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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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단편소설들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그중 하나인 『퀴큰 나무 숲의 밤』 소설이 인상적이다. 사제가 살았던 언덕 위의 집에 그녀가 살고 있다. 이미 사제는 죽었고 사제와 사촌인 그녀는 사제와 인연이 있었다. 낯선 언덕의 집에 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용맹한 여자라고 설명된 그녀의 사연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옆집의 사내가 그녀에게 살던 곳이 그립지 않냐고 질문을 하는데 그녀는 나무가 그립다고 말한다. 나무는 마가목을 의미하는데 커다란 마가목 장작을 너무나도 갖고 싶어하면서 장작이 탈 때 냄새와 열기를 그녀는 상상하기도 한다. 더불어 노래까지도 떠올리면서 마가목 장작의 의미는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소설 제목과도 접목할 수 있게 된다.

살고 있던 곳을 떠난 그녀는 지금 언덕의 집에서 청소를 한다. 소독하고 창유리도 닦고 굴뚝 청소도 한다. 좋은 일이 생기지 않았던 일들을 지워내듯이 그녀는 언덕의 집을 청소한다. 문득 사제가 지옥에 갔을지 생각도 한다. 사제가 마가릿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서서히 드러난다. 결혼하자고 약속하고 아이를 낳자고 말했던 사제는 갑자기 사제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의미없는 사람처럼 그녀를 무심하게 스쳐지나친다. 그녀는 돌변한 사제의 모습에 질문을 하고자 하다가 홀로 감당해야 하는 사건을 경험하게 되면서 불행이 그녀를 덮치게 된다. 혼자 감당하였을 여자의 임신, 출산, 아들의 죽음을 마가릿은 홀로 온몸으로 받아들였음을 짐작하면서 영아 돌연사도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난날들을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신부의 아이를 가졌던 여자, 혼자 사는 여자, 옆집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이다. 언덕의 집에서 사는 그녀는 사람들의 병과 유령을 쫓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그녀를 호의적으로 생각한다. 점을 봐주는 집시 여인이 그녀의 지난날들을 남김없이 점쾌를 봐주면서 죽은 아들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제대로 말해주면서 그녀는 치유받기 시작한다. 생명을 잉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녀에게 꿈이 예지해준 것처럼 그녀에게 다시 아이를 임신할 수 있는 만남과 아기가 태어나면서 그녀와 그에게도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호감을 가진 그와 그녀의 새로운 기회의 땅인 아기는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해준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두 사람의 집은 깨끗해지고 주님의 행하심과 신비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사랑하지 않고 사랑받지 않는 사람들은 어둠과 같은 밤을 보내게 된다. 그녀도 그도 그렇게 어두운 밤으로 시간을 채워갔음을 보여주면서 두 사람이 사랑하고 잉태한 아이를 키우면서 주어진 기회를 서로가 붙잡았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더 이상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고 적의적인 상대로 그녀를 위험하게 대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그들의 의도와 적의를 알고 그 마을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아이 아빠인 그는 이미 그녀가 언젠가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녀의 떠남을 놀라워하지 않는다.

불행을 경험한 그녀는 누구도 헤치지 않을 것이며 누군가 자신을 헤치려고 하면 떠날 것이라고 다짐하였던 그녀이다. 그녀가 누군가를 헤치지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떠나버리게 한 이유가 된다. 소설의 마을 사람들에 해당되는 이들이 누구이며, 그녀는 누구인지 둘러보게 하는 작품이다. 그녀의 삶에 지키지 못한 약속을 한 젊은 신부의 무모한 모습과 임신한 아기를 책임지지 못한 신부의 행동, 사제가 죽어서 지옥에 갔을지 생각하는 그녀와 출산의 고통과 배에 남긴 제왕절개 흉터는 그녀의 지울 수 없는 큰 상흔이며 그녀의 새로운 사랑과 기회에도 고백해야 하는 지난 과거가 된다. 가족에게서 외면당하고 부정당하면서 혼자 감당한 그녀의 젊은 날들의 무수한 시간은 소설은 언급하지 않지만 용맹한 여자라고 단언한 표현에서 그녀는 충분해진다.

다시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떠난 마거릿의 이유와 선택에는 타인의 나쁜 마음들이 원인으로 시작한다. 왜 타인을 헤치려고 하는 마음과 말, 행동들이 넘쳐나는 것인지 소설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된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살았던 그녀의 단호한 마음은 결국 푸른 들판을 걸어가게 한다. 푸른 들판을 걷고 걸어가고 있는 무수히 많은 여자들이 지금도 있고 과거에도 있었을 것이다. 악행을 답습하는 우매한 무리가 아닌 누군가를 헤치지 않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소설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폭언, 폭행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는 카인의 후예임을 확인하는 것임을 보여준 작가이다. 단란한 구성원이 되지 못하고 해체되었던 그녀의 지난날들의 신부와 부모님이 있었으며 그녀가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 마을 사람들의 악의가 또다시 그녀를 푸른 들판을 걷게 하였음을 소설은 멋지게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다.



여자가 마을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던 이유가 드러나면서 적당한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정선인지도 의문스러워진다.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소문들이 얼마나 그녀의 삶을 명확하게 설명한 것들이었는지도 다시 확인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는지 작가는 사실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학교가 얼마나 쓸모없는 것들을 가르쳤고 모유를 먹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는지도 언급한다. 과소비하고 간음하며 방탕한 삶을 사는지도 꼬집는다. 생각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단상을 이렇게 시원하게 묘사하는 작가의 소설에 반해버린 이유 중의 하나가 된다. 언덕의 집에 살았던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 문장들이 답해준다. 홈스쿨링 하는 이유와 나름의 설득력은 부족함을 없어지면서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여야 하는 이유가 된다.


이 소설은 짧은 소설이지만 힘이 있는 작품이다. 자두와 감자를 구분 못하는 인생은 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지는 작품이다. 잘 자고 검소하게 사는 것의 의미도 강조되는 소설이다. 후회와 슬픔의 무의미, 배신하는 과거의 의미를 곱씹지 않아야 했을 그녀만의 삶의 방식도 눈에 띄었던 소설이다.



아이가 태어났다. 두 집이... 깨끗해졌다. 238


주님의 행하심은 정말로 신비로웠다. 239



젊은 사람들은 물고기를 못 잡고 우유에서 크림을 분리하는 법도 몰랐다. 그들은 엄마 젖도 못 먹어본 아이들을 데리고 자기 형편에 과분한 차를 몰고 다녔고. 기회만 생기면 간음을 저질렀다. 사실 기회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았다. 맥주도 병째 마셨고 미국과 프라하에 다녀와서 피자를 찾았으며... 자두와... 감자도 구분 못했다.
- P193

무엇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이미 일어난 과거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였다. 과거는 곧잘 배신을 했고, 천천히 움직였다...후회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고 슬픔은 과거를 다시 불러올 뿐이었다.

잘 자고 검소하게 먹었고 바닷가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왔다.
- P194

아이가 태어났다. 두 집이... 깨끗해졌다. - P238

주님의 행하심은 정말로 신비로웠다 - P239

인간 세상을 내다볼 때는 많은 것을 견뎌 내고 살아남은 여자처럼 엄격한 시선이었다.40살도 채 안 되었지만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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