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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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신』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시간과 엄마의 시간을 동시대에 놓아보게 된다. 큰 어른으로 보였던 그 시절의 엄마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는 연약한 어른임을 마주하게 된다. 20대에 결혼한 친정 엄마가 보이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젊은 엄마가 보인다. 『답신』 소설의 엄마는 어리고 슬픈 고립된 27살이라고 한다. 힘이 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어린 사람이라는 글귀에 나의 27살을 문득 떠올려보게 한다. 여성의 삶을 다양하게 살펴보게 한다.

돌잔치에서 친척들의 말이 가진 적의에 전해진다. "아이 엄마 표정이 왜 저러냐 ...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더라" (146쪽) "네 동생 왜 저렇게 살쪘는데. (시어머니 언니). 20살의 나는 사람들의 본격적인 악의에 대해 잘 몰랐지." (147쪽) 사람들의 악의를 무심한 듯이 뾰족하게 핀셋으로 집어내는 글귀에 여러 번 멈추게 된다. <웰컴투 삼달리>드라마에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의 말들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마을이라는 공동체이지만 어느 공동체도 두 팔을 벌리지 않는 말과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악의와 적의를 숨긴 채 뿌려지는 말의 힘을 보게 된다. "네가 항상 안전하기를. 너에게 맞는 행복을 누리기를"이라고 이모가 조카에게 건네는 편지글을 여러 번 읽게 하는 소설이다.


『파종』소설에서는 자퇴하고자 하는 여고생이 등장한다. "쉬고 싶다고. 지쳤대요. 자기가 24시간 내내 돌아가는 컴퓨터 같다고. 잠시 전원을 꺼두고 싶다고." (184쪽) 엄마는 교사에게서 자신의 딸의 상태를 설명 듣는다. "부모가 함부로 뱉는 말이 어린 자식에게 얼마나 파괴적으로 다가왔는지 아버지는 알았을까. 폭언으로 물들던 유년의 밤을 그녀는 떠올렸다... 아버지 말은 내면의 목소리가 되어서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녀를 따라다녔다." (197쪽) 폭언이 마흔이 넘은 현재까지도 그녀를 괴롭히는 것을 알게 된다. 언행에 대해 이모와 대학시절 나눈 대화가 있다. 이모의 성장 이야기를 통해서 친정 엄마를 알게 되었다. 따뜻한 말이 오가는 가정인지 살펴야 한다. 웃고 농담도 하면서 화목한 가정인지 살펴야 하는데 온전한 가정을 돌보지 않는 부모들도 상당히 많다는 것도 소설은 꼬집는다. <일타 스캔들>드라마에 등장한 가정이 떠오른다. 수평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인 가족 관계는 폭력이 짙게 흐르기 마련이다. 삼촌과의 인연으로 생긴 상처가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리의 희망을 차분히 듣는 소설이다.



『이모에게』 소설에서는 효녀의 의미에 생각하게 한다. 반항하지 않는 유순한 사춘기를 지낸 날들의 공허를 함께 떠올려보게 하는 글귀도 만난다. "내가 반항 한번 하지 않고 유순하게 사춘기를 넘겼다면서 다시없을 효녀라고... 정작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공허하기만 했다." (247쪽) 혹독한 사춘기 시절을 보낸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었지만 유순한 것만이 삶의 정답이 아님을 알기에 이제는 웃으면서 철이 든 아이와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다시는 임신하면 안된다는 경고성 발언을 듣고도 남편이 개의치 않았다고 설명된다. 이모와 엄마가 나누는 대화를 복기하는 모습도 기억하게 한다. 이모를 향한 옅은 무시가 깔린 아빠의 모습과 일상생활 모습도 조목조목 놓치지 않게 한다. 짧은 소설들이지만 무엇도 가볍지가 않다. 묵직한 이야기와 삶을 통해서 웅크리지 않고 일어서서 걷게 해주는 소설들이다. 익숙함에 익숙해지는 답습을 거듭하지 않도록 소설을 통해서 우리 주변을 살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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