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평전 (보급판)
송삼현 외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마키아벨리* '군주론'에는 '특권층의 지지는 서민층의 지지보다 약하다'는 말이 있다. 2013년은 동북아의 새 지도자들의 치열한 외교전쟁이 시작되는 해이기도 하다. 일본의 우경화 집권 세력인 '아베'총리, 진보 대 보수의 극명한 대선 결과인 박근혜 당선인, 중국의 제5세대 지도자 '시진핑', 러시아 '푸틴'의 대통령직 복귀와 미국 '오바마'의 연임 그리고 세습정치의 제3세인 '김정은' 등장이 그것이다.


 유일하게 북한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중국의 황태자인 '시진핑'은 박근혜 당선인과는 한 살차이로 같은 세대이다. 이 두 지도자의 지난 연말 행보는 '가난한 서민'의 곁을 찾는 일이었다. '시진핑'은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해발 1500m '허베이성(하북성) 바오딩(보정)' 산촌을 찾아 부엌 아궁이 옆 시멘트 침상에 걸터앉아 농민들과 고구마를 나눠 먹으며 빈곤 대책을 얘기했다. '박근혜' 당선인도 서울 신창동의 '쪽방촌'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직접 만들어 직접 전달했다. 국민은 새 지도자의 '위민 정치'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시진핑*에게 그의 아버지가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그의 아버지 '시중쉰'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팔로(8대 원로)' 중 한 명이다. 그는 문화혁명 당시 고초를 겪었지만 1978년 복권돼 국무원 부총리까지 올랐고, 2002년 사망 때까지 아들 '시진핑'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박 당선인의 부친도 정치인이었다는 점에서 같다. 또한 '시진핑'의 아버지인 '시중쉰'은 1913년생으로 김일성보다 한 살 아래로 '중•북 동맹' 의식을 갖고 있었다. 상당수 중국 문제 전문가는 북한을 보는 '시진핑'의 시각이 자신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후진타오' 국가 주석이 이끈 4세대 지도부가 올 3월까지 모두 은퇴한다. 시 총서기가 집권하는 10년은 중국이 미국과 함께 실질적인 G2(주요 2개국) 시대를 열게 된다. 그러나 중국의 성장 과정에서 누적된 빈부•지역 간 격차, 사회적 갈등의 폭발 등 새 난제들이 적잖다. 우리에게도 사회적 통합을 위한 경제민주화와 복지 정책의 실현 그리고 남북 문제와 경제협력 등 숙제가 많다.


 1954년, 시진핑이 만으로 1살이 되던 해에 중화인민공화국 최초의 헌법이 통과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시중쉰은 국무원 비서장을 지냈다. 어렸을  때부터 시진핑은 자신의 아버지가 고위 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아버지의 혁명사에 관하여는 소년기에 비로소 알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13살 때 혁명에 투신하였고, 15살 때는 학생운동에 참가하여 국민당 당국으로부터 감금을 당하였으며, 옥중에서 중국공산당 당원이 되었다. 


 중국공산당은 민주형 또는 경쟁형 정당이 아니기 때문에 후계자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치적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에 대한 충성도와 각 파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즉 당내 인화단결을 유지•보호할 수 있는지를 먼저 고려해 선택되어진다. '시진핑'이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변두리 지역의 기층 에서부터 출발하여 모든 것을 극복하고 중국공산당의 황태자가 되기까지의 드라마틱한 역정속에 중국공산당의 운용방식이 드러나 있다. 


 그가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은 문무를 겸비한 진시황이나 한무제, 당태종과 송태조, 또는 일대 영웅 칭기즈칸이 아니라 유방, 유수, 유비, 송강 등 그 자신은 뛰어난 재능과 원대한 지략이 없으나 인화단결에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삶에 대한 그의 태도나 정치철학을 였볼 수 있다. 20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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