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니 사이코 픽션
박혜진 엮음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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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비평집 『언더스토리』의 저자이며 베스트셀러 『82년생의 김지영』의 편집자이자 문학 평론가이며 민음사의 편집자가 엮고 풀어놓은 소설집이다. 피폐소설 7편의 색다른 맛을 맛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소설가 조예은 추천도서이자 예소연 추천도서라 고른 소설집이다.

비평집 『언더스토리』를 먼저 읽어보았기에 이 소설집에 대한 기대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믿고 무조건 읽어도 실패하지 않을 소설집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중반의 작품에서 불안과 우울, 다채로운 사이코들을 만나게 될 소설집이다. 기괴한 낙오자들을 소설을 통해 읽고 작가가 다시 작품을 설명해 주는 글을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다. 되새김하며 다채롭게 사유할 수 있는 기회까지 이어지는 소설집이라 너무 마음에 들었던 소설집이다.

소설을 한 편씩 만날 때마다 자문하게 된다. <프롤로그>부터가 예사롭지 않았고 다채로운 싸이코들을 한 권의 책으로 모아야겠다는 기획의도가 소설들과 소설가들의 집필된 의도를 더 깊게 조우하게 된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이지만 소설은 매번 새로움의 연속이라 놀라움을 감추기가 어려워진다. 피폐소설 7편도 다르지가 않았다. 부가적인 설명을 읽고 소설의 장면들을 다시 살펴보는 재독의 재미까지 흥미롭게 이어진다.

다채로운 인물들을 통해서 자신을 투영하게 되는데 특히, 프롤로그에서 발견한 글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내내 갇혀 있었던 것이다. 표출하지 못하는 분노, 그런 분노 따위 모르는 척" (8쪽) "사람으로부터 상처받는 일은 흔하고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은 그보다 더 흔하다." (8쪽) 피폐소설 7편이 강열하게 상흔을 남긴다. 그들이 남긴 것들을 하나씩 주워 담는 시간은 자신의 거울을 보는 시간으로 남겨질지도 모른다. 번뜩이는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한 인물들이 환상처럼 경험하는 강한 것들을 독자들도 색다른 맛으로 맛볼 수 있는 피페소설들이다.


"알고 보면 다 아팠다. 모두가 깨진 조각을 손에 쥐고 피 흘리고 있다고 느낄 때 이 '나쁜 소설'들이 떠올랐다."

나는 나의 일진이었다. 강한 내가 약한 나를 따돌리고 괴롭히고 겁박했다... 한순간 내일이 없는 것처럼 공격하고 뒤틀리며 망가지는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죄다 맛이 갔지." 8


프롤로그 글이 던진 흡인력이 강열하다. 7편의 소설들이 더 궁금해졌던 소설집이다. 소설은 언제나 질문을 남긴다. 더불어 인간을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는지 더욱 모호한 미궁 속으로 밀어 넣어버린다. 소설을 통해 인간을 정의한 프롤로그 글이 있다. 인간은 모순이며 무질서, 혼돈, 느닷없음이라는 인간의 정의를 소설집을 통해서도 찾게 될 것이다.

인간의 심연을 증언한다는 소설의 매력은 더 깊어진다. 다채로운 광기, 나쁜 소설 7편의 피폐소설은 이제 더 이상 선택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읽고 살피는 시간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으며 소설은 한 뼘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7편의 소설 중에서 송경아 소설 『정열』도 기억에 남는 환상소설이다. "그는 여자친구를 사랑하지 않았으나" (15쪽)를 통해 그의 성향을 파악하게 된다. 작가가 소설을 설명해 주면서 언급한 영화 《베스트 오퍼》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미술품을 최고가로 낙찰시키는 경매사가 자신에게 찾아온 비밀스러운 사랑에는 위조된 감정과 진짜 감정을 감별하지 못하게 되면서 사건이 발생하는 영화이다. 정열과 사랑. 정열이 없는 삶에서 눈뜨게 되는 정열적인 삶을 기괴한 환상적인 짧은 소설로 전하는 소설이 『정열』이다. 작가의 부수적인 설명도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소설집이라 좋았다. 한 편씩 읽는 재미, 짧은 소설들이라 긴 여운이 남았던 피폐소설집이다.



정열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갈망이고, 존재의 심연에서 치솟아 오르는 불기둥이었다. 그는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초라했다. 세계가, 그가 믿어온 평온하고 투명한 세계가 뒤집히고 있었다. 이제는 불길로 변해버린 그녀가 옳았다. 그가 안온하다고 느낀 세계의 한 꺼풀 밑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정열이었다. 35 _ 정열_ 송경아 소설



'다채로운 싸이코들을 한 권의 책에 모아야겠어.' netflix 드라마 <성난 사람들> 막장 분노. 급발진의 연속 역대급 병맛 내 안의 광기를 자극. "그거 알아? 80년대생들은 죄다 맛이 간 거?" 7

나는 나의 일진이었다. 강한 내가 약한 나를 따돌리고 괴롭히고 겁박했다... 한순간 내일이 없는 것처럼 공격하고 뒤틀리며 망가지는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죄다 맛이 갔지." 8 _ 프롤로그


사람으로부터 상처받는 일은 흔하고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은 그보다 더 흔하다. - P8

나는 나의 일진이었다. 강한 내가 약한 나를 따돌리고 괴롭히고 겁박했다... 한순간 내일이 없는 것처럼 공격하고 뒤틀리며 망가지는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죄다 맛이 갔지." - P8

나는 내내 갇혀 있었던 것이다. 표출하지 못하는 분노, 그런 분노 따위 모르는 척 - P8

정열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갈망이고, 존재의 심연에서 치솟아 오르는 불기둥이었다. 그는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초라했다. 세계가, 그가 믿어온 평온하고 투명한 세계가 뒤집히고 있었다. 이제는 불길로 변해버린 그녀가 옳았다. 그가 안온하다고 느낀 세계의 한 꺼풀 밑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정열이었다. - P35

알고 보면 다 아팠다. 모두가 깨진 조각을 손에 쥐고 피 흘리고 있다고 느낄 때 이 ‘나쁜 소설‘들이 떠올랐다. - P8

나는 나의 일진이었다. 강한 내가 약한 나를 따돌리고 괴롭히고 겁박했다... 한순간 내일이 없는 것처럼 공격하고 뒤틀리며 망가지는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죄다 맛이 갔지." - P8

절망, 폭력, 거짓, 기만, 회피, 중독 ......, 통제할 수 없는 삶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왜곡된 욕망... 그들의 실패한 욕망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살아 있는 정의였다. 인간이란 모순, 무질서, 혼돈, 그리고 느닷없음의 동의어였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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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월급사실주의
남궁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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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사실주의를 조명하는 6편의 한국소설을 담고있는 단편소설집이다. 소설가 장강명에 의해 시작된 노동 현장이 전해지는 소설집이다.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인 다양한 노동 현장의 노동자들의 현실적인 삶들이 소설로 이야기된다. 다양한 직업군이 존재하지만 암흑과 같은 세상 속으로 한걸음 걸어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밖에서 보는 직업과 직접 경험한 노동자들의 현실은 또 다른 질감과 농도를 지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손원평 소설 『피아노』 학원강사였던 인물이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겪는 현실적인 삶이 전해진다. 공부방을 운영하는 고충은 학원 강사였을 때와는 다른 질감을 지닌다. 아이들이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가르치는 것이 좋아서 하였던 학원강사일이 공부방 운영자가 되었음을 전하면서 그녀가 겪는 경제적 고충까지도 전해진다. 가난해지는 길이 얼마나 쉬웠는지도 전해진다. 그녀가 놓쳐버린 것과 되돌릴 수 없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소설은 고스란히 그녀의 삶을 통해서 보여준다. 무례함을 감지하지 못한 그녀가 놓쳐버린 것은 가난의 지름길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앉은 자리에서 가난해지는 방법은 너무 쉬웠다. 42

돈은 정직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으며 위선적이지 않다고 전한다. 돈으로 치환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하면서 외로움만큼은 돈으로 채우지 못하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이 소설에서 외로움이 묻어 나오면서 기를 쓰면서 외로움을 떨치는 그녀를 엿보게 된다. 인생의 끝자락에 그녀가 자리잡는 곳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바라보게 된다. 몇 달 치 공부방 교육비를 납부하지 못하는 부모와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도 피아노를 소재로 전해진다. 중고거래를 통해 먼지가 금가루로 바뀐다는 마법을 소설에서 만나게 된다.

단편소설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는 소설집이다. 긴 스토리가 아니지만 독립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여운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작품이다. 모든 살림들을 정리해야 하는 이유, 중고거래로 정리하면서 그녀가 누리는 기쁨, 피아노 의자에 숨겨둔 돈이 이야기된다. 그녀가 가졌던 직업과 앞으로 하게 될 일은 다른 결을 지닌 직업일 것이다. 그녀가 지나온 길과 그녀가 앞으로 가야하는 노동은 현실이다. 요양원에서 사무직을 하게 될 그녀가 보게 될 것들, 경험하게 될 것들도 궁금해진다. 전통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던 요양원이라는 공간에서 삶과 죽음을 맞는 그들이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이 있음을 떠올리게 된다. 삶인지 죽음인지 교묘한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과 그곳의 노동자까지도 떠올린 소설이다. 손원평 작가의 소설이라 반가움에 읽은 소설이다.

정직한 건 돈이었다.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속내를 감추지도, 위선으로 가장하지도 않았다. 돈은 언제나 솔직한 민낯을 드러내 보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감정 중에서 돈으로 치환되지 않는 건 없었다. 43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 시대에 노동을 하지만 정당한 대우를 받는지 질문을 하게 되는 소설들이다. 어떠한 불합리에 대처하며 생활을 하는지 인물들을 통해서 살펴보게 된다. 이정연 소설 『등대』는 판매점에서 물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판매 직원에게 누명을 씌워 경찰에 신고하게 된다. 경찰 조사를 받게 된 억울한 노동자는 증거불충분 등의 사유로 무죄로 사건이 마무리되지만 노동자는 물품 가격을 변상하고 점장에게 악담을 들으며 강제 퇴사를 당하게 된다. 퇴직금도 못 받고, 실업급여도 못 받는 상황을 경험하고 재취업하면서 다시는 타인에 의해 휘둘리고 주저앉지 않을 거라고 굳은 다짐을 한다. 노동자의 다짐만큼 재취업은 성공하였는지 전해진다. 노동자를 벼랑 끝에 몰아넣는 비열한 사회의 민낯을 노동 현장을 고발하는 소설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가려진 사회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은 모른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이 소설집의 유용성과 정보성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더 기대되는 소설집이다. 기획한 장강명 작가의 깊은 마음까지 읽을 수 있었고 동참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하나씩 빠짐없이 읽어볼 생각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세상이며 알고 있는 만큼 마음이 말캉해질 것이다. 사라지는 많은 노동자들의 죽음, 억울한 사연에 연루된 노동자들이 있음을 알게 해주는 소설들이 전해지는 소설집이다. 제목이 지닌 반어법에 감탄하면서 읽은 소설들이다.



또 어처구니 없이 말려들었구나. 매니저도, 홀반장도, 심지어 K나 조리실 종업원들도 보이지 않았다. - P88

이번에는 다른 사람에게 휘둘려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작정하고 내 보내려는 게 아니라면 서리는 최대한 버틸 생각이었다. - P70

외로움만큼은 돈으로 메워지지 않는 감정이라는 걸 알아서였다... 기를 써서 그 감정을 떨치고 막아냈다. - P44

정직한 건 돈이었다.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속내를 감추지도, 위선으로 가장하지도 않았다. 돈은 언제나 솔직한 민낯을 드러내 보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감정 중에서 돈으로 치환되지 않는 건 없었다. - P43

먼지가 금가루로 바뀌는 마법이기도 했다. - P43

앉은 자리에서 가난해지는 방법은 너무 쉬웠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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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 2023 브라게문학상 수상작
프로데 그뤼텐 지음, 손화수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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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열한 첫문장으로 시작한다. 생의 마지막 날이 시작되는 새벽 5시 15분이다. 일상의 사소한 습관들을 어김없이 그는 시작하고 자신의 매트리스를 불태우는 의식을 한다. 매트리스가 간직한 그의 지난날들도 빠짐없이 열거되면서 그의 사랑과 가족, 직업, 그가 기억한 것들이 전해지는 소설이다.

새벽 5시 15분, 닐스 비크는 눈을 떴고 그의 삶에 있어 마지막 날이 시작되었다. 7

생의 마지막 순간은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소설에도 자신의 삶의 마지막 날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 인물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전해진다. 아쉬움 없이 사랑하고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닐스라는 68세 주인공의 직업은 페리 선장이다. 15살 나이에 이미 배를 운행할 정도로 바다를 배운 인물이다. 학업 실력이 뛰어났지만 그는 아버지가 하였던 일을 이어서 배의 선장이 된다. 자신의 배, 자신의 집을 팔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배를 운행하면서 살아온 인물이다. 섬의 부동산을 사들이는 부자들의 별장이 되는 주변의 땅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은 끝까지 집을 팔지 않았던 사람이다.

벌었던 돈을 모두 사용해도 넉넉하지 않았던 삶이었다. 많은 돈을 벌지 못했고 넉넉하지 않았던 섬의 선장이었다. 다리가 생기면서 그의 생계는 더욱 위협을 받고 잊히는 사람, 지워진 얼굴이 되었어도 그는 자신의 일을 고수하면서 살았던 바닷사람이다. 그가 뚫어지게 관찰하고 살피는 것은 하늘, 바다, 새의 움직임이며 바다의 고요가 정말 두려운 것임을 알았던 인물이다.

아내를 보고 반해서 찾아다녔던 사연만큼 아내가 그에게 보여준 사랑도 멋졌다는 것을 들려준다. 그들의 솔직한 사랑과 아내가 두 딸과 함께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한 일을 그는 자랑스러워한다. 아내와 두 딸의 행진에 난처해진 목사와 시장, 지방의원들이 행진을 멈추게 하기 위해 닐스를 해고하면서 섬사람들은 일요일 교회에 전원 참석하지 않는 일로 대항한 사건도 기억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 군인은 돌아가라는 행진 문구가 집권한 자들에게는 거슬리는 움직임이었음을 들려준다.

웅장하게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발전을 완성하는 과정에 사라지고 얼굴조차 없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과 땀과 노고, 때로는 산업현장의 수많은 죽음이 있다는 것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더불어 직업이 사라지는 위기와 생계가 위협받는다는 것도 작가는 엄중하게 짚어낸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폭풍에 희생되고 사라진 사람들 중에 오늘이 마지막 날인 닐스도 한 명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더 원하지 않는 사람. 당신은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을 느끼는 부류의 사람이에요. 125


넉넉한 삶이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고 집을 팔지 않으면서 바다와 배를 사랑한 사람이다. 가진 것 외에는 아무것도 더 원하지 않는 사람이며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닐스였음을 엄중하게 짚어낸다. 해외여행, 자동차 등으로 가지지 않은 것을 더 갈급하는 현대인들에게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도록 빛을 비추어준 소설이다.

현재 가진 것에 행복을 느끼며 만족하고 아내와 두 딸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가 기억하는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에는 삶이 존재한다. 그들의 삶을 통해서 소설은 질문까지 무수히 던진다. 삶의 마지막 날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게 될지 생각하게 한다.

닐스가 제일 마지막에 기억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소설을 통해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에 태우는 인물과의 만남도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작품이다. 닐스의 마지막 날이 이렇게 웅장하고 빼곡한 삶과 이야기로 가득했다는 것에 감동을 받으면서 지금 우리의 삶에도 열정과 사랑, 행복을 어떤 질감으로 기억하게 될지 돌아보게 된다. 매끄럽게 흘러가는 문장과 평범한 소시민의 삶에서도 우리는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아내의 투병과 죽음 이후 헛헛한 심정까지도 두 딸을 향하는 발길과 마음을 통해서 전한다.

조산사인 카리의 마지막 날을 위해 그녀가 준비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텅 비워진 집안, 불태우는 그녀의 삶의 흔적들, 태어남을 지켜보았을 카리의 수많은 생애와 닐스 배의 승객이었던 여인들이 출산하거나 낙태하기 위해 이동했다는 것도 결코 가볍게 지나치지 않는 장면으로 남는다. 태어남과 죽음, 그리고 생애는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상대적이었음을 알게 된다. 찰나였을 삶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무엇을 관찰하고 사랑하고 있으며 무엇에 행복을 느끼고 불행을 더 깊게 조우하는지 질문을 던진 소설이다. 마지막 날이 오늘이라는 마음으로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살게 해주는 작품이다.

사진사가 말하는 것에 닐스가 대항하는 답변이 멋졌던 소설이다. 우리는 개새끼가 아닙니다. 그 어느 누구도 우리를 소유할 수 없다는 닐스의 항변에 박수를 보냈던 명장면이다. 자본주의의 거대한 움직임에 누군가는 노예의 삶과 생각없는 행동을 머뭇거림이 행하지만 닐스와 같은 누군가는 생각하고 추앙하지 않고 소유당하지 않는 자립적인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소설의 닐스를 통해서 보여준 소설이다.

당신이 우유를 원한다면 ... 그 모든 빌어먹을 것들을 전부 받아들여야 해요... 우리는 개새끼가 아닙니다. 그 어느 누구도 우리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닐스가 말했다. 197


새벽 5시 15분, 닐스 비크는 눈을 떴고 그의 삶에 있어 마지막 날이 시작되었다. - P7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더 원하지 않는 사람. 당신은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을 느끼는 부류의 사람이에요. - P125

당신이 우유를 원한다면 ... 그 모든 빌어먹을 것들을 전부 받아들여야 해요... 우리는 개새끼가 아닙니다. 그 어느 누구도 우리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닐스가 말했다. - P197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바람과 바다와 땅, 미움과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던데 감사하고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삶은 끝없는 초안과 스케치이며,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과거와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일단 시작된 이야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좋든 싫든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따라가야 한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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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물들다 - 감성 수채화 컬러링북
박미나(미나뜨)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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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주는 영감을 꽃과 식물을 통해 아름다운 감성 수채화를 선뵈는 박미나 작가의 신간도서가 출간되어 기쁜 마음으로 펼친 컬러링북이다. 꽃나무들이 아름다운 꽃향기와 멋진 자태를 뽐내는 아름다움에 발걸음이 멈추게 되는 계절이다. 화사한 봄꽃이 가득히 유혹하는 향기가 산책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 이 책도 다르지가 않는 기쁨을 주는 컬러링북으로 책갈피도 포함되어 있는 도서이다.

물로 그리는 맑은 그림을 수채화라고 부른다는 글귀가 좋았다. 물로 섞이고 퍼지도록 그리는 기법을 유지하라고 작가는 알려주면서 실패하지 않는 수채화 기법이 전해진다. 한계가 없는 다양한 시도에 대해서도 일러준다. 수채 전용 코튼지에 채색하면 완성도가 높다는 팁도 전한다. 새로 돋아나는 작은 잎을 채색하는 기법과 시드는 잎을 채색하는 기법까지도 작가가 알려준다.

오랫동안 응시하는 시간과 관찰이 요구되는 것이 예술이다. 터치하는 기법에 따라, 마른 후에 덧칠하는 것과 젖은 상태에 번지는 기법으로 채색하는 기법처럼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채색이 완성된 그림은 다르게 될 것이다. 인생도 다르지가 않음을 작가의 수채화 기법을 통해서 보게 된다. 맑은 그림처럼, 수채화처럼 지금 살아가는 인생도 어떤 방식을 취하느냐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질 것이다. 봄이 오는 것을 바라볼 수 있어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꽃나무와 풍경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게 된다. 더불어 감성에 취하도록 아름다운 수채화 컬러링북도 한 페이지씩 넘겨볼 수 있다는 기회까지도 감사하는 계절이다.

한계를 스스로 정하지 않는 삶이 되어야 한다. 수채화 기법을 알려주는 작가의 글을 통해서도 기운을 느끼게 된다. 여유로운 시간과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정서적 감성을 충만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활동으로도 적합한 컬러링북이다. 박미나 작가는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 『빨강 머리 앤의 정원』을 통해서 수채화 작가로 인지도가 있는 작가이다. 미니 레슨도 책에서 진행되는 만큼 성큼성큼 한 걸음씩 나아가는 취미활동으로도 적합한 컬러링북이다. 채색이 완성된 그림은 액자에 넣어서 인테리어를 할 수도 있는 감성 인테리어로도 적합한 수채화이다.

미나뜨 작가가 알려주는 수채화에 대한 질문과 답변도 책에서 만날 수 있다. 파트 1과 파트 2로 나뉘는 구성으로 알차게 구성된 31가지 꽃도안들이 풍성한 컬러링북이다. 두꺼운 두께감만큼이나 아름다운 감성 수채화를 완성하는 취미활동을 가져보면 좋을 컬러링북이다. 책 사이즈의 도안도 있고 엽서 사이즈의 도안도 2개가 구성되어 있으며 책 마지막 표지 안에는 엽서로 사용 가능한 작가의 수채화 엽서도 있는 신간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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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3
장애령 지음, 문현선 옮김 / 민음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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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방문했던 경기도 박물관의 야외 영상물에 등장하는 독립운동가들과 일본군에 고문,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독립운동가의 아내, 아들이 전쟁 현장에서 사망하는 영상물이 지금도 기억 속에 또렷하게 잔영으로 남는다. 나라를 빼앗긴다는 것, 빼앗겼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다. 이 충격을 여러 영화, 생존자, 희생된 많은 인물들의 기록물들을 통해서 이해하게 되는데 이 소설에서도 애국 청년들과 매국노의 첨예한 대립을 통해서 빼앗긴 나라의 국민이 겪는 모멸감과 박탈감이 어떻게 죽음까지 각오하게 되는 저항운동이 되는지 보여준다. 소설에 등장하는 젊은 여대생 지아즈가 그러하다. 목숨을 잃을 각오까지 하고 매국노를 살해하겠다는 암살에 가담한 지아즈를 통해서 소설은 시작된다.

영화만을 기억한다면 이 소설을 전부 이해한 것이 아니다. 영화는 원작소설를 영상미로 재해석한 작품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게 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소설 『연인』도 다르지가 않았다. 원작소설을 읽어야 작가와 작품성을 이해하게 된다. 이 소설도 꼭 소설로 읽어야 작가의 작품성을 알게 된다. 읽을수록 작가가 집필한 『색, 계』소설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섯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책이며 그중의 하나가 『색, 계』이다. 사랑해 본 적이 없었던 젊은 여대생 지아즈는 사랑에 빠지는 게 어떤 것인지도 몰라서 이 선생이라는 사오십 대의 작은 남자인 비밀정보원을 사랑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매국노를 향한 분노와 애국심에 그녀는 나라를 위하는 일에 쓰임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영화 <영웅>의 김고은이 연기한 궁녀였던 설희라는 인물이 떠올랐다. 연기를 하고 있는 지아즈의 아슬아슬한 상황들과 위험한 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아찔한 걱정까지도 하는 그녀가 애처로웠다. 나라를 빼앗긴다는 것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것임을 이 소설 지아즈를 통해서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나랏일에 무관심한 홍콩 사람들에 대한 불만도 토로된다. 나랏일에 적극적인 그녀의 성향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미인계로 매국노를 현혹하는 작전에는 이 선생이라는 인물이 부인을 속이면서 수많은 밀회를 즐기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 선생의 부인이 마작을 하면서 다른 부인들과 나누는 모습에는 사치와 부를 과시하는 것만이 존재한다. 부인들이 누리고 있는 그 기회들은 누군가의 생명들과 맞바꾼 것임을 지아즈를 통해서 기억하게 하는 작품이다.

불안과 죽음이 눈앞에 있는 지아즈가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은 소설 중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반면 부인들은 안락하고 지루한 시간들을 보내는 오락과 사치와 무료한 일상을 보낸다. 길고 무거운 커튼이 지닌 전쟁 중인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유럽풍 물건들, 다이아몬드를 과시하는 부인들과의 대화중에도 위장하면서 연기하고 있는 젊은 여대생 지아즈와는 대립을 이룬다. 지아즈는 작은 식당에서 죽을 먹어도 좋았다고 전하는 인물인 반면 이 부인은 물건을 포기하지 못하는 살찐 이 선생의 부인이다. 마작을 하는 부인들은 지아즈의 비치반지를 보고 얕잡아본다는 것까지도 지아즈는 감지하게 된다.

사랑을 너무나도 뒤늦게 알아버린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버렸지만 모든 것이 너무 늦었음을 알게 된다. 공허해진 지아즈의 마음과 이 선생이 모두 총살해 버린 상황에서 그의 기억에 지워지지 않을 그녀가 있다는 것을 소설은 엄중하게 이야기한다. 미묘한 감정인 사랑을 끼워 넣을 수 없는 두 인물을 통해서 다루는 작가이다. 표정이 없는 지아즈를 무수히 떠올리면서 나라를 위한 일에 젊은 여자가 어떤 쓰임으로 이용되고 매국노를 암살하겠다는 엄중한 임무에 투입된 그녀의 이야기가 어떻게 막을 내렸는지 이 선생을 통해서 단편소설로 전하는 작가이다.

그들이 비밀리에 만났던 아파트는 영국인과 미국인이 주인이었으며 그들은 지금 모두 수용소에 있다고 전한다. 매국노가 빼앗은 것은 지아즈 무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알베르 카뮈도 『계엄령』 희곡을 통해서 자유인은 도형장과 납골당에 있고 노예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언급하였고,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소설에 등장하는 장면처럼 수용소가 지닌 의미는 상대적이라는 것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권력에 거슬리는 자를 수용소로 보내는 것이 권력임을 이 소설의 귀퉁이에서도 발견하는 조약돌이 된다. 『삼체』 소설에서도 공개처형되는 교수가 전하는 의미까지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수용소'의 의미이다.

매국노와 그들의 부인들이 살아가는 삶과 애국단이 되어 치열하게 수행하는 임무의 긴박함과 불안을 인물들을 통해서 보여준 작품이다. 대조되는 집단이 누리는 사치와 부를 향하는 멈추지 못하는 욕망이 부인들과 이 선생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전달된 소설이다. 나라를 되찾고자 목숨까지 각오한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던 지아즈의 성공하지 못한 짧은 생애와 개인적인 경험으로 반박하는 사담까지도 소설에서 짚어내는 소설이다.



정말로 그녀를 얕잡아보는 눈치였다. 14 _ 마작하는 부인들

작은 음식점에서 죽을 먹었는데 그것도 좋았다 - P24

이 사람이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구나.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무언가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해졌다. 너무 늦었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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