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포옹
박연준 지음 / 마음산책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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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산문집이다. 가만가만 다가서는 포옹. 당신이 나로 인해 부서지지 않도록. 글귀와 책표지의 그림을 한참동안 바라본 뒤 펼친다. 하나의 글을 읽고, 또 하나의 글을 읽을수록 속도를 내지 않았다. 한 달 전에 산 책의 글들을 야금야금 먹고 있다. 조금씩 아껴놓으면서 시인의 글들과 호흡하면서 일상을 보내게 된다. 더 천천히 호흡하려고 속도를 일부러 늦추게 한다. 시인의 글들을 그러하다. 빠른 기차를 타고 달리는 승객이고 싶지 않았다.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가 되고 싶었다. 하나의 글을 여러 날 되새김질을 하면서 결국 나의 삶을 살피게 된다. 그때는 이러한 책을 만나지 못했지만 시인과 다름없는 선택들을 하면서 잘 살아내고 있었다는 것을 보게 한다.

지금 있는 곳이 내내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우선 떠나야 한다.

나로부터 떠나야 나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 64

한 번이 아닌 여러 번의 불편함을 느꼈고 떠나기를 무수히 하면서 나의 자리를 찾는 지금이 있었음을 시인의 글에서 마주 보게 한다. 불편하여서 떠난 선택들은 실패가 아니었음을 그때도 막연하게 알고 있었고 그때의 나에게 응원을 매번 보내게 된다. 그러한 경험들은 성장한 자녀에게도 가끔 들려주게 된다. 아무도 모르는 길을 떠나보라고, 가보고 아니면 돌아오면 된다고. 타인과 사회가 보는 관점은 그들의 것이며 결코 나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곧은 길만 걸어간 것은 아니다. 구불구불하고 좁다란 길도 많았고 끊긴 길도 많았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었음을 펼쳐보게 된다. 부모도 어른도 완전한 인격체가 아니다. 그들의 말들을 듣지만 결국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그들은 지금도 나의 선택들에 찬사를 보내준다. 그때는 반대하고 주춤거렸던 어른들이었고 지금은 멋진 선택이었다고 박수를 보낸다.

인생을 만나는 글들이 쏟아진다. 지극히 개인적인 글들과 경험들이 어우러지면서 좋아하는 작가들과 시인, 예술가들이 인용되는 글귀에도 마음이 흘러가기도 한다. 고양이 집사가 된 이유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들도 전해진다. 두려움과 자신감 부족이 가져다 놓은 것들과 이것을 이겨내면서 경험한 놀라운 성장의 일기 같은 글들도 전해진다. 당주가 온 뒤로 나는 매일 자란다... 발톱이 자라는 속도만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50(쪽) 고양이의 발톱이 자라는 속도만큼 천천히 꾸준히 성장해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매일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에 동행하는 것이 바로 책읽기이다. 무심히 지나친 것들이 다시 소환되면서 단단해지는 내면의 목소리들을 듣게 되는 시간이 바로 독서의 시간이다.

남의 몸을 빌려 사는 듯, 그렇게 산다. 44

지금 하고 싶은 걸 참고

하기 싫은 것들을 해내면

더 큰 행복이 올 거라고 했다.

과연 그 커다란 행복은 우리 앞에 도착했는가? 61

사회의 흐름에 흘러가면서 자아를 돌보지 않다가 번 아웃을 경험하는 이들을 보게 된다. 가까이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이들이 멈춤 버튼을 누르고 돌아보는 것이 자신임을 알게 된다. 현재를 포기하고 달려가다가 커다란 행복이 미래에 왔는지 반문하는 글귀에 멈춤을 하게 된다. 질문하고 의심하며 나를 돌보아야 하는 이유들을 보게 한다. 사회와 학교,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가족들에게 현재를 포기하라고 강요한다. 그러한 관습이 정당한 것인지 누군가는 질문한다. 반문하면서 스스로를 찾아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 여러 책들이 함께 경청하며 진중하게 대화를 나누어주는 이가 있다. 아프지 않아도 되는 이유들이 전해진다. 지인 중에도 일 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직장에서 일을 한 분을 알고 있다.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지도 않고 그 시간에도 직장에서 일만 하였다고 한다. 몇 십 년간의 노동 끝에 갑작스럽게 가족에게 통보한 것은 자신만을 위한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이유 불문하고 떠난 여행이야기이다. 얼마나 회복되고 치유되는 시간이었을지 궁금해진다. 우리 가족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엄청난 노동 이야기였기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기우뚱한 가족의 모습, 노동자의 삶만이 보여서 걱정스러움을 감추면서 들었던 이야기이다.

최근에 번 아웃에 대한 책들을 읽게 된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만큼 사회적 문제라는 사실이 분명해 보인다. 자신은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면서 몇 십 년 만에 떠난 여행은 상당한 의미를 남기는 말이 된다. 앞으로만 달리지 않고 때로는 쉼표도 찍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그 과정에 시인의 글들은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선 산책길이 된다. 누군가 부서지지 않도록 가만가만 다가서는 포옹의 의미들이 글에서 전해진다. 깊은 의미로 다가선 고용한 포용이다. 기꺼이 시인의 포옹을 받아들이면서 만난다.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토니 모리슨의 소설 <빌러버드>, 에곤 실레, 레오나르도 다빈치 <성 안나와 성모와 아기 예수와 세례 요한> 소묘, 최승자 시인의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올리비아 랭 <이상한 날씨>,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헤르만 헤세의 문장들>, <아녜스 바르다의 말>, 막스 피카르트의 <인간과 말>, 호프 자런의 <랩 걸>, 유병록의 <안간힘>, 이주란의 <모두 다른 아버지>, 이설야의 <굴 소년들>, 박상수의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 고명재의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등의 작품들이 언급된다. 시인의 다른 작품들까지도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 시를 향하는 발걸음을 더 내딛는 의지를 불어넣어 준 책이다.

번 아웃은 '나 아닌 상태'로

무언가를 이루려 오랫동안 애쓸 때 일어난다. 59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 부조리한 사회시스템.

나는 나를 잃고 싶지 않았다.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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