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처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7
임솔아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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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는 엄마의 말은 동생 채빈에게 중요한 가르침이 된다. 어린 나이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던 엄마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열일곱 살에 첫째를 출산하고 열아홉 살에 둘째 채빈을 낳은 엄마이다. 두 아이의 아빠 존재는 흐릿하다. 엄마와 첫째 아이만이 살다가 이모와 이모부에게 양육된 채빈이 갑자기 이 모녀 가정에 합류하게 된다. 채빈은 엄마와 대화를 하지 않았다. 갑자기 달라진 상황에 혼돈의 시간과 부정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유일하게 대화한 건 첫째와 놀이로 친근해진다. 엄마는 마트 직원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교회 활동도 열심히 한다. ​



사회가 보이는 오해가 짙어진다. 교회가 짐작하는 오해가 엄마를 권사로 임명하게 된다. 가출 소녀들이 함께 지내면 경찰은 집단성관계로 오해하며 소녀를 먼저 폭행한다. 동물보호소 소장의 일처리 능력은 미숙하고 오해를 불러들인다. 동물 임시보호자와 소장의 폭로전을 두 부류로 나뉘면서 싸우는 양상은 낯설지 않은 광경이 된다. 인간은 싸운다. 그리고 중요한 일처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유나를 찾는 일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사라진 유나는 찾았을까? 유나를 찾는 소장, 간호사, 임시보호자, 화자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집단성관계를 경찰은 지워주는 조건으로 경찰이 먼저 학생을 폭행한 사건을 덮는 거래가 이루어진다. "애초에 없었던 이야기를 지우기 위해 엄연한 사실도 지워야 한다는 거래가 기가 막혔다." (135쪽) 소설이지만 낯설지가 않다. 가출한 아이들이 엄마 집에서 자고 머리를 감고 자고 가는 일이 벌어진다. 채빈이 불어놓은 이 아이들과 길거리 동물들을 보살핀 채빈도 남다른 감정을 불러놓는다. 채빈의 마음에 어떤 빈자리와 구석진 빈 공간이 있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보살피고 살아가도록 마음이 닿았던 채빈이다. 언니의 기억 속에 있는 채빈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반전이 있다. 채빈이 가출하고 엄마 추락사 이유를 나중에 들으면서 드러나는 엄마의 이야기들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엄마가 권사가 되는 과정의 이야기도 시사성이 짙어진다. 적절히 이용하고 적절히 덮어가는 사회가 반영된다. 소장과 동물병원 수의사, 행정기관의 안락사 처리 과정을 대응하는 인간의 모습에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안락사 시키는 인간 집단. 죽이고, 죽이고, 죽이는 관행은 합당한 것인가. 죽이지 않기 위해 입양을 신중히 상의하는 자매의 이야기는 묵직하게 전해진다. 죽은 엄마가 생전에 보여준 것들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



​엄마가 어째서 현관문을 열어 두었는지 이해되었다 138​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소장이 짓는 표정이 낯익었다... 계획도, 대책도 없으면서... 선의로만 가득 찬 표정, 앞으로 펼쳐질 사태를 충분히 예감하고 있으면서도 외면하는 표정, 모든 것을 짊어지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무것도 짊어지지 않을 표정. 19​


강렬하게 원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긋지긋한 일인지를 나는 채빈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긋지긋한 집구석, 지긋지긋한 동물들, 지긋지긋한 아이들과 지긋지긋한 내 동생. 나는 그 무엇도 원하지 않는 마음에 익숙해져갔다. 장롱이나 식탁처럼 우리 집을 버텼다. 필요하지만 신경을 쓰지 않는 가구처럼 있었다.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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