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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발신인 - 프루스트 미발표 단편선 ㅣ 프루스트 100주년 특별판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최미경 옮김 / 미행 / 2022년 5월
평점 :
단편선을 좋아한다. 프루스트 100주년 특별판인 <쾌락과 나날>과 <익명의 발신인> 중에 한 권을 만나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유명한 작가이다. 머뭇거리지도 않고 미발표 단편선을 펼쳐본다. 소설가의 추천글도 좋았다. 그리고 여러 편의 단편 작품들.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하나씩 작품들을 만나는 시간들로 채워질 시작점이 된 작품이다. 두껍지 않고 짧은 글이 함축하는 힘을 천천히 음미하듯이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의 사유의 범위와 고독과 슬픔이 안겨준 것들을 함께 조우하면서 때로는 같은 보폭으로, 때로는 갸우뚱하면서 그렇게 다른 사유의 세상도 마주한 시간들로 채워진 작품이다.
때로는 긴 문장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다시 읽으며 문장을 음미하게 한다. 다양한 글들이 담겨 있다. 주제도 다르고 대상들도 다르다. 할머니에 대한 글부터 떠올리게 한다. 인공적인 쾌락에 대해 혐오감을 가졌던 할머니의 고매한 정신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리고 정원과 자연을 아낌없이 사랑한 할머니이기도 하다. 할머니의 죽음에 어머니가 보여준 무한한 존경심과 깊은 고통, 추억들을 작품에서도 회상한다. 대조적인 성품을 가졌던 구두쇠 증조할머니도 상기하면서 할머니의 인품을 그윽하게 그려내게 한 작품이 인상적이다. 순교자의 인자함과 성녀의 선의를 가지고 있었던 할머니에 대한 작품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정원은 자연에 가까워야 하는데 16
할머니의 고매한 정신은... 인공적인 쾌락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18
죽음에 대한 글들도 만나게 된다. 죽음에 대한 명상에 대해, 죽음을 쉽게 잊고 다시 경박한 삶을 이어가는 자신을 돌아보는 글도 만나기도 한다. 동성애에 대한 슬픔에 죽음으로 이어지는 작품도 있었다. 사랑이 가지는 멈추지 않는 열정과 체념을 모르는 사랑에 건강이 악화되는 죽음까지도 짐작해 보게 한다. 그 사랑의 슬픔을 작품으로도 만나는 시간이 된다.
침울한 쾌감... (반려동물) 이 항상 동반해 준 뒤로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채색하던 무관심과 권태가 사라졌다... 내 삶을 동반해 주고 신비롭게, 우수에 차게 윤색해 주었구나. 75
반려동물에 대한 작품도 실려있다. 사랑의 슬픔으로 힘겨워하는 이에게 반려동물이 안겨주는 신비로운 경험들이 작품으로도 전해지는 글이었다. 온전히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이 주는 행복과 만족감은 삶을 치유해 주는 놀라운 힘이다. 동물이 주는 위로와 치유에 대한 놀라운 능력을 이 책에서도 만나게 된다.
건강과 질병이 우리들에게 주는 아름다움과 감사하게 될 은총에 대해서도 작품은 언급한다. 무한한 삶이 아닌 죽음을 바라보면서도 우리는 배우고 깨닫게 된다. 이 책에서도 떠나보는 이와 떠나는 이가 보여주는 놀라운 깨달음을 작품으로도 만나게 된다. 체념과 애정, 추앙에 대해서도 작가는 언급한다. 애정과 추앙에 대한 문장을 마주할 때는 <나의 해방일지>의 두 인물이 나누었던 장면들과 대사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람들의 가혹함, 어리석음, 무관심에 대해서도 진중하고도 놀라운 문장을 만나기도 한다. 이외에도 여성에 대해 지옥에서 나누는 대화들과 각자 주장하는 논쟁들을 흥미롭게 읽은 내용이기도 하다. 프루스트의 문지방을 넘는 일은 매혹, 그 자체이다. (9쪽) 이 문장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지막 장을 덮었던 작품이다.
애정... 그 마음은 ... 귀한 것... 그러니 그것을 잘 추앙하도록 해라... 사람들은 네게 다정하지 않아도, 너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 고통받는 사람들의 지친 발걸음에, ... 자비심을 가진 긍지로, 사람들은 모르는 감미로운 향기를 뿌리게 될 것이다. 80~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