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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전고운 외 지음 / 유선사 / 2022년 4월
평점 :
에세이를 오랜만에 읽는다. 소설가, 영화감독, 에세이스트, 영화배우, 작가, 가수 등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이들의 공통분모는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지만 쓰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려주는 에세이라 다양한 저자들의 글을 만나본 시간이다.
읽다 보면 저마다 글의 분위기도 다르다. 소설가의 기나긴 시간이 얼마나 크고 깊은 작업인지 다른 책에서도 읽었기에 이 책에서 만나는 소설가의 글에도 이해하면서 읽게 된다. 임대형 영화감독의 집필 공간 이야기에 대한 글에서는 웃기도 하면서 다른 글에서는 진지함도 충분히 전달되어서 바짝 다가서서 읽은 글이기도 하다. 모순성을 인지하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전달하는 글을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화감독의 영화까지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다. 살아남은 사람들과 비열함을 선택한다는 것의 관련성까지도 생각해 보게 한 문장을 마주한 책이기도 하다. 무심하지 않고 진지하게 글에 힘을 주고 있어서 좋았던 글들이 많았던 임대형 감독님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어느 정도 비열해지기를 선택한 사람들. 선배 감독님 말 224
엘리트주의를 혐오하는 동시에 몰개성적인 다수를 혐오. 금욕적인 청교도 정신을 거부하면서 가톨릭 사제를 매력적으로 여긴다. 무신론자이자 기독교인이고, 남성이자 페미니스트다... 모순성에 대하여 십분 공감하는 자이고,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241
타인의 삶의 영역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것은 '침범'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도, 상처를 줄 수고 있다... 자신의 흠, 치부까지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용감해져야 한다. 224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존 레논과 케네디를 암살한 자들. 자기 자신의 작품에 대한 혐오 223
박정민 배우의 글도 기억에 남는다. 모순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내용과 돈을 미리 받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과 어머니가 공부하지 말라고 한 대화 등 자기만의 색이 분명한 글을 읽는 시간이기도 했다. 편협한 시각에 대한 자조적인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던 글과 함께 쓰고 싶지 않은 이유들을 열거하는 작가의 글도 인상적이었다. 당돌하다는 것이 가지는 힘이 무엇인지 안다. 예전만큼 당돌하지 않다는 자신을 돌아보는 글에는 많은 의미들이 함축된다. 내면이 가지고 있는 목소리를 듣지만 어떠한 방식으로도 표출하지 못하는 자신을 이 책의 글을 통해서 전하는 글도 마주하게 된다.
혼자... 삐죽이 적어놓은 글들이 훨씬 더 좋다... 나조차도 두려워 들춰보기 어려운 그 글들이 더 좋다... 모순이고 타협이다. 역시, 돈을 미리 받지 말았어야 했다. 127
하지 마. 공부하지 마. 공부하기만 해. 아주 공부만 했다 봐.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140
예전만큼 당돌하지 않다. 잃을 것이 더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글이 재미가 없다. 이렇게 개성을 잃다 보면... 130
쓰기 지옥과 일기 지옥을 떠올리게 하고, 너무 쓰고 싶은 상태가 어떠한 상태인지도 전해주는 이랑 작가의 글, 인생에 대한 태도와 시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한은형 소설가의 글, 창작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백세희 작가의 글, 쓰는 작업과 쓰는 직업이 가지는 힘겨움을 전해주는 이다혜 기자의 글, 서점이 주었던 위로의 공간이 더는 느낄 수 없다는 착잡한 심정을 전하는 이석원 작가의 글, 상업적인 것을 요하는 세상 속에서 사소한 것을 보며 생각하며 쓰고 싶다고 전하는 전고운 영화감독의 글. 모두 자기들의 자리에서 글을 쓰는 일을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느끼면서 읽었던 에세이이다. 고군분투하며 멋진 글을 쓰고 싶고, 멋진 작품을 향하는 열망들이 전해지는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에세이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많은 분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알게 되고 이들의 작품세계를 소개받고 된 책이다. 영화들, 책들 모두 관심을 가져볼 생각이다. 더불어 이 책의 글들도 떠올리면서 말이다.
상업적이지 않다고들 말한다. 45
사소한 순간을 누군가는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이 나를 외롭지 않게 했다. 46
신문... 거대 담론들 속에도... 다양성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목격하는 것 46
사소한 것을 목격하고 느끼고 생각할 때, 쓰고 싶다... 누구나 찰나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살 듯이 나도 그러할 뿐. 46
안정적인 삶에서 무슨 글이 나오겠는가... 그 글이 무슨 힘을 가질 수 있을까. 39
젊음은 짧지. 너무 짧고, 너무 쉽게 가버리지. 35
글쓰기는 내게 치유와 도피의 방이었다. 54
더는 이 공간에서 전에 느끼던 것들을 느낄 수는 없는 신세가 되었다. 이제 나는 이 공간에서 위로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63
쓰지 않은 글을 쓴 글보다 사랑하기는 쉽다. 쓰지 않은 글은 아직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92
타자 속도가 머리를 따라가지 못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은 기분으로... 애를 쓰며 써 내려간다. 108
인생에 대한 태도도 시선도 내가 갖추고 싶은 것 중에 갖춘 건 여전히 별로 없었는데 쓰기 시작했다. 198
내게 창작은 무리하기와 마무리하기다. 190
창작은 전부 아니면 전무 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