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워크숍 오늘의 젊은 작가 36
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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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라는 의미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는지 생각부터 해보게 한다. '고독사'를 준비하는 워크숍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지만 수많은 많은 이야기들과 인물들의 통해서 점차적으로 구도화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되는 작품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들이 이야기된다. 누구나 경험하는, 경험할 수도 있는 상황들에서 어떠한 대처능력으로 살아내야 하는지 인물들은 스스로 자구책을 터득하게 된다.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문득 깨닫는 사실들이 전해진다. 사소하고 평이한 일상 속의 반복되는 것들이 주는 것을 보여준다. 무수히 많이 열거되는 밴드의 이름들을 지어주는 <고독사 워크숍> 회원들의 자발적인 관심과 참여에 함께 놀라워하게 된다. 고독을 매일 체득하며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상 중에서 조금씩 나아가기도 하는 삶이 존재한다. 그것이 성공과 실패로 좌우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들려주는 작품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후반부를 향할수록 연관성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된다. 사회적 관계가 그러하다. 인연이 아닌 것 같지만 아는 사람의 지인이거나 가족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하게 된다. 소설에서도 다르지 않다. 전혀 연관성을 느끼지 못하였다가 도입부에 등장하였던 수많은 이야기의 인물들과 사건들과 이야기들이 연결되어서 조화롭게 사회적 관계망을 이루게 된다.

자신만의 고독을 단련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직장 선배의 퇴사와 관련해서 선배만 제외하고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소외시키는 직장의 무리들이 낯설지 않은 형태로 이야기된다.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쳇바퀴 돌듯이 돌아가는 모습들이다. "다행이야. 내가 아니라서."라고 속내를 드러내는 것까지도 이 사회에서는 익숙한 모습으로 투영된다. 혐오가 정당화되어가는 사회를 보게 된다. 작가의 거침없는 문장들에 화들짝 놀라게 하는 예리함을 목도한다. 못됨을 처먹어 가는 일상은 정당하지 않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개인적 고독을 직시하게 한다. 수많은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을 상기시키는 젊은 작가이다. 당신은 일상은 어떠했나요? 오늘 하루는 어떠했나요? 질문하는 작품이다.

피해자의 얼굴로 가해자의 얼굴을 감춘 채

무리의 습성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못됨을 처먹어 가는 일상 246



군대를 갔다 온 아들이 죽음을 맞이한다. 아들이 죽은 후 아내는 더 이상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남편은 이야기한다. 그 대신 농담을 하는 아내의 깊은 마음속을 헤아려보지 않을 수가 없다. 죽기 직전까지 아들이 홀로 쌓아 올린 시간들의 의미와 죽음을 선택한 이유와 아들의 죽음은 남겨진 어머니에게는 큰 상처와 아물지 않는 기억 속으로 홀로 갇히게 된다. 그녀는 살아야 하기에 선택한 것이 농담이라고 한다. 그것도 자살을 준비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속의 글에 감탄하면서 최고의 농담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농담이 서글픈 웃음으로 자리 잡게 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깊고도 깊은 고독을 관조하게 한다.

죽을 생각이었다. 올해 설날 옷감을 한 필 받았다.

새해 선물이다. 천은 삼베였다.

여름에 입는 옷이리라.

여름까지 살아 있자고 생각했다. 167

유진이 죽은 후 아내는 더 이상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농담을 하죠. 168

얼마나 고독하면 저런 농담에 웃게 될까?

얼마나 고독한 사람이 저런 농담을 하고 또 하는 걸까? 139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무심히 스치는 말 한마디에는 깊은 의미가 존재한다. 나쁘지 않다는 말의 의미도 작품은 조명한다. 죽음까지도 생각하는 고독한 사람들의 무게감을 깊게 바라본 적이 없다. 사유하는 고독을 선호하다 보니 이 작품 속의 고독한 사람들의 삶은 고려해 보지 않았기에 작품을 통해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알아가게 된다. 300만 원을 선납하고 고독사 워크숍에 참여하는 이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규칙적인 패턴들을 통해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조곤조곤 듣게 된다. 그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버무리면서 고독의 의미를 더 추가해 보게 된다. 어린 시절 우는 법을 놓친 어른이 울지 못하는 사연과 울게 되는 순간까지도 지긋하게 들려주는 소설이다.

사과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사과받지 못했던 인물이 사과를 받겠다고 또렷한 자기 의지와 목소리를 전달한다. <닥터 차정숙>의 드라마에서 미안하다고 전하는 장면과 영화 <세 자매>의 아버지에게 사과하라고 말하는 딸의 장면, <채식주의자> 한강 소설의 아버지의 폭력적인 장면이 떠오른다. 사과받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의 무수한 가해자들과 피해자들이 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피해자들이 있다. 작가는 그들의 고독까지도 놓치지 않고 매만지고 있다. 우는 판다가 가장 강열하게 자리잡는다. 울고 싶을 때 우는 어른, 악을 쓰면서 우는 어른을 잠시 그려보게 한다. 왜 우리들은 우는 것까지도 통제를 받고 억압하면서 살아가게 된 것일까? <방랑자들> 소설에서 장애인 아들을 키우는 엄마가 노숙자 삶을 선택한 이유가 떠오른다. 우는 판다의 존재가 누구인지도 작품의 마지막에서 밝혀진다. 쌓여가는 사연들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어떻게 고독을 유영할 수 있는지 들려주는 소설이다.

사과해 주세요.

사과받고 싶어요. 142

울고 싶을 때 언제든지, 얼마든지 악을 쓰면서,

길에서 판다와 누가 누가 더 크게 우는지

경쟁해 가면서 우는 어른이길 바랐다.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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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필드 2023-07-13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름모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

구름모모 2023-07-16 21:1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가필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