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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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이다. 단단히 무장하고 한 편씩 읽는 소설이다. 도시 개발로 미화된 강제 철거, 공적인 폭력들이 드러난다. 쫓겨나는 사람들,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용산의 사건이 작가에 의해 부풀어 오른다. 용산을 기억하고 성장과정이 함께한 대학강사의 에세이 내용이 거침없이 전달된다. 영어 소설을 사랑한 이유는 모국어가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 용산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회귀된다. ​



정교수가 아닌 대학교 젊은 강사의 고충도 전달된다. 남자 강사였다면 달라지는 상황이다. 왜 대중은 젊은 여성을 온전하게 대우하지 못하는지 진중하게 보게 한다. 전문성마저도 퇴색시키며 학생이 강사를 가르치려는 말투의 의도가 두드러진다. 비정규직 어린 여성은 무력하다. 은행원이었던 인물이 다시 대학교를 입학한 이유, 글쓰기가 가진 힘에 매료된 계기와 동기생의 이야기도 무게감을 가중시킨다.


공부는 대학원 아닌 곳에서도

할 수 있는 거 ...알죠 37


사람들이 하는 말에 휘둘리느라

자기 목소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35


타인의 말을 중단시키는 것, 타인의 의견을 평가절하하는 태도의 의중을 예리하게 살핀다. 무시당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부당함을 자각하지 못하는 관습에 길들여지지 않았는지 보여준다. 순응주의의 문제와 부조리한 사회에 큰소리로 외치는 아우성이 점철되는 작품이다.



배움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대학과 대학원에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현장에서 살아가는 친구의 삶의 구석구석들이 더 진짜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가 성공이라고 제시한 잣대에서 어긋나지만 가짜와 진짜를 볼 수 있는 식견을 가지도록 망원경을 건네는 소설이다. <흰옷을 입은 여인> 책에서 만난 19세기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삶이 투영된다. 작품 속의 여성들도 저마다 자신의 선택 속에서 행진을 하면서 성장한다. 눈감지 않는 용기, 안정적인 길을 벗어나 가슴이 말하는 곳으로 과감하게 방향을 잡고 걸어간 여성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



대학강사의 책과 글이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지만 분명히 다른 선택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녀가 지나온 시간들과 살아내고 있는 시간들을 그려보게 한다.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들이다. 책을 읽고 생각하면서 투명 망토를 두리는 시간들을 함께 해보는 값진 시간들이다. 짧은 소설이지만 무게감과 밀도가 상당하다. 긴 호흡을 거듭하면서 긴 시간을 생각하게 한다.


 소설들을 읽으며 그녀는 용산으로부터도,

자신의 언어로부터도 멀어질 수 있었다.

영어는 나와 관계없는 말이었다.

영어 소설들을 읽으며 그녀는 용산으로부터도,

자신의 언어로부터도 멀어질 수 있었다.

영어는 나와 관계없는 말이었다.

내게 상처를 줬던 말이 아니었다. 19

비정규직 다수가 어린 여자들,

간부들 다수가 남자들,

비정규직 다수가 어린 여자들,

간부들 다수가 남자들,

그걸 차별이 아니라고......23


글쓰기는 의심하지 않는

순응주의와는 반대되는 행위 32

무관심일 뿐...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일뿐 32

글쓰기는 의심하지 않는

순응주의와는 반대되는 행위 32

무관심일 뿐...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일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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