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문학동네 시인선 194
황인찬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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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되는 시집이라 시인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정보가 없는 상태로 시집을 구매해서 읽었다. 백지상태로 시인을 마주하면서 한 권의 모든 시들을 천천히 꾸준히 읽은 시집이다. 그리고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이 시집을 새롭게 보면서 다시 시들을 읽게 된다. 시어들은 다의어가 되어 읽는 독자들에게 다채롭게 다가온다. 난해한 시어들도 마주하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시인의 시어들은 전혀 난해하지 않는 맥락을 전달해 준다.

시집과 더 가까워지는 2024년을 보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중이다. 지금도 몇 권의 시집들을 구매해서 가까이에 두면서 읽는다. 좋아하는 작가들이 시인으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소설도 집필한 것을 알게 되면서 더욱 시집으로 방향을 많이 틀어가고 있다. 시집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블로그 이웃님이 있다. 그분의 포스팅들도 좋은 자극이 되어준다. 시가 어려워서 멀직이 물러나 있었는데 누군가는 매일 시집을 읽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애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다.

시집 한 권과 시인을 만나면서 등을 돌리고 있었던 세상과 슬픔과 사랑마저도 보게 된다. <윤희에게> 영화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영화의 대사들도 다시 생각나게 한다. 김희진 장편소설 『두 방문객』도 가장 먼저 생각난다.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집 『블루 &그린』에 등장하는 퀴어와 독신과 결혼에 대한 글도 생각나게 한다. "저건 뭘까? 왜 저기 있는 걸까? 나는 누굴까?"( 블루&그린 125쪽 ) 자신이 누구인지 질문하면서 자신을 찾는 과정에 세상의 관념과 폭력들을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이 시집에서도 <왼쪽은 창문 오른쪽은 문> 시를 통해서도 들려준다. 돌을 주시하게 한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전해진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주머니 속 작은 돌을 꼭 쥐고 걷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시인의 마음에 슬픔이 드리운다. '퀴어'에 대한 관점으로 시를 다시 읽었다. 메모된 시어들을 다시 주워서 읽다 보니 하나의 큰 그림이 되어간다. 마음을 깊게 바라보면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사회가 압박하는 규정에 어떠한 마음으로 대처하면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보게 된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거듭 보게 된다.

여러 영화와 문학을 통해서 성 정체성과 동성애를 다각도로 생각하게 된다. 침묵과 웅변으로 비유되는 말들의 형식들에서 돌이 상징하는 의미까지도 거듭 시어들을 통해서 다시 보게 된다. 주머니 속에 담긴 돌이 얼마나 반들반들하게 윤기를 내야 하는지 짐작하게 된다. 다양성과 포용, 이해가 얼마나 우리들에게 필요한지도 시집과 시인을 통해서 감정의 깊이와 슬픔을 보게 한다.



금과 은

금은 침묵이고 은은 웅변

돌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왼쪽은 창문 오른쪽은 문

너는 항상 왼쪽 창가

그 너머가 빛

인화

우리의 삶은 결코 해명되지 않는 작은 비밀을 끌어안은 채로 계속된다

미래 빌리기

안경이 어디 갔느냐고 선생님은 온종일 요란을 떨고...

나의 마음은 늪의 바닥에 던져진 돌처럼 느리게 가라앉는다

저 사람이 내 미래의 사랑이라니

...

삶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도 삶은 달라지지 않네

선생님을 보며 내가 떠올린 생각은 교실의 바닥에 고이고 썩어 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안경을 밟고 버렸다

사랑은 지옥이네. 그런 생각도 하면서

퇴적해안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그런 것들에 떠밀려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평범한 주말의 오후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되어 이어지겠지요 47

철거비계

(무대에는 슬픔을 모르는 사람이 서 있다 그 사람은 슬픔을 연기하고 있다) ...

(저녁에 다시 공연은 오른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그때에도 슬픔을 모른다)

사랑이 끝나고 삶이 다 멈추면

이제 내가 말할 차례가 온다

중계

작은 영혼마저 수차례 죽음 끝에 너덜너덜해진 것이 작금의 처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모든 슬프고 외로운 자들이 함께 모여 축하할 일 없는 서로를 축하하는 장면으로 이 시는 끝난다. 약간의 쓸쓸함과 후련함이 시가 떠난 자리에 남는다.)

벽해

꿈이 없어서 꿈에서 깨지도 못하는 삶이

흐리고 흰 빛 아래 우리는 잠시

...

우리가 진짜 발 없이 걷고 있는 거면 어떡해

...

너는 어둠 속에서 말했지

집에 돌아가는 길은 멀다

...

발밑에 펼쳐진

바닥없는 어둠을 애써 모르는 척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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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2-13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보고 나니 이 시집 궁금하군요.
올해 계획 중 하나가 시를 많이 읽자는 거라서, 가지고 있던 시집도 읽을 거지만(많이 갖고 있지 못해) 구매할 시집도 찾고 있었어요. 조만간 서점에 갈 기회가 있는데 이 시집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구름모모 님 덕분입니다.^^

구름모모 2024-02-13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 시집을 읽고자 일부러 노력중이에요. 저도 페크pek0501님 덕분에 구매한 시집들 더 펼쳐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