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전고운 외 지음 / 유선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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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오랜만에 읽는다. 소설가, 영화감독, 에세이스트, 영화배우, 작가, 가수 등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이들의 공통분모는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지만 쓰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려주는 에세이라 다양한 저자들의 글을 만나본 시간이다.

읽다 보면 저마다 글의 분위기도 다르다. 소설가의 기나긴 시간이 얼마나 크고 깊은 작업인지 다른 책에서도 읽었기에 이 책에서 만나는 소설가의 글에도 이해하면서 읽게 된다. 임대형 영화감독의 집필 공간 이야기에 대한 글에서는 웃기도 하면서 다른 글에서는 진지함도 충분히 전달되어서 바짝 다가서서 읽은 글이기도 하다. 모순성을 인지하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전달하는 글을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화감독의 영화까지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다. 살아남은 사람들과 비열함을 선택한다는 것의 관련성까지도 생각해 보게 한 문장을 마주한 책이기도 하다. 무심하지 않고 진지하게 글에 힘을 주고 있어서 좋았던 글들이 많았던 임대형 감독님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어느 정도 비열해지기를 선택한 사람들. 선배 감독님 말 224

엘리트주의를 혐오하는 동시에 몰개성적인 다수를 혐오. 금욕적인 청교도 정신을 거부하면서 가톨릭 사제를 매력적으로 여긴다. 무신론자이자 기독교인이고, 남성이자 페미니스트다... 모순성에 대하여 십분 공감하는 자이고,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241

타인의 삶의 영역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것은 '침범'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도, 상처를 줄 수고 있다... 자신의 흠, 치부까지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용감해져야 한다. 224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존 레논과 케네디를 암살한 자들. 자기 자신의 작품에 대한 혐오 223

박정민 배우의 글도 기억에 남는다. 모순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내용과 돈을 미리 받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과 어머니가 공부하지 말라고 한 대화 등 자기만의 색이 분명한 글을 읽는 시간이기도 했다. 편협한 시각에 대한 자조적인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던 글과 함께 쓰고 싶지 않은 이유들을 열거하는 작가의 글도 인상적이었다. 당돌하다는 것이 가지는 힘이 무엇인지 안다. 예전만큼 당돌하지 않다는 자신을 돌아보는 글에는 많은 의미들이 함축된다. 내면이 가지고 있는 목소리를 듣지만 어떠한 방식으로도 표출하지 못하는 자신을 이 책의 글을 통해서 전하는 글도 마주하게 된다.

혼자... 삐죽이 적어놓은 글들이 훨씬 더 좋다... 나조차도 두려워 들춰보기 어려운 그 글들이 더 좋다... 모순이고 타협이다. 역시, 돈을 미리 받지 말았어야 했다. 127

하지 마. 공부하지 마. 공부하기만 해. 아주 공부만 했다 봐.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140

예전만큼 당돌하지 않다. 잃을 것이 더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글이 재미가 없다. 이렇게 개성을 잃다 보면... 130

쓰기 지옥과 일기 지옥을 떠올리게 하고, 너무 쓰고 싶은 상태가 어떠한 상태인지도 전해주는 이랑 작가의 글, 인생에 대한 태도와 시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한은형 소설가의 글, 창작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백세희 작가의 글, 쓰는 작업과 쓰는 직업이 가지는 힘겨움을 전해주는 이다혜 기자의 글, 서점이 주었던 위로의 공간이 더는 느낄 수 없다는 착잡한 심정을 전하는 이석원 작가의 글, 상업적인 것을 요하는 세상 속에서 사소한 것을 보며 생각하며 쓰고 싶다고 전하는 전고운 영화감독의 글. 모두 자기들의 자리에서 글을 쓰는 일을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느끼면서 읽었던 에세이이다. 고군분투하며 멋진 글을 쓰고 싶고, 멋진 작품을 향하는 열망들이 전해지는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에세이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많은 분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알게 되고 이들의 작품세계를 소개받고 된 책이다. 영화들, 책들 모두 관심을 가져볼 생각이다. 더불어 이 책의 글들도 떠올리면서 말이다.

상업적이지 않다고들 말한다. 45

사소한 순간을 누군가는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이 나를 외롭지 않게 했다. 46

신문... 거대 담론들 속에도... 다양성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목격하는 것 46

사소한 것을 목격하고 느끼고 생각할 때, 쓰고 싶다... 누구나 찰나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살 듯이 나도 그러할 뿐. 46

안정적인 삶에서 무슨 글이 나오겠는가... 그 글이 무슨 힘을 가질 수 있을까. 39

젊음은 짧지. 너무 짧고, 너무 쉽게 가버리지. 35

글쓰기는 내게 치유와 도피의 방이었다. 54

더는 이 공간에서 전에 느끼던 것들을 느낄 수는 없는 신세가 되었다. 이제 나는 이 공간에서 위로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63

쓰지 않은 글을 쓴 글보다 사랑하기는 쉽다. 쓰지 않은 글은 아직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92

타자 속도가 머리를 따라가지 못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은 기분으로... 애를 쓰며 써 내려간다. 108

인생에 대한 태도도 시선도 내가 갖추고 싶은 것 중에 갖춘 건 여전히 별로 없었는데 쓰기 시작했다. 198

내게 창작은 무리하기와 마무리하기다. 190

창작은 전부 아니면 전무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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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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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신작이 12년 만에 출간된 시집이다. 301편의 시들이 담긴 책표지가 이쁜 양장본 시집이다. 시인의 사진과 시를 접하였던 날들이 떠오른다. 사진에 담긴 피사체와 빛, 어둠의 음영들은 압도적이었다. 시는 사진과 어우러져서 오랜 날들을 기억 속에 자리 잡게 했었다. 그렇게 시인을 알게 되었고 시인의 시집을 펼치는 시간까지도 함께 하고 있다.

시인이며 사진작가이며 혁명가라고 소개하는 작가소개글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작가에 대해 만난 시간이었다. <노동의 새벽>은 금서였다는 사실과 더불어 100만 부가 발간되었고 '얼굴 없는 시인'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군부독재 정권과 사형 구형, 무기수, 감옥 독방, 침묵 정전. 7년 6개월 만에 석방. 민주화운동 유공자라는 사실과 국가보상금을 거부한 사실도 알게 된다. 그래서일까, 시들은 그 시간들과 공존하고 있고, 시어들과 함께 살아있는 역사이며 시인의 인생이기도 하다. 하나의 시를 만나고 다음 시를 만나는데 묵직한 것이 누르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묵직함을 이 시집의 시들을 통해서 마주하게 한다. 그렇게 시인의 날들, 시인의 사유들을 마주하게 한다.

어머니가 당부하셨다

...

가난과 불운이 네 눈빛을 흐리게 하지 말고라

...

내면의 빛과 소박한 기품을

스스로 가꾸지 않으면 나 어찌 되겠는가

70

시인의 가족을 알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시를 통해서 만나게 된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기억에 남는 시집이었다. 학교에 보내면서 자식에게 당부하는 말들, 감옥에서 석방된 후 나날들의 자식의 고통을 지켜보았을 날들이 떠오르는 시이기도 하다. 기도를 하며, 신을 부르며 보낸 날들. 시인의 시에서도 신을 향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 광야의 날들과 시련들을 시인의 목소리에서 그려보지 않을 수가 없다.

저들의 잘못된 질문에 무시를

저들의 의도된 질문에 경멸을

언론의 보도와 꼰대의 개탄에 주먹을

48

이 시집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녹록지 않았던 수많은 날들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다. 그 상처와 고통과 아픔들은 영화를 통해서, 문학을 통해서, 시집을 통해서, 사진 전시회를 통해서 그 너머의 시간들을 관찰하게 된다. 시인의 시는 어렵지가 않다. 쉽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우리들 곁에 가까이에서 목소리를 전한다. 그 목소리를 듣는 자, 그 목소리의 울림을 느끼는 자, 삶에 투영이 되는 자가 되어 경건하게 삶을 정진할 수 있는 힘을 얻는 시들을 담고 있는 시를 만나보게 한다.

코로나 시대를 지금도 우리는 보내고 있다. 방역 지침을 향한 시인의 언행이 등장하는 시도 만나게 된다. 시인의 선택은 시인의 것이다. 권력과 명령이 가지는 힘이 무엇인지 아는 시인이다. 자유가 가지는 힘도 무엇인지 아는 시인이다. 마스크와 백신이 자유의 의지에 의해 선택되고 방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야외 마스크는 시민들의 선택이 되었고 자유의지가 반영되고 있다. 어느 곳에서도 시민들은 마스크를 착용하며 다니는 모습만 보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고,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국민임을 지금도 보게 된다. 권력과 명령, 규제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하며 행동하는 자유의지를 보여주는 국민임을 떠올리는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이기도 하다.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을 이 시집을 통해서도 떠올려보게 된 시간이었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보이는 것이지요

121

시인의 몸이 묘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문신이 새겨진 날들과 순간, 그 시간들의 의미도 떠올려보게 한다. 이 시대의 교육과정도 떠올려보게 하는 시도 만난다. 직접 아이 수학을 가르쳤기에 교과과정의 수학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어서 교육과정이 바뀌는 날들을 늘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고 어린 학부모들은 그 움직임을 깜박이는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너무 많이 배우는 시대이다. 우리 시대에도 엄청난 양을 기억하면서 대학입시를 보냈는데 지금 아이들은 이해를 넘어서는 수준을 배우고, 지문을 읽어야 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얼마나 견디어낼까? 휘어지는 수준일까? 배우는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시도 만나게 된다. "그만 배우기와 생각하기. 삶을 살기. 나를 살기." 이것이다. 진정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신호등이 되어준다. 그 선택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 선택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부모들도 있다. 다양한 교육이 선택받고 있다. 진정한 어른이 무엇인지 관찰해보는 사유의 장소가 된 시집이었다. 301편의 시들을 만나보자. 양장본이며 가름끈이 두 줄이라 읽는데 편했던 시집이다.

내 몸은 하나의 묘비

101. <내 몸의 문신>

우린 지금

너무 많이 배우고

너무 적게 생각한다

그만 배우기, 생각하기

...

삶을 살기, 나를 살기

117 <너무 많아 너무 적다>

접속하면, 접수당한다

소통하면, 관통당한다

94 <접속과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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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채소 생활 - 집에서도 쑥쑥 크는 향긋한 채소들, 기르는 법부터 먹는 법까지
이윤선 지음 / 지콜론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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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텃밭에서 허브와 꽃 채소, 잎채소, 뿌리채소, 열매채소를 키울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도서이다. 비료도 필요하고, 바람도 필요하며, 햇빛, 물, 온도까지도 세심하게 확인하고 관찰해야지 키울 수 있는 것이 식물이다. 저마다 성질도 다르고 성장하는 환경도 다르다 보니 키우는 채소 종류의 성장환경을 알아두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그래서 만나본 책이다.

씨앗을 고르는 법, 모종을 구입해서 키우다가 분갈이를 해야 하는 시기, 지지대를 세우는 방법까지도 책은 친절하게 알려준다. 다양한 종류들이 소개되는 채소 키우는 법과 수확한 채소를 요리하는 법도 채소들마다 소개되고 있다. 더불어 저자의 이야기도 켜켜이 쌓여있는 책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농촌에서 작물을 키운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홀로 그렇게 시작한 농촌 생활의 고충과 주거지에서 일어난 일들까지도 책에서 소개되고 있다. 이야기 하나씩, 채소 키우는 법 하나씩, 수확한 채소 요리법들이 빽빽하게 수확되는 책이기도 하다.

초록 식물을 키우는 식물집사이다보니 저마다 위치하는 장소, 햇빛 양, 물의 주기, 영양분, 바람 등 전문가가 된다. 채소도 마찬가지다. 키워보고자 하는 채소 종류와 키우는 법이 담긴 책이다. 키워서 요리할 수 있는 요리법도 소개되고 있다. 좋아하는 채소, 꽃들, 허브, 열매채소 등이 소개되고 있어서 관심 있게 만난 책이다.

물을 주는 시기, 집을 비울 때 물주는 방법도 소개되고 있다. 1주일에서 2주일은 여행을 떠나도 걱정 없는 방법도 기억에 남는 방법이었다. 퇴비 만드는 방법도 소개된다. 어렵지 않게 소개되고 tip도 내용들 중에서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알아두면 좋은 정보들을 만난 책이기도 하다. 책 사이즈는 크지 않고 작지도 않다. 채소 작물을 키워보려고 마음먹고 있는 분들이나 키우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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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색 인생그림책 14
리사 아이사토 지음, 김지은 옮김 / 길벗어린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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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라는 경계선은 한없이 무너지는 듯하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도 있지만 성인들을 위한, 모두를 위한 그림책이 제법 많이 눈에 들어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즐겁게 한다. 그림책 코너가 모두를 위하는 세상이라 너무 마음에 드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책도 그러한 그림책이다. 시원시원한 책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든다. 큼지막한 책 디자인과 간결한 문장이 가지는 힘 있는 목소리도 너무 좋다.

첫 장을 펼치면 아름다운 노년의 부부의 모습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아름다운 노년.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난 이들 부부의 모습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편견들과 선입견들을 모두 사라지게 한다. 그래서 이 작가가 좋고, 이 그림들이 좋았다. 빛나는 노년의 시간들과 순간들. 삶의 긴 장면들과 노고와 행복들이 켜켜이 쌓인 이 부부를 그려보게 한다.

'아이의 삶' 한 장씩 넘기면서 그림들과 문장이 던지는 '~기억하나요?' 질문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잊고 있었던 그 시절들을 떠올려보게 한다. 골목길의 아이들 목소리, 나이라는 경계선도 없이 함께 어우러져서 놀았던 골목길 놀이들. 이 책에서도 작가가 그려내는 아이의 삶을 마주해본다.

우리는 저녁밥을 먹으러 집에 갈 생각이 없던 무당벌레들...

때때로 세상은 불공평했고

그래서 우리는 싸워야 했어요

'소년의 삶' 훌쩍 뛰어넘는 그 시절이 떠오른다. 갑자기 바뀐 모든 것들은 미성숙하지만 보고, 느끼며, 치열한 시간들을 보낸 시절이니까요. 달라졌고, 어떤 날은 힘껏 반항하고 싶었다는 글귀도 많이 공감하는 그림이며, 글이다. 그림의 주인공처럼 힘껏 외쳐보지는 못했지만 날아오를 거라고, 부조리를 끊임없이 기억에 담았던 시절이기도 하다. 작디작은 날개들을 키워가는 시절이기도 하다. 그 그림과 문장도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세상의 폭력들을 담고, 이겨냈고, 목격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간 시절을 떠올리면서 한 장씩 만나는 책이다.

때때로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으로 보였어요.

당신이 당신의 날개로 훨훨 날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기의 삶'의 그림들도 꽤 매력적이다. 작가의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호탕하게 웃고, 공감하면서 넘기는 그림들과 문장들. 때로는 혼자만 혼동을 시간을 보내는 듯하기도 하며, 불안이 엄습하기도 하는 시간들이기도 하다. 확신을 가지기에는 이른 날들이다. 뭔가를 찾는 날들이기도 하다. 이 책은 고정관념을 넘어선다. 자유롭고, 경계도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활짝 열린 다양한 사랑들을 그림으로도 전하는 책이기도 하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도 홀로 견디는 삶이기도 하다. 다양한 삶들이 펼쳐지는 인생 그림책.

어쩌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아니면 영원히 함께할 수도 있겠죠.

'부모의 삶'은 한 장씩 넘기면서 많이 웃게 한 페이지들이다. 부모의 길은 모두가 처음이기에 좌충우돌하고 자신의 새로운 면을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긴 여정을 잘 마무리하고 나니 아쉽기도 하고 그립기도 한 시절이기도 하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건 사절이며 지금이 너무나도 좋은 날들이기도 하다. 부모의 길은 그런 것이다. 이 그림책을 통해서 다양한 시절들을 회상해 볼 수 있었다. 매력이 넘치는 작가의 그림들과 문장들은 충분한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어른의 삶'과 '기나긴 삶'은 지금의 삶이며 확실하지 않는 그날들의 이야기이다. 어느 시점까지 우리들의 삶이 이어져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림과 문장들을 넘겨가면서 노년의 삶도 풍성하게 그려보게 한 시간이 된다. 그림들은 유쾌하며, 웃음을 가득히 선물해 준다. 문장들은 가볍지도 않다. 하나씩 만나며 만나갈수록 사고를 더욱 확장시켜주는 유익한 글들이었다. 멋진 작가를 알게 된 시간이었다. 멋진 선물과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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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말 혹은 침묵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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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생각에, 글쓰기는... 위험했다. 그만두지 못하겠니, 그러다 큰일 난다! 78

아니 에르노 작품은 처음이 아니다. 여러 작품들을 읽었기에 이 소설도 그녀의 작품이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면서 읽은 시간들로 떠오른다. 빼곡하게 이어지는 긴 문장들의 호흡, 멈추게 하는 문장, 다시 읽게 하는 글에서 문맥의 흐름을 잃지 않고자 여러 번 멈추기도 한 작품이다. 그녀의 여러 작품들이 가진 바탕 그림만큼이나 이 작품도 연장선에서 만나게 한다. 유년기의 환경, 부모의 직업, 부모와 집안사람들의 대화들을 되짚어보게 된다. 화자가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배워가는 학업과 교우들의 집안 환경까지도 자신의 환경과 비교된다. 부모의 직업과 경험한 한계들이 그들의 말과 침묵을 통해서 투영된다. 그것들을 경험하며 느끼며 생각한 그녀의 중학교 졸업과 친구와 함께 한 많은 날들과 대화들도 작품에서 만나게 된다. 서민의 삶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 외할머니의 죽음을 대하는 가족들의 모습과 대화들도 밀접하게 기록된다. 여유를 부리지도 못하고, 빼곡한 경제 상황들이 짐작되는 상황에서 그녀가 배우고 깨우치고 사고하는 것들은 확장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 간극을 채우지도 못하고 채울 수도 없는 자신의 집안 환경과 부모들의 모습은 그녀를 더욱 말 없는 아이로 보여주게 된다. 아이는 토론하며 작품을 읽고 함께 대화할 수 상대를 찾는다. 하지만 부모님도 그러한 대상이 되지 못한다. 우연히 알게 된 남자아이와도 대화는 이어지지 못함을 깨닫는다.

내가 노동자 계급에 속한다는 사실... 그 속에 늘 잠겨 지냈음에도 그 어떤 특별한 점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43

이모가 묻길, 안, 혓바닥이 달아났니?... 달아난 건 오히려 그들의 혓바닥, 그들의 언어이다... 그들이 하는 말과 들어맞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181

'소외'의 대상이 된 사람들. 계급구조들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자식의 눈에 보이는 부모의 모습들과 목소리, 싸움과 경찰의 출동을 짐작하는 상황들, 텔레비전의 소리와 신문, 엄마가 읽는 소설, 유급휴가가 주어지지만 즐기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와 이유들이 화자를 통해서 그려지는 소설이다. 부자의 삶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사고의 한계점을 화자의 시선에서도 예리하게, 명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시대의 격동기를 떠올리게 한다. 다른 작품에서도 언급되는 이념들이 이 작품에서도 대학생을 통해서도 짚어진다. 좌파, 우파,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자신이 속한 계급을 이해하면서 더욱 또렷하게 깨닫는 여러 사실들도 작품은 놓치지 않는다. 이모를 통해서, 어머니를 통해서, 아버지를 통해서 전해지는 목소리를 따라가게 한다. 착잡한 상황들이 빼곡하게 채워진다. 화자의 갈급함과 내적 마찰들을 주시하게 한다. 심지어 성에 대해서도 어머니는 대화해 주지 않는다. 소설에서 펼쳐지는 것과는 상이하고 다른 현실의 상황들에 홀로 경험하면서 깨닫는 것들도 작품은 놓치지 않고 전달한다. 세상의 잣대에 남성과 여성이 가지는 경계선을 화자가 만나는 남성들을 통해서도 놓치지 않고 상기하게 한다. 뭔가를 찾아다니는 자는 늘 남자애들이라 유쾌하지 않았다고 화자는 떠올린다. 이 화자는 여성이며, 뭔가를 찾아다니는 자로서 실패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면서 눈물로 깨우치기도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금기하며, 제한을 제시하는 사회 속에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가지는 의문들과 호기심이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장바구니가 터지게 물건을 담는다든가, 아름다운 침실이라든가, 유급 휴가 같은 것, 여전히 그런 것은 행복 같지 않았다. 자유가 무엇을 닮았는지 모르지만 진정한 자유를 머릿속에 그려 보기란 어려웠다. 120

자신들의 삶이 실패한 줄도 모른 채 자동차를 타고 슈퍼마켓으로 향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 그런 사실을 아는 내가 그들 모두 보다... 커다란 행운 같았다. 121

<이방인>책을 읽은 화자가 느끼며 상기하는 것들은 작품 속에서도 자주 언급이 되기도 한다. 부모와 책에서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그 마음까지도 헤아려보지 않을수가 없다. 자신이 속한 계급을 인지하지 못했다가 어느 순간, 어느 사람과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서 깨닫게 되면서 보이는 것들과 상황들은 냉혹하기만 하다. 화자는 그러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만나고 싶었다. 그 깨달음을 준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도 냉정하게 되짚어보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남성을 향한 잣대와 여성을 향한 잣대는 얼마나 유연할까? 그에 대한 질문도 함께 내놓는 작품이기도 하다.

번역가의 글도 꼭 읽었으면 한다. 번역 작업의 뒷이야기와 갈등까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상깊게 읽었던 여러 작품들을 번역한 분이라 반가웠던 분이기도 하다. <동의>, <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등을 번역한 분이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사실 착취당하고 있고 불행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121

그들은 절대 그 누구에게든, 그 무엇이든, 요구하려고 든 적이 없다. 121

그들의 소외 탓에 불행한 사람은 나였다. 122

중학교... 일종의 지표 노릇을 한다. 그런데 부모와 함께 있으면 지표를 가질 수 없다... 난 울었고... 우니까 조금은 덜 미칠 것 같아서였다. 방금 읽은 책에 대해서 두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만 있었더라면. 41

저 가엾은 여자는 어그러짐 없는 조화도 믿는지 모른다... 지금의 그녀가 하는 말, 고수하는 원칙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그 이미지. 튀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 부자는 아니지만 반듯하게 살자. 그녀가 부유한 사람들에 대해 뭘 알고 있을까. 183

또 한 끼 넘겼구나, 아버지가 말하고, 어머니가 피곤한 두 다리를 쭉 펴면, 나는 그 올무에 걸려서 옴짝달싹 못 한다... 나도 내 부모처럼 자잘한 것들에 빠져서 길을 잃을 거야, 그 두 사람이 한 얘기를 또 하고 거듭 같은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진정 출구란 없다... 삶을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삶을 변화시켜야 해요. 그런데 저 여자는 거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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