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시대 열린책들 세계문학 77
이디스 워튼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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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함께하는 관습이 존재한다. 시대가 규정한 틀안에 갇혀서 인형처럼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의심조차도 하지 않고 꼭두각시처럼 모두가 뜨겁게 따르는 관습이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길게 들여다보게 한다. 그들이 향유하는 것들이 펼쳐지면서 사교계의 흐름과 관습들이 또렷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에 다른 사고의 범주가 감지된다. 주인공이 가지는 생각들은 적잖은 충돌로 표출된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삶과 시들이 떠오른다. <인형의 집>의 로라도 함께 생각나게 한다. 시대에 순종하며 관습의 행렬에 모두가 똑같이 기계처럼 움직일 때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인물들의 움직임도 시대와 함께한다는 것을 이 소설에서도 만나게 된다.



순종하는 시대의 여성들의 움직임까지도 매우 첨예하게 들춰지는 소설이다. <환락의 집>소설까지도 생각나게 한다. 작가의 필력에 깊게 빠져들게 된다. 끊임없이 자극하는 시대의 관습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결혼관과 사교문화, 남성들의 자유분방함과 여성들을 구속하는 시대의 여성상들이 전해진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용하였던 것들의 당위성을 짚어보게 한다. 넷플릭스 <브리저튼> 작품에서도 비슷한 감상을 하게 되었듯이 역사 속에 존재하는 여성을 구속하는 관습들을 직시하게 된다. ​​



아무도 다르게 살려고 하지 않아.

다르다는 걸 천연두처럼 두려워해. 151


뉴욕이라는 도시에 살았던 상류층 집안사람들이 누렸던 것들과 그들만이 향유하였던 문화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입었던 복식과 음식들, 하인들을 부렸던 그 시대의 문화들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가장 많이 떠올랐던 여성이 두 명이 있다. 미소와 말씨, 행동과 가치관까지도 답습한 여성이 있다. 한 여성은 타인의 삶에는 새로운 용기를 가져보아도 좋다고 말하지만 진정 자신의 삶에서는 그 어떤 용기조차도 시도하지 못하였던 여성이다. 남편이 젊은 시절 간절히 원하였던 것을 알고 있었던 여인이다. 그녀는 그 모든 진실 앞에서도 어떠한 내색조차도 보이지 않으면서 남편이 간절히 원했던 것을 포기하였다고 회상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


나쁜 남자를 떠나 뉴욕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여성이 있다. 그녀가 어린 시절 뉴욕에 첫 등장했던 장면만큼이나 그녀가 뉴욕에 정착하고자 선택한 집도 많은 상징성을 띈다. 행복하고자 선택하는 그녀의 삶들은 어떠했을까? 진정 행복했던 것일까? 그녀가 믿고 알고 있었던 사실들은 위선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가려진 진실이라는 사실을 점차적으로 알게 해주는 인물 덕분에 그녀는 또 얼마나 혼돈스러웠을까. ​​그 시대를 살았던 두 여성은 저마다 자신이 믿는 행복을 추구한다. 그들만의 '용기'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간 여성들이다. 행복한 삶을 살고자 각자의 방식으로 살았던 두 여성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화자는 남성이지만 책장을 덮으면서 강열하게 기억되는 인물은 두 여성이었다. 가정을 지키고자 자신의 방식으로 행복한 삶을 선택한 여성이다. 결혼생활을 계속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라 별거와 이혼까지도 고려하지만 집안 어른들의 만류에 이혼을 포기하는 여성의 삶까지도 안쓰럽게 매만지는 작품이다. 경제적인 풍요와 권력이 주는 안위까지도 포기할 만큼 그녀에게 절실하고 간절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녀의 대화를 통해서 전해진다.



신문기자와 나누는 대화도 인상적이다. 깊고 깊은 골짜기처럼 느껴지는 그들이 가졌던 깊은 관념들이 거침없이 드러나는 대화들이다. 융화될 수 없는 그들의 사고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작품의 기자가 말하는 대화의 채도는 더 깊게 드리워지게 한다. 작가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견고한 시대적 관습에 의문을 던지며 진정한 진실이 무엇인지 깊게 사유한 세계들이 인물들을 통해서 전해진다. <버너 자매>와 <환락의 집>도 인상깊게 읽은 작가의 소설이다. 이외의 작품들까지 계속 눈길이 머무르게 한다. 처녀의 눈을 감싼 붕대를 벗기듯이 이 시대의 눈을 감싼 붕대들까지도 벗어버리는 식견을 가지도록 자극을 주는 문장까지도 만나는 소설이다. ​​



우리 둘이 그저 사랑하는 두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곳, 

그리고 서로에게 전부가 될 수 있는 곳,

세상의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은 곳 말이에요. 276


이 별난 집을 어떻게 생각해요?...

나한테는 천국 같아요. 75


전통적으로 처녀는 그렇게 질문하게 되어 있었고...

그녀는 그저 배운 것을 반복해 말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양갓집>여자들은 몇 살이 되어야

자기 말을 하게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몇 살이 되어도 불가능할 거야.

우리가 허락해 주지 않는다면.>...

이제 이 처녀의 눈을 감싼 붕대를 벗기고,

세상을 똑바로 보게 하는 게

그의 당면 과제가 될 것이다.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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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5-28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순수의 시대>를 민음사 판으로 읽었는데, 가물가물 하긴 한데 리뷰를 보니까기억이 납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말과 행동에 숨어있는 감정들이 인상적이었어요~!!

구름모모 2023-05-28 23:03   좋아요 1 | URL
작가 소설을 좋아해요. 한편씩 읽어가는 재미가 있네요.
민음사 소설로 읽으셨네요.새파랑님~