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 개정판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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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추리소설가의 작품이며 작가가 완벽하게 만족하는 작품이었다는 글귀에 이끌렸다. 양장본인 책표지와 책 제목까지도 눈길을 충분히 끌었다. 작품은 기대이상이었다. 심리서스펜스 걸작이라는 찬사가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안정된 수익,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영국의 중년 여인의 삶을 펼쳐보게 된다. 남편의 벽에 있는 코페르니쿠스 그림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아내는 남편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을까?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살아간다는 것의 상대적인 의미를 짚어보게 하는 작품이다. 자녀들과 남편이 언제나 곁에 있다고 믿는 이 중년 여성의 진실은 참된 진실인지, 거짓된 진실인지 작품을 만나는 독자들이라면 알게 될 것이다.

분주한 생활과 바쁜 계획들이 가지는 의미 속에서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는 온전한 시간을 가져본 적 없는 조앤이라는 중년여성은 우연한 사막의 날씨 사정으로 머무르게 되면서 원하지 않은 시간들을 가지게 된다. 오롯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온몸으로 거부하지만 이끌리듯이 거부한 진실된 자신의 삶을 하나씩 마주하는 순간들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어떤 변화들이 일어날까? 사랑하는 남편과 자녀들이라는 행복한 삶의 시간들이 진실이었는지 거부하지 않고 그 시간들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는 그녀의 이야기들도 꽤 흥미진진하다.

남편이 가장 인상적인 인물로 떠오른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삶과 현실에 안주한 삶은 분명 달랐고 분기점과 같은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가져보기도 하면서 읽은 작품이다. 그가 세 자녀들의 방황과 성장을 어떠한 시선으로 대응하였는지도 하나둘씩 회상하게 한다. 그의 아들의 선택과 결혼까지도 그의 결혼과 연관 지으면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화려하고 성공한 삶과 소박한 삶과 자연을 벗 삼는 삶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열망과 희망은 반쪽짜리 되어간 날들이 된다. 참된 진실들이 하나둘씩 들추어지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작가의 작품 의도에 감탄을 멈추지 않게 된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알지는 못했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218쪽

조앤은 바버라에게 애정이 없었다. 이해하려는 마음도 없었다... 딸의 취향이나 요구는 ... 이기적으로 결정해버렸다. 219

완벽한 가정이며 가족이었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그러한 가족이며 가정이었다. 하지만 몇 걸음 물러나면 세상의 모든 이들은 이 가정과 가족들을 그렇게 바라보지 않았다. 막내딸의 결혼과 결혼생활, 아들의 직업과 결혼, 애이버릴이라는 딸의 냉소적인 태도와 말을 떠올려야 한다.

쉬운 삶, 나태한 사고방식, 자기만족, 고통도 감당할 수 있는 것만 골라서 두려워했지.... 237

누구도 그녀를 도울 수 없고, 돕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어느 한 사람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202

두렵고 위협적이고 그녀를 쫓아다니는 겁나는 무엇.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그것... 회피, 왜곡, 외면... 214

사막에서 그녀가 깨닫는 것들과 집으로 돌아가서 남편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들과 새로운 인생과 출발을 향하는 다짐들에 기대를 가득히 품어보게 된다. 인간은 익숙한 환경과 안락함이 주는 상황에서 어리석음을 멈추지 않는 반복된 삶을 살기도 한다. 사막에서 진실로 보았고 깨달았던 것들과 사람들의 가치는 어디로 휘발되었을까? 친절하다고 말하였던 그 친구의 가치와 남편을 향하는 마음은 어디로 증발하였을까? 그렇게 제자리를 맴도는 중년여성의 이야기에는 홀로 외롭게 서 있는 한 여성만 바라보게 될 뿐이다. 우뚝 홀로 서있는 이 여성의 외로움을 냉정하게 보게 된다. 회귀되는 이 여성의 삶과 자기만족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멋진 작품이다.

(고등학교 시절 회상) 가끔은 죽도록 지루했지. 모두들 점잔 빼고 어찌나 건전하신지. 난 세상을 보고 싶었어. 그래서 세상을 봤지. 분명히 세상을 봤어! 22

함부로 동정하지 마. 난 지금까지 꽤 재미있게 살아왔으니까. 21

​친절하고 느긋하고 너그러운...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 사람. 블란치 223

우연히 마주친 고등학교 동창생 블란치도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세상을 보고 싶었던 그녀. 세상은 본 그녀. 함부로 동정하지 말라는 그 단호한 말도 뇌리에 남는 말이 된다. 사막에서 이 친구를 떠올린 이유도 충분히 설명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경험도 많지 않고 편협한 사고로 삶을 살아간 이 중년여성은 미숙한 아기라고 남편이 말하기도 한다. 자신의 존재와 의미를 깨우치지만 다시 달아나버린 이 여성을 또렷하게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다.

교장선생님이 졸업하는 제자에게 건네는 대화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인생은 살아내야 하는 거라고 전해준다. 타인도 생각하면서 책임까지도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진정한 충고도 해준다. 하지만 그녀는 자녀들에게도 남편에게도 하인들에게도 자기중심적인 모습과 자기만족으로 살아갈 뿐이었다. 고통과 괴로움도 선별하면서 기억에서 지우며 생각조차 거부하면서 살아간 여성이 아닌가. 직시해야 하고 용기를 가지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작품은 말한다. 망신을 당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며 괴롭고 절망하지만 살아내며 씩씩하게 인생을 온몸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간 여성도 이 작품에서 만나게 된다. 코페르니쿠스와 양자학을 향하는 마음과 땅을 일구고 살아간 이 여성의 가치들도 함께 떠올려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작가의 작품에 이러한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책장은 무겁지 않았지만 천천히, 느긋하게 이 작품의 의도와 인물들의 목소리들을 몇 번씩 떠올리는 날들을 가졌던 소설이다. 귀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었던 <봄에 나는 없었다> 장편소설이다.

나태한 사고는 금물. 사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인생은 ...살아내야 하는 거란다. 그리고 자기만족에 빠지면 안 돼! 124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라. 책임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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