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시간표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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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 토끼>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신작 소설집이다. 연작 소설집이라 더 기대한 소설이다. 연작소설을 읽는 재미에 빠져든다. 여러 소설들이 어우러져서 퍼즐처럼 맞추어진다. 첫 이야기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호기심을 발동시키면서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와 정체가 무엇인지도 궁금해지게 한다. 그래서 멈추지 못하고 다음 이야기를 계속 읽게 된다. 그렇게 흡인력이 강한 소설이 된다. 몰입하면서 이 소설에 푹 빠져들게 한다.

연구소가 있다. 이 연구소에서 일하는 야간 경비일을 하는 다양한 직원들이 경험한 일들 중에는 하나의 공통된 사건이 있다. 아무도 없는 이 연구소 건물에 야간 경비를 서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그런데 어두운 장소에 평범한 체격, 평범한 정장 차림, 목소리와 말투로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직원이 있다. 그 직원의 얼굴과 명찰의 글씨는 알 수가 없었다. 그 직원은 누구일까? 왜 통제하는 것일까?

이 연구소의 어떤 물건도, 이 연구소 자체도 평범하지 않다. 228


302호 안에서는 가끔 새가 푸드덕 거리는 소리와

사람 목소리 같은 것이 들린다 188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없었다 103

연구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하게 한다. 그리고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부소장님의 양과 화자의 고양이의 목에 있는 못, 흰 운동화 한 짝, 수가 놓여있는 손수건까지도 서서히 전해 듣는 이야기들로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무더위와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펼쳐서 읽기에 좋았던 소설이다. 저주 토끼 작품을 읽지 않았는데 그 작품과 작가의 다른 작품까지도 눈길이 가기 시작한다.

스스로 홀리고 혼자서 씌는 거예요...

없는걸 만들어 내서 혼자서 막 보고 듣고...

진짜로 생겨나서 따라오는 거예요. 원래 없던 건데. 14

무서운 이야기라는 한계점만을 가지지 않는 소설이다. 예리한 작가의 시선도 이야기들의 인물들을 통해서 전해진다. 대학교에 있는 양 무리의 정체와 양털이 벗겨진 이유와 수술 자국들이 가진 의미까지도 냉정하게 직시하게 한다. 연구목적으로 사용되는 동물들은 어떤 삶을 살다가 죽는지 차분히 생각하게 된다. 연구에 사용되는 도구일 뿐, 생명체로 권리를 보장받지도 못하는 동물들이 많다. 부소장님에게 나타난 양은 놀라운 기적 같은 일들을 선물해 준다. 기이한 일들을 여러 차례 경험한 부소장님은 양 무리들과 함께 하는 사연이 전해진다. 부소장님의 결혼생활과 남편의 복권과 도박 빛이 가져다준 가정파탄까지도 매만진다. 부소장의 사라진 손가락 네 개는 이후 경제적 생활까지도 힘겹게 한다. 산업재해로 일자리를 잃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삶까지도 조명을 비춘다. 복권과 도박이 가정을 파탄시키는지도 놓치지 않는다.

집안의 모든 문제는 구정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흘러 떨어져서 그 집안 모든 사람에게 가장 만만한 존재 위에 고이고 쌓였다. 그 구조물을 감당하는 사람은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이었다. 딸, 며느리, 엄마, 손녀.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느니 아들 가진 엄마는 길에서 손수레 끌다 죽는다더니 하는 말의 의미는 모두 같았다. 가장 만만한 구성원의 피와 골수를 빨아먹어야만 가족이라는 형태가 유지된다. 역기능 가족은 비슷한 형태로 역기능적이다. 132

협소한 사고 범위로 자신이 살해한 사람의 영혼이 다시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살인자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섬뜩한 말 한마디를 반복적으로 남기는 아이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그 말을 하는 영혼이 누구인지는 마지막까지 읽어야 정체가 드러나는 소설이다. 이외에도 악의에 가득 찬 인물들이 낳은 자식도 같은 영혼으로 타인들을 위험하게 하는 인물이 된다. 남의 것을 빼앗고, 그들의 생명까지도 무참하게 짓밟는 부모는 그의 자식까지도 다르지 않는 삶을 영위한다. 악의로 가득 찬 그의 행동과 선택들에 흰 손수건은 여러 인물들을 거치면서 어긋나고 집착하는 잘못된 삶을 평생 살아가는 어머니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친다. 유품으로 남겨진 흰 손수건의 사연과 어머니의 죽음을 향한 슬픔보다는 흰 손수건을 가지려는 어긋난 욕망과 집착으로 말년의 삶이 얼마나 황폐해지는지도 무서운 이야기들로 전해진다. 밤마다 사라지는 남편, 남편이 묻혀온 흔적들과 악취들. 영혼이 악의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버리면서 남은 생애를 살아간다. 초록 눈을 가진 정체는 무엇일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에 놓인 세 번째 부인은 어떻게 될까?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며 여인을 착취하는 시어머니와 둘째 아들에 대한 사연도 매우 흥미롭게 전개된다. 편애하는 부모, 차별당하는 자식들이 등장한다. 부모의 사랑은 정상적인 사랑이 아닌 잘못된 집착이라고 작가는 명명한다. 그만큼 명확한 정의도 없을 듯하다. 사랑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긋난 집착이 되어 평생 자식의 노예로 살아가게 되는 부모가 된다. 더불어 자식도 평생 노동을 해 보지 않았기에 자립을 하지 못하는 70세 노인이 된다. 부모가 죽자 홀로 살아갈 방법도 알지 못하는 바보가 된다.

폭력과 학대를 견디며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며 그렇게 계속 살고 싶지 않을 ...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찬은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살아있는 한 너무 늦은 건 없다.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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