자, 쭈욱 한 잔하자! 하자~.', 세관의 밀수단속팀이 저녁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일련사태에 대해 누가 총대를 메느냐를 놓고 입씨름하는 장면이다. 부양가족이 적은 최익현이(최민식 분) 암묵적으로 옷을 벗기로 결정된다. 


  조직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명령체계이다. 망년회에서 잔을 들어 올리며 한 마디씩 외치는 건배사처럼 최익현에게 주어진 운명은 조직의 밀어내기다. 개인적으로 건배사에 대한 울렁증이 있는터라, '쭈욱' 한 잔 하는 것처럼 묵시적인 표현이 내게는 편하지만 개인 PR시대에 사는 술자리 문화도 작은 권력의 각축장이다. 사람사는 이치다.


  연암 박지원의 풍채는 그의 손자인 박주수가 그린 초상화에서도 나타나듯이 덩치가 큰 대인이었다. 이 책은 연암의 둘째 아들이 쓴 박지원의 전기이다.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계절은 봄도 아니요, 여름도 아니요, 더구나 가을 남자도 아니다. 술 한 잔하고 비틀비틀 걸어가는 겨울의 모퉁이다. 연암은 임금(정조)의 권력 가까이에 가지 않았다. 도승지인 홍국영의 사정권 밖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임금은 연암에게 음직을 내리곧했었다. 연암의 박씨 가계는 신라에서 비롯된 나주의 반남현(백제 반내부리)을 본관으로 삼아 반남 박씨가 되었다. 나주 반남 고분일대로 내 고향이기도 하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독일에 괴테가, 중국에 소동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 중세기 우리나라의 최고의 대문호이다. 근대문학까지 포함시키더라도 연암을 능가하는 문호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는 도저한 학문과 높은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글에는 심중한 사상이 담겨 있다. 연암의 아들 박종채는 아버지의 위대한 문학가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인간적 면모와 함께 목민관 시절의 흥미로운 일화들을 들려준다. 18세기 영•정조 시대의 지성사와 사회사에 대한 풍부하고 생동감 넘치는 보고서 성격을 갖고 있다. 책의 원제목은 '과정록'이다. 자식이 아버지의 언행과 가르침을 기록한 글로서 조선시대 전기문학의 금자탑이다.


  저자는 문고 16권, 열하일기 24권, 과농소초 15권 등 총 55권의 책이 아직 간행되지 못한 채 고본으로 집에 간직되어 있어 걱정했었다. 기축년(1830) 가을, 효명세자(순조 아들)가 저자의 집에 둔 글들을 읽고 다음 해에 돌아가신다. 그후 반환된 책들을 점검하면서 아들은 소리내어 울었다 한다. 세자는 매권마다 책갈피하여 두었는데, 대개 옛일을 근거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책을 강구한 대목 중 자신의 생각과 부합되는 게 있으면 갈피해둔 것이다. 


  연암은 과거시험에 합격한 적이 없고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신 적도 없지만, 임금이 알아주시는 인물이었다. 이는 특별한 임금의 은총이다. 지금도 지도자가 휴가중에 읽은 책은 인구에 회자되기도 한다. 어떤 정치인이 농성 중에 읽었다는 책도 눈길을 끈다. 사회의 지도층 인물들이 읽는 책은 중간 여과없는 보고서로서 권력화된다.


  부인에게 존경 받는 남편, 남편에게 존경 받는 아내, 아들딸에게 존경 받는 부모, 모두는 쉽지 않은 언행 일치의 결과이다 번은 연암이 양양의 원님으로 부임하였으나 아전들이 곡식을 훔치고 빼돌리는 탓에 관가의 창고에는 곡식이 톨도 없었다


  연암은 아전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한다. '고을 원이 일이란 군정과 전세와 환곡이거늘 창고가 비어 있고서야 고을 원이라 할까?', 연암은 마침내 공무 일체 그만 두고 조그만 방에 거처하면서 아전들이 빼돌린 곡식을 회수 하면 고을의 수령이라 없다며 자처한다. 직무를 수행하지 않으면서 녹봉을 받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하며, 무노동 무임금 원칙으로 일관한다. 결국 관가의 곡식 창고는 원래대로 채워진다. 연암의 지혜와 삶의 철학을 느낄 있는 대목이다


  방학이 시작되고, 갑오년 시작을 앞둔 겨울에 '열하일기' 읽어 본다면 좋은 중국 여행이 될듯 싶다. 1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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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 철학 논고 - 개정판 비트겐슈타인 선집 1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이영철 옮김 / 책세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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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은 초식성으로 4~6월이 번식기이고 수태한 후 335일 만에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어렸을 때 집에서 말 두 마리를 키웠다. 남들이 황소를 키워 논 일을 할때 우리집에서는 벼섬을 나르는 말을 키웠다. 나에게 말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 


  첫 번째, 말 때문에 죽을 뻔 했다. 부친이 정미소를 운영하셨기 때문에 면소재지에서 경유를 운반해 공장을 가동했다. 하루는 채찍으로 말의 엉덩이를 치는 바람에 말이 튀었다. 영화 벤허에서 전차가 달리듯이 말고삐로 말을 세울 수가 없었다. 가속도가 붙은 수레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었다. 


  두 번째, 여름이면 소나무에 말고삐를 묶어 두었다. 국민학교 1학년 토요일 오후에 재미삼아 말꼬리를 잡고 장난을 치다 말의 뒷발에 체여 공중에 붕떴다 떨어져 기절했었다. 그때 내 배꼽에 말발굽의 찐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한 참에야 사라 졌던 기억이 있다. 


  세 번째, 식구들이 추수를 하고 집에 왔는데 그늘에 있던 말이 풀여 앞산으로 달아난 일이 있었다.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이 말을 찾으러 가고 없었다. 초저녁 잠에 깬 나는 집에 혼자였다. 식구들이 간 어두운 산길로 홀로 걸어갔다. 나는 그때의 어둠을 극복했었다. 내 옷처럼 어둠과 친해졌다. 대학 졸업 후 홀로 야간 산행을 즐겼다. 특히 장마철 토요일 저녁 야간 산행은 편했다. 


  네 번째, 겨울이면 작두로 썰어 둔 벼짚을 말구유에 넣어 주곤했었는데 그때마다 말이 눕지 못하게 천정에 멜빵을 메달아 두었다. 어린 내게도 안타까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스님의 '장좌불와' 수행같았다. 말의 '산통'을 예방할 목적이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그의 생전에는 전기 사상을 대표하는 '논리-철학 논고'(1921)만이 철학서로서 유일하게 출판되었다. 


  현대 철학의 고전이 된 이 책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통하여 세계와 사고의 한계들을 해명하고, 우리의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드러내고자 했다. 책은 명제의 논리적 구조와 논리적 추론의 본성에 관한 고찰들로부터 시작하여, 인식론, 자연 과학 및 심리학의 기초, 수학의 본성, 철학의 본성과 역할, 윤리-미학의 지위 등에 대한 논의를 거쳐, 마침내 '신비스러운 것', 또는 '말할 수 없는 것' 의 존재에 대한 사상에까지 이르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베를린 공대에 등록했으며 이 시절부터 철학 노트를 작성했다. 영국의 맨체스터 대학으로 유학했다. 여기서 연을 이용한 항공학 실험들을 하다 비행기 제트엔진과 프로펠러 제작을 연구하여 특허를 취득했다. 나름대로 철학적 구상을 가지고 케임브리지에 러셀의 강의를 청강하며 그와 논리-철학적인 문제들을 토론하기 시작한다. 러셀은 방학 동안 글을 써서 제출해 볼 것을 요구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천재성을 확신한 러셀은 그에게 철학자의 길을 가도록 권한다. 


  모든 철학은 언어 비판이라고 보는 시각에서 현대 철학의 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철학의 문제들은 우리의 언어 논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올바른 철학은 언어의 논리에 대한 명료한 이해를 통해, 말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드러낸다. 금강석처럼 작고 단단하고 투명하면서도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많은 것이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는, 공학도 출신 천재 철학자의 기적과도 같은 작품이다. 


  책의 분량도 짧고 문장도 매우 간명하게 되어 있지만, 매우 난해한 철학서이다. 이책을 이해하려면,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가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첫째로 우리가 언어를 사용할 우리의 마음속에선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심리학). 둘째로 사고와 낱말 또는 문장 등의 사이에 어떤 관계(인식론). 셋째로 거짓보다는 진리를 전하기 위해 문장들을 사용하는 (특수 과학). 넷째로 하나의 사실이 다른 사실의 상징이 되려는 어떤 관계가 성립 문제(논리학) 등이 언어의 문제들이다. 올해는 지자체 선거가 있는 많은 해이기도 하다. (언어) 충돌이 예상된다. 1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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