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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2년 5월
평점 :
시인의 신작이 12년 만에 출간된 시집이다. 301편의 시들이 담긴 책표지가 이쁜 양장본 시집이다. 시인의 사진과 시를 접하였던 날들이 떠오른다. 사진에 담긴 피사체와 빛, 어둠의 음영들은 압도적이었다. 시는 사진과 어우러져서 오랜 날들을 기억 속에 자리 잡게 했었다. 그렇게 시인을 알게 되었고 시인의 시집을 펼치는 시간까지도 함께 하고 있다.
시인이며 사진작가이며 혁명가라고 소개하는 작가소개글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작가에 대해 만난 시간이었다. <노동의 새벽>은 금서였다는 사실과 더불어 100만 부가 발간되었고 '얼굴 없는 시인'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군부독재 정권과 사형 구형, 무기수, 감옥 독방, 침묵 정전. 7년 6개월 만에 석방. 민주화운동 유공자라는 사실과 국가보상금을 거부한 사실도 알게 된다. 그래서일까, 시들은 그 시간들과 공존하고 있고, 시어들과 함께 살아있는 역사이며 시인의 인생이기도 하다. 하나의 시를 만나고 다음 시를 만나는데 묵직한 것이 누르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묵직함을 이 시집의 시들을 통해서 마주하게 한다. 그렇게 시인의 날들, 시인의 사유들을 마주하게 한다.
어머니가 당부하셨다
...
가난과 불운이 네 눈빛을 흐리게 하지 말고라
...
내면의 빛과 소박한 기품을
스스로 가꾸지 않으면 나 어찌 되겠는가
70
시인의 가족을 알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시를 통해서 만나게 된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기억에 남는 시집이었다. 학교에 보내면서 자식에게 당부하는 말들, 감옥에서 석방된 후 나날들의 자식의 고통을 지켜보았을 날들이 떠오르는 시이기도 하다. 기도를 하며, 신을 부르며 보낸 날들. 시인의 시에서도 신을 향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 광야의 날들과 시련들을 시인의 목소리에서 그려보지 않을 수가 없다.
저들의 잘못된 질문에 무시를
저들의 의도된 질문에 경멸을
언론의 보도와 꼰대의 개탄에 주먹을
48
이 시집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녹록지 않았던 수많은 날들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다. 그 상처와 고통과 아픔들은 영화를 통해서, 문학을 통해서, 시집을 통해서, 사진 전시회를 통해서 그 너머의 시간들을 관찰하게 된다. 시인의 시는 어렵지가 않다. 쉽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우리들 곁에 가까이에서 목소리를 전한다. 그 목소리를 듣는 자, 그 목소리의 울림을 느끼는 자, 삶에 투영이 되는 자가 되어 경건하게 삶을 정진할 수 있는 힘을 얻는 시들을 담고 있는 시를 만나보게 한다.
코로나 시대를 지금도 우리는 보내고 있다. 방역 지침을 향한 시인의 언행이 등장하는 시도 만나게 된다. 시인의 선택은 시인의 것이다. 권력과 명령이 가지는 힘이 무엇인지 아는 시인이다. 자유가 가지는 힘도 무엇인지 아는 시인이다. 마스크와 백신이 자유의 의지에 의해 선택되고 방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야외 마스크는 시민들의 선택이 되었고 자유의지가 반영되고 있다. 어느 곳에서도 시민들은 마스크를 착용하며 다니는 모습만 보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고,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국민임을 지금도 보게 된다. 권력과 명령, 규제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하며 행동하는 자유의지를 보여주는 국민임을 떠올리는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이기도 하다.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을 이 시집을 통해서도 떠올려보게 된 시간이었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보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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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몸이 묘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문신이 새겨진 날들과 순간, 그 시간들의 의미도 떠올려보게 한다. 이 시대의 교육과정도 떠올려보게 하는 시도 만난다. 직접 아이 수학을 가르쳤기에 교과과정의 수학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어서 교육과정이 바뀌는 날들을 늘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고 어린 학부모들은 그 움직임을 깜박이는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너무 많이 배우는 시대이다. 우리 시대에도 엄청난 양을 기억하면서 대학입시를 보냈는데 지금 아이들은 이해를 넘어서는 수준을 배우고, 지문을 읽어야 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얼마나 견디어낼까? 휘어지는 수준일까? 배우는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시도 만나게 된다. "그만 배우기와 생각하기. 삶을 살기. 나를 살기." 이것이다. 진정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신호등이 되어준다. 그 선택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 선택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부모들도 있다. 다양한 교육이 선택받고 있다. 진정한 어른이 무엇인지 관찰해보는 사유의 장소가 된 시집이었다. 301편의 시들을 만나보자. 양장본이며 가름끈이 두 줄이라 읽는데 편했던 시집이다.
내 몸은 하나의 묘비
101. <내 몸의 문신>
우린 지금
너무 많이 배우고
너무 적게 생각한다
그만 배우기, 생각하기
...
삶을 살기, 나를 살기
117 <너무 많아 너무 적다>
접속하면, 접수당한다
소통하면, 관통당한다
94 <접속과 소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