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말 혹은 침묵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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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생각에, 글쓰기는... 위험했다. 그만두지 못하겠니, 그러다 큰일 난다! 78

아니 에르노 작품은 처음이 아니다. 여러 작품들을 읽었기에 이 소설도 그녀의 작품이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면서 읽은 시간들로 떠오른다. 빼곡하게 이어지는 긴 문장들의 호흡, 멈추게 하는 문장, 다시 읽게 하는 글에서 문맥의 흐름을 잃지 않고자 여러 번 멈추기도 한 작품이다. 그녀의 여러 작품들이 가진 바탕 그림만큼이나 이 작품도 연장선에서 만나게 한다. 유년기의 환경, 부모의 직업, 부모와 집안사람들의 대화들을 되짚어보게 된다. 화자가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배워가는 학업과 교우들의 집안 환경까지도 자신의 환경과 비교된다. 부모의 직업과 경험한 한계들이 그들의 말과 침묵을 통해서 투영된다. 그것들을 경험하며 느끼며 생각한 그녀의 중학교 졸업과 친구와 함께 한 많은 날들과 대화들도 작품에서 만나게 된다. 서민의 삶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 외할머니의 죽음을 대하는 가족들의 모습과 대화들도 밀접하게 기록된다. 여유를 부리지도 못하고, 빼곡한 경제 상황들이 짐작되는 상황에서 그녀가 배우고 깨우치고 사고하는 것들은 확장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 간극을 채우지도 못하고 채울 수도 없는 자신의 집안 환경과 부모들의 모습은 그녀를 더욱 말 없는 아이로 보여주게 된다. 아이는 토론하며 작품을 읽고 함께 대화할 수 상대를 찾는다. 하지만 부모님도 그러한 대상이 되지 못한다. 우연히 알게 된 남자아이와도 대화는 이어지지 못함을 깨닫는다.

내가 노동자 계급에 속한다는 사실... 그 속에 늘 잠겨 지냈음에도 그 어떤 특별한 점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43

이모가 묻길, 안, 혓바닥이 달아났니?... 달아난 건 오히려 그들의 혓바닥, 그들의 언어이다... 그들이 하는 말과 들어맞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181

'소외'의 대상이 된 사람들. 계급구조들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자식의 눈에 보이는 부모의 모습들과 목소리, 싸움과 경찰의 출동을 짐작하는 상황들, 텔레비전의 소리와 신문, 엄마가 읽는 소설, 유급휴가가 주어지지만 즐기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와 이유들이 화자를 통해서 그려지는 소설이다. 부자의 삶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사고의 한계점을 화자의 시선에서도 예리하게, 명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시대의 격동기를 떠올리게 한다. 다른 작품에서도 언급되는 이념들이 이 작품에서도 대학생을 통해서도 짚어진다. 좌파, 우파,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자신이 속한 계급을 이해하면서 더욱 또렷하게 깨닫는 여러 사실들도 작품은 놓치지 않는다. 이모를 통해서, 어머니를 통해서, 아버지를 통해서 전해지는 목소리를 따라가게 한다. 착잡한 상황들이 빼곡하게 채워진다. 화자의 갈급함과 내적 마찰들을 주시하게 한다. 심지어 성에 대해서도 어머니는 대화해 주지 않는다. 소설에서 펼쳐지는 것과는 상이하고 다른 현실의 상황들에 홀로 경험하면서 깨닫는 것들도 작품은 놓치지 않고 전달한다. 세상의 잣대에 남성과 여성이 가지는 경계선을 화자가 만나는 남성들을 통해서도 놓치지 않고 상기하게 한다. 뭔가를 찾아다니는 자는 늘 남자애들이라 유쾌하지 않았다고 화자는 떠올린다. 이 화자는 여성이며, 뭔가를 찾아다니는 자로서 실패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면서 눈물로 깨우치기도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금기하며, 제한을 제시하는 사회 속에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가지는 의문들과 호기심이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장바구니가 터지게 물건을 담는다든가, 아름다운 침실이라든가, 유급 휴가 같은 것, 여전히 그런 것은 행복 같지 않았다. 자유가 무엇을 닮았는지 모르지만 진정한 자유를 머릿속에 그려 보기란 어려웠다. 120

자신들의 삶이 실패한 줄도 모른 채 자동차를 타고 슈퍼마켓으로 향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 그런 사실을 아는 내가 그들 모두 보다... 커다란 행운 같았다. 121

<이방인>책을 읽은 화자가 느끼며 상기하는 것들은 작품 속에서도 자주 언급이 되기도 한다. 부모와 책에서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그 마음까지도 헤아려보지 않을수가 없다. 자신이 속한 계급을 인지하지 못했다가 어느 순간, 어느 사람과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서 깨닫게 되면서 보이는 것들과 상황들은 냉혹하기만 하다. 화자는 그러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만나고 싶었다. 그 깨달음을 준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도 냉정하게 되짚어보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남성을 향한 잣대와 여성을 향한 잣대는 얼마나 유연할까? 그에 대한 질문도 함께 내놓는 작품이기도 하다.

번역가의 글도 꼭 읽었으면 한다. 번역 작업의 뒷이야기와 갈등까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상깊게 읽었던 여러 작품들을 번역한 분이라 반가웠던 분이기도 하다. <동의>, <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등을 번역한 분이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사실 착취당하고 있고 불행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121

그들은 절대 그 누구에게든, 그 무엇이든, 요구하려고 든 적이 없다. 121

그들의 소외 탓에 불행한 사람은 나였다. 122

중학교... 일종의 지표 노릇을 한다. 그런데 부모와 함께 있으면 지표를 가질 수 없다... 난 울었고... 우니까 조금은 덜 미칠 것 같아서였다. 방금 읽은 책에 대해서 두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만 있었더라면. 41

저 가엾은 여자는 어그러짐 없는 조화도 믿는지 모른다... 지금의 그녀가 하는 말, 고수하는 원칙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그 이미지. 튀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 부자는 아니지만 반듯하게 살자. 그녀가 부유한 사람들에 대해 뭘 알고 있을까. 183

또 한 끼 넘겼구나, 아버지가 말하고, 어머니가 피곤한 두 다리를 쭉 펴면, 나는 그 올무에 걸려서 옴짝달싹 못 한다... 나도 내 부모처럼 자잘한 것들에 빠져서 길을 잃을 거야, 그 두 사람이 한 얘기를 또 하고 거듭 같은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진정 출구란 없다... 삶을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삶을 변화시켜야 해요. 그런데 저 여자는 거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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