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딸이다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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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로 유명한 애거사 크리스티 작가의 심리소설 <봄에 나는 없었다>와 <딸은 딸이다> 2편을 모두 만나보았다. 읽으면서 몇 번을 '멋진 작품이구나'라고 외치면서 이야기에 빠져서 읽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엄마와 딸의 관계를 깊게 들여다보면서 읽게 하는 이야기이다. 사라의 엄마로 살아오면서 앤이 느낀 모든 감정은 솔직하였던 것인지 돌아보는 시점이 온다. 그때 두 사람이 모든 진실들을 보게 되고 서로가 나누는 대화는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후회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성숙해지면서 홀로서기와 선택과 책임을 다하는 사라의 놀라운 변화와 모습도 이야기에서 만나게 된다. 모녀의 심리소설을 꽤 흥미롭게,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64세 로라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많고 많은 말들은 가득하게 담아 가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녀의 예리한 관찰력과 분석력, 적절한 중재, 대응하는 비유적인 표현력들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난 네게 경고하는 거야. 아무도 네게 그러지 않으니까... 번제 제물 냄새구나. 난 제물이 달갑지 않은데. (143쪽) 번제 제물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적절한 순간에 경고하는 그녀의 비유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감도 가져보기도 한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들은 어리고 자만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 사라는 로라의 경고를 자각할 수 있었을까?

사라의 경계선이 없는 계획들을 경고하는 또 하나의 인물이 있다. 게리와 로라가 똑같이 사라에게 건네는 말이 있다. 그때는 깨우치지 못하지만 이들의 같은 마음을 나중에 깨닫는 장면도 작품에서 만나게 된다. 작품에는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솔직한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아쉬운 어른의 모습을 보이는 인물도 등장한다. 희생을 하였다고 자기기만에 빠져서 솔직한 감정들을 감추는 모습들도 목도하기도 한다. 아이는 인생에서 스스로 교훈을 얻고, 스스로 친구를 선택해야 한다. (49쪽) 이 문장은 <봄에 나는 없었다>작품의 인물이 떠오르기도 한 문장이다. 이 작품에서도 우리는 교훈을 얻게 된다. 사라가 선택한 것들이 가져다준 것은 행복인지, 불행인지도 작가는 분명히 열거한다. 그녀가 사랑한 것들. 사라는 이것들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네가 아는 게 좋겠어... 난 그걸 포기하고 싶지 않아. 옷, 모피, 돈, 고급 레스토랑, 파티, 하녀, 자동차, 요트...... 편하고 호화로운 모든 것. 293

질투하는 모습도 등장한다. 혼돈의 순간이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과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 작품에서도 만나게 된다. 돈과 성적 매력에 대해서도 인물을 통해서 전하고 있다. 이것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이 영원지속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목격한다. 이 작품에서도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무엇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인지 작품은 숨은 보물같은 것들을 숨겨둔 작품이다. 그것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가졌다. 그것들에 공감하면서 읽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자신과 사이좋게 사는 법을 조목조목 떠올려보면서 읽은 작품이다.

난 필사적으로 싸울거야! 149

모든 게 다 달라진 것 같아요...... 엄마마저도. 253

놀라운 변화와 발전을 보여주는 인물은 사라이다. 필사적으로 싸울거라면서 엄마의 결혼 계획을 방해하는 모습과 엄마가 서서히 변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불안함을 감지하는 그녀의 모습도 주목하게 한다. 그리고 예리하게 엄마에게 질문하며 자신의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는 것도 사라이다. 사라가 무엇을 보기 시작하였는지, 무엇을 선택하는지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녀가 선택한 것과 그녀의 용기. 그녀에게 불행이 아닌 행복으로 길을 활짝 열어준 인물의 단호함과 결단력도 주시하게 된다. 생각 없이 살아가는 바쁜 생활이 무엇을 황폐하게 하였는지도 작품은 예리하게 지적한다. 독자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선택들의 중심은 누구이어야 하는지도 말하고 있는 멋진 작품이었다.

아들은 아내를 얻을 때까지만 아들이지만, 딸은 영원히 딸이다. 301

돈도 성적 매력과 비슷하다... 사람은 거기에 익숙해져. 다른 모든 것처럼 그 즐거움도 차츰 사라지지. 204

이 말 한마디만 명심해. 생각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살지는 마. 229

전쟁 중 구급요원 봉사. 처음으로 인생의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16

요람에서 무덤까지 같이 갈 동반자는 세상 딱 하나,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지. 그 동반자와 사이좋게 지내야 돼. 자신과 사는 법을 배워. 그게 답이야. 22

책을 읽고, 꽃을 가꾸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햇빛을 쬐는 일.... 이 모든 것이 패턴으로 복잡하게 얽힌 걸 우린 인생이라고 하지. 269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이미 일어난 일을 없던 일로 할 수도 없어. 계속 살아가야지.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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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발신인 - 프루스트 미발표 단편선 프루스트 100주년 특별판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최미경 옮김 / 미행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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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선을 좋아한다. 프루스트 100주년 특별판인 <쾌락과 나날>과 <익명의 발신인> 중에 한 권을 만나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유명한 작가이다. 머뭇거리지도 않고 미발표 단편선을 펼쳐본다. 소설가의 추천글도 좋았다. 그리고 여러 편의 단편 작품들.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하나씩 작품들을 만나는 시간들로 채워질 시작점이 된 작품이다. 두껍지 않고 짧은 글이 함축하는 힘을 천천히 음미하듯이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의 사유의 범위와 고독과 슬픔이 안겨준 것들을 함께 조우하면서 때로는 같은 보폭으로, 때로는 갸우뚱하면서 그렇게 다른 사유의 세상도 마주한 시간들로 채워진 작품이다.

때로는 긴 문장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다시 읽으며 문장을 음미하게 한다. 다양한 글들이 담겨 있다. 주제도 다르고 대상들도 다르다. 할머니에 대한 글부터 떠올리게 한다. 인공적인 쾌락에 대해 혐오감을 가졌던 할머니의 고매한 정신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리고 정원과 자연을 아낌없이 사랑한 할머니이기도 하다. 할머니의 죽음에 어머니가 보여준 무한한 존경심과 깊은 고통, 추억들을 작품에서도 회상한다. 대조적인 성품을 가졌던 구두쇠 증조할머니도 상기하면서 할머니의 인품을 그윽하게 그려내게 한 작품이 인상적이다. 순교자의 인자함과 성녀의 선의를 가지고 있었던 할머니에 대한 작품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정원은 자연에 가까워야 하는데 16

할머니의 고매한 정신은... 인공적인 쾌락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18

죽음에 대한 글들도 만나게 된다. 죽음에 대한 명상에 대해, 죽음을 쉽게 잊고 다시 경박한 삶을 이어가는 자신을 돌아보는 글도 만나기도 한다. 동성애에 대한 슬픔에 죽음으로 이어지는 작품도 있었다. 사랑이 가지는 멈추지 않는 열정과 체념을 모르는 사랑에 건강이 악화되는 죽음까지도 짐작해 보게 한다. 그 사랑의 슬픔을 작품으로도 만나는 시간이 된다.

침울한 쾌감... (반려동물) 이 항상 동반해 준 뒤로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채색하던 무관심과 권태가 사라졌다... 내 삶을 동반해 주고 신비롭게, 우수에 차게 윤색해 주었구나. 75

반려동물에 대한 작품도 실려있다. 사랑의 슬픔으로 힘겨워하는 이에게 반려동물이 안겨주는 신비로운 경험들이 작품으로도 전해지는 글이었다. 온전히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이 주는 행복과 만족감은 삶을 치유해 주는 놀라운 힘이다. 동물이 주는 위로와 치유에 대한 놀라운 능력을 이 책에서도 만나게 된다.

건강과 질병이 우리들에게 주는 아름다움과 감사하게 될 은총에 대해서도 작품은 언급한다. 무한한 삶이 아닌 죽음을 바라보면서도 우리는 배우고 깨닫게 된다. 이 책에서도 떠나보는 이와 떠나는 이가 보여주는 놀라운 깨달음을 작품으로도 만나게 된다. 체념과 애정, 추앙에 대해서도 작가는 언급한다. 애정과 추앙에 대한 문장을 마주할 때는 <나의 해방일지>의 두 인물이 나누었던 장면들과 대사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람들의 가혹함, 어리석음, 무관심에 대해서도 진중하고도 놀라운 문장을 만나기도 한다. 이외에도 여성에 대해 지옥에서 나누는 대화들과 각자 주장하는 논쟁들을 흥미롭게 읽은 내용이기도 하다. 프루스트의 문지방을 넘는 일은 매혹, 그 자체이다. (9쪽) 이 문장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지막 장을 덮었던 작품이다.

애정... 그 마음은 ... 귀한 것... 그러니 그것을 잘 추앙하도록 해라... 사람들은 네게 다정하지 않아도, 너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 고통받는 사람들의 지친 발걸음에, ... 자비심을 가진 긍지로, 사람들은 모르는 감미로운 향기를 뿌리게 될 것이다. 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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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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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5층. 지상 25층 오페라 극장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말의 근거는 사실일까? 오페라의 유령은 사람이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가 아닐까? 하지만 실존 인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게 된다. 왜 그는 오페라 극장에 등장하였던 것일까? 작품을 떠올리면서 읽은 원작 소설이다. 두께감만큼이나 작품이 전하는 내용들은 진중하기까지 하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얼마나 아쉬웠을지 떠올려보게 된다.

나도 사랑만 받는다면 얼마든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452

오직 사랑만이 그런 기적과 전격적인 변신을 성취하게 할 수 있다. 43

사랑은 크고도 위대하다. 태어나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큰 의미가 된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가족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어떠한 고난이 난재하여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한 인물에게는 그러한 사랑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부모의 외면, 가족은 더 이상 의미를 잃어버린다. 홀로 떠돌아다니며 살아왔을 날들과 그에게 주어진 부재와 또 다른 능력들은 그의 삶을 험준한 나날들로 밀어 넣기에 충분할 뿐이었다. 복화술, 비범한 능력, 영특함은 끔찍한 삶으로 연출되기도 한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러한 나날들이었다.

흉측한 얼굴을 가리고 세상 속에서 보통 사람으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것일까? 죽음을 생각하며 매일 관속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명의 존귀함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 올가미가 그의 인생에서 의미하는 것은 더욱 얼굴보다도 더 흉측하게 큰 획을 가지게 된다. 술탄의 어린 왕비에 대한 이야기, 페르시아인이 들려주는 올가미에 대한 이야기들은 섬뜩하고도 기괴한 사건으로 기억될 뿐이다. 페르시아 왕비와 하녀의 박수의 의미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제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 그의 장난감이었어요. 255

무지한 하층민처럼 그런 허상의 희생자가 될 수 없지 않으냐 483

(노부부) 혁명의 불길도 이들을 비껴갔다. 극장 밖에서 프랑스의 역사는 도도하게 훌러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도 이들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했다. 236

수수께끼 같은 실마리들을 부여잡으면서 사건의 흥미로운 진전들을 따라가면서 쉼 없이 넘겨간 작품이다. 책장은 바쁘게 넘어간다. 그리고 인물들이 뚝 던져주는 대화와 문장들에 깊은숨을 쉬면서 되뇌어 읽게 되는 문장들도 마주하기도 한 작품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장난감은 아닌지, 진정한 자신의 주인인지도 떠올려보게 한다. 문명의 발달 속에서 더욱 중심을 잡고자 노력해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허상의 희생자가 되고 있지는 않는지 작가의 문장들과 인물들을 통해서 만나는 소중한 시간도 가져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프랑스 혁명에서 비껴간 노부부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크리스틴 다에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기억 속에 쏘옥 넣어두게 되는 이야기가 된다. 세 사람이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고 떠올리는 장면과 이야기들은 깊은 울림으로 자리 잡게 된다.

자기 인형은 한 번도 바꾸지 않을 만큼 소중하게 간직 113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고 의식이 확고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천사가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다. 113

영혼 없이... 초라한 악기... 영혼이 깨어났다 193

영혼의 존귀함을 자주 언급하는 작품이다. 악함이 가득하면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그 단단하고 시체 같은 영혼은 어디에서부터 잘못이 되었을지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그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영혼에게도 따스한 사랑의 체온이 흐를 수 있을까? 자신을 피하지 않는 사랑의 온기를 처음으로 느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처음으로 사람을 안고, 이마에 키스를 하며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너무나도 큰 의미가 된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이 된다.

일부러 속마음을 감출 필요도 없으리라. 진짜 가면을 쓰고 있으니 짐짓 표정을 꾸밀 필요도 없으리라. 196

파리에 사는 사람 중 자신의 고통을 즐거운 표정으로 감추지 못하거나, 자신의 은밀한 희열을 슬픔, 권태, 무관심 등으로 위장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파리지앵이라 할 수 없다. 62

프랑스의 문화와 작품들, 작가들을 떠올리면서 읽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들의 슬픔과 권태, 무관심과 감정을 숨기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떠올리게 한다. 가면무도회가 가지는 위안과 기쁨까지도 생각하게 한다. 얼마나 위선적인지 감정을 감추면서 살아가는 것인지 우리들의 삶들도 돌아볼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굵직한 사건과 수수께끼, 하나둘씩 벗겨지는 사실들과 인과관계들을 추리해 보면서 읽었던 작품이다.

<푸른 수염>작품의 호기심, <파우스트>도 언급되는 작품이다. 질투, 사랑, 악마, 영혼, 천사, 유령 등 흥미롭게 전개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돌덩이, 용수철, 이중 방수벽, 거울, 감옥, 올가미 등 영특한 머리로 창조해낸 문명이 얼마나 추악한 살인의 기술이 되는지도 목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뮤지컬로 유명한 작품인지만 원작 소설은 처음으로 읽었다. 읽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작품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실제로 존재했다.

그렇다. 오페라의 유령은 살과 뼈를 지닌 살아 있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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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 개정판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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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추리소설가의 작품이며 작가가 완벽하게 만족하는 작품이었다는 글귀에 이끌렸다. 양장본인 책표지와 책 제목까지도 눈길을 충분히 끌었다. 작품은 기대이상이었다. 심리서스펜스 걸작이라는 찬사가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안정된 수익,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영국의 중년 여인의 삶을 펼쳐보게 된다. 남편의 벽에 있는 코페르니쿠스 그림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아내는 남편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을까?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살아간다는 것의 상대적인 의미를 짚어보게 하는 작품이다. 자녀들과 남편이 언제나 곁에 있다고 믿는 이 중년 여성의 진실은 참된 진실인지, 거짓된 진실인지 작품을 만나는 독자들이라면 알게 될 것이다.

분주한 생활과 바쁜 계획들이 가지는 의미 속에서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는 온전한 시간을 가져본 적 없는 조앤이라는 중년여성은 우연한 사막의 날씨 사정으로 머무르게 되면서 원하지 않은 시간들을 가지게 된다. 오롯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온몸으로 거부하지만 이끌리듯이 거부한 진실된 자신의 삶을 하나씩 마주하는 순간들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어떤 변화들이 일어날까? 사랑하는 남편과 자녀들이라는 행복한 삶의 시간들이 진실이었는지 거부하지 않고 그 시간들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는 그녀의 이야기들도 꽤 흥미진진하다.

남편이 가장 인상적인 인물로 떠오른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삶과 현실에 안주한 삶은 분명 달랐고 분기점과 같은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가져보기도 하면서 읽은 작품이다. 그가 세 자녀들의 방황과 성장을 어떠한 시선으로 대응하였는지도 하나둘씩 회상하게 한다. 그의 아들의 선택과 결혼까지도 그의 결혼과 연관 지으면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화려하고 성공한 삶과 소박한 삶과 자연을 벗 삼는 삶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열망과 희망은 반쪽짜리 되어간 날들이 된다. 참된 진실들이 하나둘씩 들추어지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작가의 작품 의도에 감탄을 멈추지 않게 된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알지는 못했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218쪽

조앤은 바버라에게 애정이 없었다. 이해하려는 마음도 없었다... 딸의 취향이나 요구는 ... 이기적으로 결정해버렸다. 219

완벽한 가정이며 가족이었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그러한 가족이며 가정이었다. 하지만 몇 걸음 물러나면 세상의 모든 이들은 이 가정과 가족들을 그렇게 바라보지 않았다. 막내딸의 결혼과 결혼생활, 아들의 직업과 결혼, 애이버릴이라는 딸의 냉소적인 태도와 말을 떠올려야 한다.

쉬운 삶, 나태한 사고방식, 자기만족, 고통도 감당할 수 있는 것만 골라서 두려워했지.... 237

누구도 그녀를 도울 수 없고, 돕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어느 한 사람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202

두렵고 위협적이고 그녀를 쫓아다니는 겁나는 무엇.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그것... 회피, 왜곡, 외면... 214

사막에서 그녀가 깨닫는 것들과 집으로 돌아가서 남편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들과 새로운 인생과 출발을 향하는 다짐들에 기대를 가득히 품어보게 된다. 인간은 익숙한 환경과 안락함이 주는 상황에서 어리석음을 멈추지 않는 반복된 삶을 살기도 한다. 사막에서 진실로 보았고 깨달았던 것들과 사람들의 가치는 어디로 휘발되었을까? 친절하다고 말하였던 그 친구의 가치와 남편을 향하는 마음은 어디로 증발하였을까? 그렇게 제자리를 맴도는 중년여성의 이야기에는 홀로 외롭게 서 있는 한 여성만 바라보게 될 뿐이다. 우뚝 홀로 서있는 이 여성의 외로움을 냉정하게 보게 된다. 회귀되는 이 여성의 삶과 자기만족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멋진 작품이다.

(고등학교 시절 회상) 가끔은 죽도록 지루했지. 모두들 점잔 빼고 어찌나 건전하신지. 난 세상을 보고 싶었어. 그래서 세상을 봤지. 분명히 세상을 봤어! 22

함부로 동정하지 마. 난 지금까지 꽤 재미있게 살아왔으니까. 21

​친절하고 느긋하고 너그러운...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 사람. 블란치 223

우연히 마주친 고등학교 동창생 블란치도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세상을 보고 싶었던 그녀. 세상은 본 그녀. 함부로 동정하지 말라는 그 단호한 말도 뇌리에 남는 말이 된다. 사막에서 이 친구를 떠올린 이유도 충분히 설명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경험도 많지 않고 편협한 사고로 삶을 살아간 이 중년여성은 미숙한 아기라고 남편이 말하기도 한다. 자신의 존재와 의미를 깨우치지만 다시 달아나버린 이 여성을 또렷하게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다.

교장선생님이 졸업하는 제자에게 건네는 대화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인생은 살아내야 하는 거라고 전해준다. 타인도 생각하면서 책임까지도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진정한 충고도 해준다. 하지만 그녀는 자녀들에게도 남편에게도 하인들에게도 자기중심적인 모습과 자기만족으로 살아갈 뿐이었다. 고통과 괴로움도 선별하면서 기억에서 지우며 생각조차 거부하면서 살아간 여성이 아닌가. 직시해야 하고 용기를 가지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작품은 말한다. 망신을 당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며 괴롭고 절망하지만 살아내며 씩씩하게 인생을 온몸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간 여성도 이 작품에서 만나게 된다. 코페르니쿠스와 양자학을 향하는 마음과 땅을 일구고 살아간 이 여성의 가치들도 함께 떠올려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작가의 작품에 이러한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책장은 무겁지 않았지만 천천히, 느긋하게 이 작품의 의도와 인물들의 목소리들을 몇 번씩 떠올리는 날들을 가졌던 소설이다. 귀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었던 <봄에 나는 없었다> 장편소설이다.

나태한 사고는 금물. 사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인생은 ...살아내야 하는 거란다. 그리고 자기만족에 빠지면 안 돼! 124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라. 책임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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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여행 웅진 당신의 그림책 4
안느-마르고 램스타인 외 지음, 이경혜 옮김 / 웅진주니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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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듀오 작가의 작품이다. 깊은 바닷속 조개 안에 있던 진주가 세상을 여행하고 처음 진주를 발견했던 소년에게 돌아오는 '우연'을 이야기한 아름다운 그림책이라고 책은 소개하고 있다.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예술 세계를 여행하는 <당신의 그램책 시리즈> 중의 한 권이다.

책 사이즈는 큰 편이며, 양장본이다. 책표지의 그림만 보고도 기대감이 높았던 그림책이다. 그 기대를 전혀 저버리지 않은 멋진 예술 그림책이다. 활자가 없는 그림책이기도 하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림이 전해주는 색감과 풍경과 이미지들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관찰하며 바라보게 한 그림책이다. 활자가 없어도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리고 무언의 예술작품들이 한 권의 그림책으로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작품이었다.

화려한 색을 감추고 있는 바닷속의 풍경들과 색감에 먼저 감탄하게 한다. 그리고 흑인 소년의 소중한 물건 하나는 소중한 친구에게 전해진다. 그 소중한 선물은 소녀의 보물 상자에 간직되면서 사건은 점점 전개되기 시작한다. 진주가 여행한 여정들은 쉼 없이 전개가 된다. 그 여행 중에는 인간이 잘못하고 있는 많은 쓰레기 더미들을 묘사한 장면도 기억에 자리 잡는 그림 중의 하나가 된다. 이외에도 작품 중의 인물들의 눈이 묘사되지 않고 가려져있는 것도 특징이다. 진주를 향한 인간의 욕망과 과시, 절대적 가치는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소녀의 손에 있었던 진주는 세월의 기나긴 여정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노년의 손에 다시 찾아오게 된다. 그 소년과 소녀의 사랑을 짐작해 보면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연이란,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는 마지막 글귀에 차분히 생각하게 해주는 그림책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작품을 한 권의 그림책으로 만나볼 수 있어서, 우연을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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